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ㅌㅂ]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매일 25억명 넘는 사람이 찾는 유튜브엔 매일 수많은 채널이 만들어집니다.많은 한국인은 오늘도 유튜브에 접속해 정보를 얻고 음악을 듣고 뉴스를 보고 위안을 받습니다. '유튜버'와 '인터뷰'의 첫 자음을 딴 'ㅇㅌㅂ'은 이렇듯 많은 이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만난 최재천 교수. 최 교수는 인터뷰 도중 과거 실험용으로 쓰다가 ‘쓸모’를 다했던 쥐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실험용으로 쓸 수도 없었고, 각종 약물이 투여된 탓에 자연에 놓아줄 수도 없었다”며 “그 전까지는 아무렇지 않게 쥐를 죽여왔지만 그 쥐를 죽이는 건 못 하겠더라. 그래서 생물을 죽이지 않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연구하는 생태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권현구 기자
MZ세대에게 최재천(71)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세계적 석학’보다는 ‘유튜버’로 유명하다. 수십 년간 강단에 오르며 책을 내던 때보다 유튜버로도 활동하는 요즘 사람들은 최 교수를 더 많이 알아본다. 캠퍼스를 거닐 때면 “유튜브에서 봤다. 팬이다”라며 달려오는 학생도 있다.
그가 2020년 시작한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의 구독자는 76만명에 달한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만난 최 교수는 “부담스럽다는 게 정말 깊은 심정”이라며 구독자가 50만명을 넘었을 때를 회상했다.
“한국 인구가 5000만명인데 50만명이면 1%잖아요.100명 중 1명이 제 채널을 구독하고 있다는 뜻인데, 갑자기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교회 나가는 진화론자…그가 말하는 ‘양심’과 ‘다양성’
최 교수는 자신을 ‘사회 생물학자’로 규정했다. 사회를 구성하는 동물의 진화와 행동을 연구하는 게 그의 일이다. 인간 또한 ‘사회를 구성하는 동물’인 만큼 그에겐 인간도 연구 대상일 수밖에 없는데, 눈여겨봄 직한 대목은 진화론을 연구하는 그가 40년 넘게 주일마다 교회에 출석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물었을 때 최 교수는 자신이 크리스천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아내 이야기부터 꺼냈다. 결혼하면 교회에 다니겠다고 아내에 약속했고, 이 약속을 40년 넘게 지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제가 아내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는 없잖아요. 아내는 누구보다 현명한 사람이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성도예요. 제가 교회에 나가는 것은 아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종교의 진화’를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컸습니다. 제게 중요한 연구 주제 중 하나가 종교이기 때문이죠.”
종교와 과학은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최 교수의 유학 시절 지도교수였던 미국 하버드대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처럼 종교와 과학의 공존을 제안한 이도 있지만,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처럼 ‘신이 없는 사회’가 더 희망적이라고 주장한 학자도 수두룩하다. 최 교수는 자주 갈등을 빚는 종교와 과학의 관계가 자신에겐 “영원한 숙제”라고 했다.
교회 이야기 외에도 최 교수와의 인터뷰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간단없이 이어졌다. 최 교수는 호주제 폐지나 환경 이슈 등 각종 사회 문제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것으로 유명한 학자다. 2년 전 서울대 졸업식에서 축사를 맡았을 땐 그동안 다양한 사회 활동에 동참한 것은 “그놈의 얼어 죽을 양심” 때문이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었다.
실제로 ‘양심’이라는 단어는 최 교수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월 그는 ‘양심’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었는데, 그의 설명에 따르면 양심의 가치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가령 공정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자. 최 교수는 공평에 양심이 포개질 때 공정이 완성된다고 말한다. 모두가 벽 너머를 보려 할 때 키와 관계없이 같은 높이의 의자를 주는 게 ‘공평’이라면, 각자의 키를 고려한 맞춤형 의자를 제공하는 게 ‘공정’이다. 양심의 눈을 뜨고 공정을 추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최 교수가 평생에 걸쳐 실천한 인생 철학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최 교수가 차기작의 ‘주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다양성’이다. 자연은 항상 다양성을 추구해왔지만 인간 사회는 달랐다. 그나마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성별이나 인종 등과 관계없이 개인의 다양성이 존중받기 시작했다. 그는 “다음에 내놓을 책엔 세종대왕과 관련된 이야기를 꼭 넣을 것”이라고 귀띔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진=권현구 기자
“백성이 다양한 생각을 하면 왕은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세종대왕은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못 하는 백성을 안타깝게 여겨 한글을 만들었잖아요. 통치자 중에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인류 역사에 있었을까요. 의도 자체가 순수하고 아름다워요. 한국에 이런 인물이 있었다는 걸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다양성이 보장되려면 사회 구성원 사이엔 공존의 가치가 우선 공유돼야 한다. 최 교수는 2011년 ‘공생하는 인간’이라는 의미가 담긴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개념을 주창했다. 기존의 호모 사피엔스가 지혜를 앞세우며 자연을 개발하고 정복했다면 이제는 ‘공생적 인간’으로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생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사례는 자연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꽃가루를 날라주고 꿀을 받는 곤충과 식물이 대표적이다. 개체 수가 가장 많은 곤충과, 가장 많은 무게를 차지하는 식물의 ‘연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해양 생태학자 제인 루브첸코가 30년쯤 전 미국 생태학회 회원들의 연구 주제를 분석했어요. 당시 여성 회원의 45%는 이미 협력 관계를 연구하고 있었죠. 남성 회원의 80%가 경쟁을 들여다볼 때 말이죠. 이제는 남성 생태학자 중에서도 협력을 연구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지금 그런 트렌드가 형성돼 있어요.”
“과학적 사고 할 수 있는 대중 많아져야”
강의도, 출간도, 유튜브도 모두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최 교수의 노력이다. 최 교수는 “대중이 과학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 구성원들이 과학적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이를 바탕으로 합리적 판단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서다.
최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한국의 희망을 봤다고 했다. 당시 세계 각국의 정부는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일상 속 거리 두기’를 제안하면서 외출을 제한하고 만남을 최소화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예컨대 미국인들은 자유를 구속하지 말라며 거리로 뛰쳐 나왔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격리 생활을 지키고 정부 주도의 예방 접종에도 협조했다.
“미국은 백신을 만들어내는 최첨단 과학 국가지만 대중의 과학 이해도가 낮아요. 그러니까 불만의 목소리를 내며 집에서 뛰쳐 나왔죠. 하지만 우리 국민은 바이러스 전파 경로를 이해했고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과학적 사실도 인정했어요. 저는 코로나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대중의 과학화가 이뤄진 걸 봤고 굉장히 기뻤어요.”
최 교수는 과학에 눈뜬 대중이 관심을 갖게 된 분야로 기후위기 문제를 꼽았다. 유튜브에 올린 수백 개의 콘텐츠 가운데 이 문제와 관련된 영상의 조회 수가 평균치를 웃돌았다는 것이 방증이다.
최 교수는 학계 후배들에게 ‘희망의 근거’를 찾아달라고 요청하곤 한다. 지구의 기온이 높아지고, 그로 인해 폭염과 혹한이 잦아지는 등 환경이 망가지는 과정만 전할 것이 아니라, 이를 거스르는 ‘회복의 증거’를 찾을 것을 당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희망의 근거, 회복의 증거는 무엇일까. 산불이나 태풍으로 망가진 생태계가 스스로 다시 살아나는 모습이 예시가 될 수 있다. 최 교수에 따르면 2000년 동해안 산불 이후 인위적 조림을 한 지역과 자연 회복 지역 중 인간이 개입하지 않은 지역의 생물 다양성이 더 빨리 개선됐다. 인간이 건드리지 않는다면 자연은 스스로 회복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코로나 때 인간의 활동이 줄어드니까 미세먼지가 줄어들고 파란 하늘이 돌아왔잖아요. 자연의 회복력은 우리 생각보다 굉장히 강할지도 몰라요. 그런 데이터를 축적하다 보면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