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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의 해운담합 제재 가능 여부·과징금 적절한지 여부 ‘법적 공방’

이 기사는 2025년 5월 18일 오전 9시 10분 조선비즈RM리포트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공동행위’를 두고 벌어진 공정거래위원회와 해운업계의 8년 간의 갈등이 재점화됐다. 공동행위란 컨테이너 선사들이 동맹을 맺어 운항하는 항로를 나누고, 기본운임과 부대운임 가격을 함께 합의하고, 실행하는 것을 뜻한다. 대법원이 대만 해운사 에버그린의 손을 들어줬던 고등법원의 지난해 판결을 파기환송하면서, 양측은 또다시 법정에서 다투게 됐다.

연안해운의 중심인 부산항의 모습./한국해운조합

고등법원 “규제 권한 해수부에”, 대법원 “공정거래법 적용 가능”
공정위는 2022년 공동행위를 이유로 국내외 선사 23곳에 시정명령과 함께 총 96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고려해운 296억원 ▲흥아라인 180억원 ▲대만 완하이 115억원 ▲장금상선 86억원 ▲홍콩 TSL 39억원 ▲HMM 36억원 ▲에버그린 33억원 등이다. 이를 두고 해운사들은 공정위가 해운사의 공동행위를 규제할 권한이 없다며 과징금 취소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고등법원은 지난해 “공정위가 해운사의 공동행위를 규제할 권한이 없다”라며 대만 선사 에버그린에 부과한 과징금 34억원을 취소하라고 했다. 당시 고등법원 재판부는 “해운법에 따르면 외항 해운사들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는 해양수산부장관만이 배타적 규제권한을 가진다”라며 “피고인 공정위에게는 이를 규제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고등법원은 공동행위가 해운법상 합법행위라는 점에 주목했다. 해운법 제29조는 선사가 화주들과 협의할 경우,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신고할 경우 정기선사 간 운임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단, 공동행위 탈퇴 시 부당한 제한 금지, 부당한 운임 인상으로 인한 경쟁의 실질적 제한 금지 등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뒤집고 에버그린에 대한 공정위 조치가 적법하다고 봤다. 대법원 재판부는 “해운법에는 가격담합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법 적용을 제외한다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라며 “이 사건 가격담합 행위에 해운법이 배타적으로 적용된다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해운법이 가격담합 행위에 대한 해수부 장관 권한을 인정했다고 해서, 공정거래법 적용이 아예 안 된다고 볼 수는 없다는 취지다. 해운법의 공동행위 관련 세부규정이 촘촘히 마련되지 않은 탓에, 양 측은 또다시 공방을 이어나가게 됐다.

공정위 “해운사, 화주 협의·해수부 신고 미흡… 공정거래법 적용해야"
국내 수출입 기업의 물류난 해소에 도움을 주기 위해 투입된 베트남 임시운항 선박.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연합

공정위는 해운사도 공정거래법상 담합 행위를 하면 안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공정위는 해운사들이 화주들과 충분히 협의하지 않았고, 해운사들이 해수부에 한 신고도 미흡했다”며 “해운법상 적법한 행위가 아닐 경우, 공정거래법 적용대상이다”라고 주장한다.

공정위에 따르면, 선사들은 2003년 1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총 541차례 회합을 통해 한-동남아 수출·수입 항로에서 총 120차례 운임을 합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위는 선사들이 운임 인상 방식 중 운임 인상 폭(RR)은 신고했으나, 최저운임 결정(AMR)은 신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선사들이 운임을 합의한 후 다른 선사의 실행 여부를 점검하고, 합의를 위반하는 선사들에게는 벌과금을 부과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조사 결과 선사들이 다른 선사들의 화물을 침탈하지 않기로 하고, 합의 운임을 수용하지 않는 화주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선적을 거부했다고 파악하기도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해운사들과 화주단체와의 협의가 부족했고, 타 해운사가 공동행위 탈퇴 시 부당한 제한을 했다“며 ”이들의 공동행위는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라고 했다. 구 공정거래법 58조에 따르면, 공정위는 다른 법률에 따라 정당한 행위일 경우에는 공동행위를 허용한다.

해운사 “빠뜨린 내역, 신고 대상 아녔다… 해수부가 판단해야"
반면, 해운사와 해수부는 “신고해야 할 공동행위는 모두 신고했고, 공동행위에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내세운다. 해운사와 선사들은 운임인상폭(RR)은 해수부에 신고해야 하는 항목이라서 신고했지만, 공정위가 지적한 최저운임(AMR)은 신고 대상조차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최저운임(AMR)이 앞서 신고한 운임(RR)보다 더 낮고, 변경이 잦다는 이유다.

예를 들어 A사와 B사가 각각 1000달러, 1100달러의 운임을 받고 있다가 300달러(RR)를 인상하기로 했다면, 해운사들은 해수부에 운임을 1300~1400달러로 신고했다. 해운사들은 이후 최저금액(AMR)을 정할 때는 1300달러보다 낮은 금액을 택하게 돼, 신고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해운협회 관계자는 “이미 신고한 금액보다 더 낮은 금액을 신고할 이유가 있느냐”며 “최저금액은 변동이 잦아 이를 모두 신고할 경우 해수부도 선사도 업무가 과도하게 많아진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만약 공동행위가 바람직하지 않았더라도, 이는 해수부가 판단할 일이지, 공정위가 판단할 일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해수부도 해운사들의 공동행위가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표하고 있다. 해수부는 앞서 공정위의 제재가 해수부의 규율 권한을 침범했다고 보고, ‘해운업계 공동행위의 규율 소관을 해수부로 명확히 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다만, 공정위가 ‘해운법 개정은 이번 사건을 무마하려는 시도’라고 지적하자, 법 개정은 무산됐다.

해수부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을 법 개정으로 해결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며 “법원의 판단이 나온 뒤 제도 개선 여부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해운업계 전문가 “기간산업 보호 위해 공동행위 필요… 제재 시 화주도 피해”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해운사들과 공정위는 ‘공정위가 선사들의 공동행위 제재를 할 수 있는지’와 ‘동남아 정기 선사들의 공동행위가 위법해서 과징금을 부과할 정도였는지’를 두고 또 다시 다투게 된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20여 개 해운사와 공정위 간의 관련 소송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앞선 고등법원, 대법원 판결은 ‘공정위가 해운사 공동행위를 제재할 권한이 있느냐’만 주로 다뤄진 탓에, ‘공정위의 과징금이 적절했느냐’를 두고 양 측은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해운업계 전문가들은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가 적절하다는 결론이 날 경우, 국내 해운산업 경쟁력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본다. 국내외 선사들의 공동행위가 금지되면, 중국 선사들이 대대적인 운임 인하 공세를 펼쳐 국내 선사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운업계 전문가들은 해운사의 공동행위 조항이 왜 생겼는지부터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운물류 전문가인 전준수 서강대 경영대 명예교수는 “많은 국가들이 영세한 국적 선사와 기간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해운사들의 공동행위를 보장해왔다”며 “반독점법 예외를 인정하지 않은 미국의 경우, 정기 선사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선사가 무너지면 해외 대형 선사가 시장을 과점할 수 있고, 이들이 가격을 좌지우지하면 국내 화주가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우리나라는 사실상 섬나라로, 해상 운송이 물류의 중심이라는 점을 공정위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운법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해수부가 제도를 명확히 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공동행위가 문제 되지 않도록 해수부가 사전에 제도를 실효성 있게 정비하고, 제재도 강화해야 한다”며, “미국의 연방해사위원회(FMC)와 같은 전문기구를 참고해 규제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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