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에선 박희영 구청장 등 전부 무죄
인파 사고 지자체 책임 권한이 쟁점
인파 사고 지자체 책임 권한이 쟁점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이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정다빈 기자
이태원 참사에 부실 대응해 피해를 키운 혐의로 기소된 서울 용산구청 관계자들의 항소심에서 '다중운집인파사고 예방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권한'을 두고 검찰과 변호인이 공방을 벌였다. 재판부는 7월부터 본격적인 증인신문을 예고하며, 유족 측 법정 방청을 보장하기로 했다.
서울고법 9-1부(부장 공도일)는 20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과 유승재 전 부구청장, 문인환 전 안전건설교통국장, 최원준 전 안전재난과장 등의 항소심 1차 공판을 열었다. 박 구청장은 검은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법정에 출석했다.
검찰은 용산구청에 이태원 참사를 방지할 의무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검찰은 "재난안전법 규정은 예시적 규정으로, 이태원 참사는 지자체가 각종 의무를 부담하는 사회재난에 해당한다"며 "피고인들에겐 (사고 발생에 대한) 예견 가능성도 있었다"고 밝혔다.
피고인 측은 이에 "재난안전법이 열거하는 사회재난 유형에 이태원 참사가 포섭될 수 없다"며 검찰의 법률 해석에 오류가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용산구엔 인파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전혀 없고, 그런 점에서 1심이 용산경찰서와 용산구청 관계자들을 달리 판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양측 주장을 들은 뒤 방청석을 채운 참사 유가족 측에도 진술 기회를 부여했다. 피해자들과 함께 법정에 출석한 최종연 변호사는 피고인 측 주장에 논리적 허점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유가족들이 직접 재판을 지켜볼 수 있도록 방청석 중 일부를 확보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면서, 다음 달 26일 2회 공판을 거쳐 7월부터는 증인신문을 실시하겠다고 예고했다. 유가족 측은 취재진에 "판결을 서두를 게 아니라,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구청장은 2022년 10월 29일 대규모 인파로 인한 사상 사고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안전관리계획을 세우지 않고, 상시 재난안전상황실을 적정하게 운영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자신의 참사 현장 도착 시간을 허위로 기재한 보도자료를 배포한 혐의도 적용됐다.
1심은 그러나 재난안전법에 다중운집으로 인한 압사사고가 재난 유형으로 분류돼 있지 않고, 지자체에 밀집 군중을 분산·해산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근거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허위 보도자료 배포 부분에 대해서도 "직접 증거가 없다"며 무죄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