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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589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5월 18일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5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뒤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제정됐습니다. 지금까지 아홉 차례 개헌이 이뤄졌습니다. 독재자의 임기 연장, 군사 쿠데타, 시민혁명에 의한 개헌이었습니다.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1987년 마지막 개헌은 6월 항쟁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권력구조가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로 바뀌었습니다. 경제 민주화 조항이 헌법에 들어갔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만들어졌습니다.

9차 개헌 이후 일제 강점기보다 더 긴 38년이 흘렀습니다. 제도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조금씩 고쳐가며 써야 합니다. 개헌할 때가 됐습니다.

개헌은 어렵습니다. 주요 정치 세력이 합의하고 국민투표를 통과해야 합니다. 특히 정치 양극화가 점점 심각해지는 환경에서 주요 정치 세력의 합의는 매우 힘듭니다.

1987년 이후 지금까지 개헌이 안 된 데는 일종의 공식이 있었습니다. 임기 초에는 집권 세력이 개헌에 반대했습니다. 임기 말에는 야당이 반대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개헌 논의에 심상치 않은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헌법재판소가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하고 이틀 뒤인 4월 6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대선에서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권력구조를 바꾸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남은 과제를 바꾸는 ‘2단계 개헌’입니다.

6월 3일 대선에 국민투표를 하려면 늦어도 4월 말까지는 개헌안을 발의해야 하므로 급박하게 개헌을 제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원식 의장은 기자회견 전에 이재명 당시 대표와 ‘2단계 개헌’의 내용에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합의는 “내란 종식 우선”이라는 민심에 부닥쳤습니다.

4월 7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이재명 대표는 “개헌을 안 하면 역사적으로 비난받게 된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재평가받을 기회가 없기 때문에 취임하자마자 내리막길을 가게 된다”며 개헌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회의 참석자 대부분이 강하게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할 수 없이 “개헌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내란 종식이 먼저”라고 물러섰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한덕수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하자 4월9일 “현 상황에서는 대선 동시투표 개헌이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개헌 제의를 철회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4월 6일 오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이재명 후보는 5·18민주화 운동 45주기인 5월18일 개헌 논의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페이스북에 개헌 공약을 발표하고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했습니다. 중요한 것만 간추리면 이런 내용입니다.

“헌법 전문에 5·18 광주 민주화운동 정신을 수록합시다.”

“부마항쟁과 6·10 항쟁, 촛불 혁명과 빛의 혁명으로 이어진 국민 승리의 역사가 헌법에 수록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를 시작합시다.”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결선투표제를 도입합시다.”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이관해 독립성을 부여해야 합니다.”

“대통령 본인과 직계 가족의 부정부패, 범죄와 관련된 법안은 대통령의 거부권을 제한해야 합니다.”

“비상명령이나 계엄을 선포하려면 사전에 국회에 통보하고 승인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긴급한 경우에도 24시간 내 국회 승인을 얻지 못하면 자동으로 효력을 상실하게 해야 합니다.”

“국회 추천을 받아야만 국무총리를 임명할 수 있게 합시다.”

“공수처, 검찰청, 경찰청과 같이 중립성이 필수적인 수사기관과 방송통신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중립적 기관장을 임명할 때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검찰의 영장 청구권 독점 규정을 폐지합시다.”

“안전권, 생명권, 정보 기본권 등 기본권 강화와 확대를 위한 논의도 시작해야 합니다.”

“지방자치권 보장을 위해 대통령, 국무총리, 관계 국무위원, 자치단체장 등이 모두 참여하는 헌법 기관을 신설해야 합니다. 위상은 국무회의와 동등하게 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내용이 매우 상세하고 구체적입니다. 이재명 후보가 매우 오랫동안 가다듬어 온 구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이재명 후보는 개헌에 ‘진심’이라고 봐야 합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후보의 ‘4년 연임제’를 비난했습니다. 나경원 공동선대위원장은 “푸틴식 장기 집권 개헌”이라며 “허수아비 대통령을 세워 4년짜리 징검다리를 놓고 다시 돌아오는 푸틴식 재림 시나리오가 있는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습니다.

헌법 128조 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후보가 ‘중임’이 아니라 ‘연임’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나중에 다시 대통령을 하려는 속셈이라고 의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의 ‘4년 연임제’는 “연임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게 옳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발의했던 개헌안의 대통령 임기 조항도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하되, 연이어 선출되는 경우에만 한 번 중임할 수 있다”로 되어 있습니다.

이재명 후보의 개헌 제의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절차’에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개헌은 ‘무엇을’보다 ‘어떻게’가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개헌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 개헌은 불가능합니다. 이재명 후보는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번에도 가능하면 개헌을 합의 가능한 범위에서는 대선과 동시에 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국회의장님과도 그 얘길 나눴다. 예를 들어 5·18 광주 정신 헌법 전문 수록, 대통령 4년 중임제,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등 기본적이고 합의 가능한 것은 이번 대선 때 추진하려고 했다. 하지만 개헌보다 내란 극복이 우선이라는 국민적 목소리가 워낙 커서 진행이 쉽지 않았다.”

“기회를 놓친 것은 참으로 안타깝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국회의장께서도 오해도 많이 받고 고생도 많이 하시는 데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개헌을 하려면 200명 이상 국회의원 동의가 필요하다. 구여권의 협조가 필요하다. 더 크게 보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국민적 논의를 통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선에서, 동의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순차적으로라도 개헌을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너무 무리하게 전면 개헌을, 너무 잘하려고 하다가 아무것도 못 하는 것보다는 합의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는 것이 제 생각이다.”

어떻습니까? 요약하면 국회 중심으로 여야가 합의하는 선에서 순차적으로 개헌하자는 제안입니다. 저는 이재명 후보의 이런 현실주의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개헌이든 개혁이든 변화를 추구할 때 우리가 빠지기 쉬운 가장 큰 함정은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어설프게 하려면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이상주의입니다. 이상주의는 반대와 다름이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론과 야당의 사수론이 맞섰을 때 여당 안의 현실주의자들은 “찬양·고무 조항을 없애는 선에서 타협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이상주의자들은 강경론에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결국 협상은 깨졌고 국가보안법은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정치에서 지나친 이상주의는 이토록 위험한 것입니다.

이재명 후보는 2022년 대선 때도 개헌 공약을 했습니다. 4년 중임제 도입, 개헌 시 대통령 임기 1년 단축,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도입 등입니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돼 개헌에 성공했다면 2026년에 대선과 지방선거를 동시에 치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낙선으로 없던 일이 됐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6·3 대선에서 당선된 뒤 개헌을 추진하면 1987년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개헌 가능성이 커집니다. 한 가지 걱정은 국민의힘입니다. 대선 이후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누가 당권을 쥐느냐가 중요합니다. 야당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개헌이 가능합니다. 정권 퇴진 운동이라도 벌이면 개헌 협상은 불가능합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5월 22일 청주 육거리시장을 찾아 김문수 대선 후보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선 이후 개헌 협상을 시작하면 제가 꼭 드리고 싶은 의견이 하나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 4년 주기 안정화 방안입니다. 지금은 대통령 임기가 5년인데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회 임기는 4년이라서 선거 주기가 불안정합니다. 게다가 대통령 궐위 시 임기 5년의 새로운 대통령을 뽑게 되어 있어 불안정성이 더 커집니다.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은 대통령 선거 4년 주기가 무너진 적이 없습니다. 대통령 궐위 시에는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해 잔여 임기 동안 재임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부럽습니다.

우리나라도 1공화국에는 부통령 제도가 있었습니다. 3공화국과 4공화국은 대통령 궐위 시 후임자가 전임자의 잔여 임기만 재임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대선 주기 안정화 제도를 재도입할 때가 됐다고 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헌법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헌법을 잘 만든다고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나라가 튼튼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헌법보다 정치가 중요합니다. 정치를 복원해야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나라가 튼튼해집니다. 개헌은 정치 복원의 강력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개헌해야 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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