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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경제와 노동 : 젠더 관점에서 다시 묻기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젠더, 공간, 권력' 등을 쓴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가 격주로 글을 씁니다.

자녀와 손을 잡고 걷고 있는 여성의 모습. 게티이미지


지금은 2025년 5월이다. 2023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전 지구적으로 코로나19 엔데믹을 선언한 지 불과 2년 남짓 지난 시점이다. 코로나19 이전은 BC(Before Corona)로, 이후는 AC(After Corona)로 명명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이를 계기로 우리 삶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때 커지기도 했었다. 필수노동인 돌봄의 중요성으로 시선을 돌려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전 지구적인 재난이 언제 있었나 싶을 정도로, 코로나19 이전의 삶의 궤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과거의 일상으로 빠르게 회귀하고 있는 듯하다.

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을 선언하고 이후 코로나19가 전 지구적으로 빠르게 확산하던 당시, 동물행동학자이자 환경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제인 구달은 코로나19의 직접적인 원인을 인간이 자연을 경시함으로써 환경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에서 찾으며,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구달의 진단은 이제 멈춰서서 그동안 우리가 경제라고 알고 있던 것, 우리가 살아왔던 방식에 질문을 던지며, 이런 재난을 다시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차분하게 탐색하자는 제안이기도 했다.

‘경제=자본주의’로 간주될 때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에 대해 새로 질문하는 계기가 됐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한 내과의원에서 시민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는 모습. 뉴시스


코로나19 팬데믹은 한편으로는 ‘경제’라고 하는 것이 ‘자본주의’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될 때, 특히 이윤 극대화를 위해 지구화라는 이름으로 일국적 차원을 넘어 전 지구적으로 무한정 확장되어 나갈 때, 인간의 삶은 물론이고 자연의 순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삶에 어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또한 여실히 보여주었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되면서, 돌봄의 사회화라는 이름 아래 집 밖으로 나갔던 돌봄의 책임이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이로 인해 돌봄의 재가족화와 돌봄의 여성화가 재등장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재난의 강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집 안에서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진 무수한 무급 돌봄노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영국의 사회과학자 라즈 파텔과 제이슨 무어가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2020)에서 강조하는 ‘저렴함’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들에게 자본주의는 단지 경제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과 나머지 지구 생명망의 관계를 엮는 방식이며,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을 저렴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그리고 여기서 저렴함이란 “자본주의의 위기를 일시적으로 수정함으로써 자본주의와 생명망 사이의 관계를 꾸려나가는 전략의 집합”이자 “모든 일을 가능한 한 적은 보상을 주고 동원하는 폭력”을 의미한다. 즉 “생명 생성 관계에 값을 매겨 생산과 소비의 회로 속으로 집어넣고, 그 회로 속에서 이들 관계는 가능한 한 낮은 비용으로 떨어”지며, “셈해지지 않던 생명 생성 관계가 가능한 한 적은 화폐 가치로 바뀜”을 뜻한다.

여성이 주로 담당하는 돌봄은 저렴함을 향하여 질주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대표적인 주춧돌이다. 특히나 생명을 낳고 길러 노동력으로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는 집 안에서의 돌봄은 저렴함을 넘어 아예 가격조차 매겨지지 않는 무임금·무비용의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무임금으로 행해지는 돌봄 없이는 자본주의 경제는 그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수많은 페미니스트가 강조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돌봄은 집 밖에서의 임금노동으로 변화되어도 ‘저렴함의 폭력’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경제’와 ‘노동’에 포함조차 되지 않는 돌봄



더더욱 놀라운 것은 돌봄이 집 안에서 머무는 한 ‘경제’라고 하는 것에, ‘노동’이라고 하는 것에 포함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인구를 경제활동인구와 비경제활동인구로 나눈다. 고용노동부의 고용노동통계 용어 설명에 따르면, 경제활동인구란 만 15세 이상 인구 중 조사 대상기간 동안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하여 실제로 수입이 있는 일을 한 취업자와 일을 하지는 않았으나 구직활동을 한 실업자를 뜻한다. 취업자는 물론이고 실업자도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여기서 핵심은 ‘수입’을 목표로 한 활동만이 경제 활동으로 계산된다는 점이다.

가사 노동하는 여성의 모습. 게티이미지


이런 이유로 수입을 목표로 하지 않는 육아와 가사 등의 활동은 경제 활동으로 여겨지지 않으며, 전업주부처럼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비경제활동인구, 즉 15세 이상 인구에서 일할 능력은 있지만 일할 의사가 없는 사람들로 분류된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5년 4월 현재 비경제활동인구는 총 1,597만9,000명으로, 그중 여성이 992만8,000명이고 남성이 605만 명이다. 그리고 활동상태별로 보면 여성의 경우는 가사가 575만5,000명이고 육아가 65만8,000명인 반면, 남성의 경우는 육아가 1만2,000명이고 가사는 22만8,000명이다. 여성의 경우 무급의 육아와 가사로 인한 비경제활동인구가 무려 641만3,000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이 정말로 경제 활동을 안 하고 있는 것일까?

너무 늦게 나온 국가 차원의 가사노동 가치평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통계청이 2018년 10월에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평가를 위한 ‘가계생산 위성계정 개발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처음으로 국가 차원에서의 공식 통계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위성계정‘이라 불리는 이유는 국민계정을 보완하는 부속계정이라는 뜻에서이며, 무엇보다 현재의 국민계정에서는 산정되지 않는 가사노동의 가치를 국가 차원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평가하여 발표함으로써 그동안 보이지 않던 가사노동을 비로소 보이게 만들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이 개발 결과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무급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360조7,300억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4.3% 수준이었고, 1인당으로 환산하면 연간 710만8,000원, 시간당으로 환산하면 1만569원이었다. 이어 2021년 6월에 발표된 ‘2019년 가계생산 위성계정’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무급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490조9,000억 원으로, 국내총생산의 25.5% 수준이었고, 5년 전인 2014년에 비해 35.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에 국내총생산의 24.3%, 2019년에는 25.5% 수준에 이르고 있음에도, 집 안에서의 가사노동은 무급이라는 이유로 ‘국민계정’에 직접 포함되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전업주부가 집 안에서 요리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이를 돌보고 부모를 돌봐도 그녀는 그저 비경제활동인구일 뿐이며 그녀는 경제라는 것, 노동이라는 것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처럼 간주되는 게 우리의 여전한 현주소다.

미국의 사회이론가 낸시 프레이저가 쓴 ‘좌파의 길: 식인자본주의에 반대한다’ 책의 표지. 서해문집 제공


젠더 관점에서 경제와 노동을 다르게 보기



뉴질랜드의 경제학자 메릴린 웨어링이 1988년에 ‘여성이 계산된다면: 새로운 페미니즘 경제학(If Women Counted: A New Feminist Economics)’을 발간한 후로도 어느 새 37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 웨어링은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이 주로 여성에 의해 수행된다는 이유로, 무임금이라는 이유로, 노동으로 간주되지 않는 가운데, 국내총생산이나 국민총생산(GNP)의 산정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 바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사회이론가 낸시 프레이저가 ‘좌파의 길: 식인자본주의에 반대한다’(2023)에서 자본주의가 돌봄 폭식증을 앓고 있다고 진단하며 왜 사회적 재생산이 자본주의 위기의 중심 무대인가를 강조한 바 있다. “생산적이라 간주되는 임금노동도, 이로부터 추출되는 잉여가치도, 돌봄 활동이 없다면 있을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집 안의 노동자’가 없이는 ‘집 밖의 노동자’도 없다는 점을 기억하며, 젠더 관점에서 경제와 노동을 다르게 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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