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주택총조사 100주년··· 고단한 조사원들
개인정보 노출·범죄 우려 맞물려 '거부' '회피'
일부 현장 관리자, 조사원에 무리한 방문 요구
"통계 방식 고도화하고, 보조 지표 마련해야"
개인정보 노출·범죄 우려 맞물려 '거부' '회피'
일부 현장 관리자, 조사원에 무리한 방문 요구
"통계 방식 고도화하고, 보조 지표 마련해야"
서울의 한 인구주택총조사 미응답 가구 현관문 앞에 방문 안내문이 여러 개 붙어 있다. 독자 제공
"대다수는 저를 사기꾼, 보이스피싱범 취급했어요. 다시는 오지 말라는 말도 자주 들었죠."
올해 서울에서 인구주택총조사원으로 활동하다 그만둔 최모(30)씨가 씁쓸해하며 말했다. 최씨가 질문을 던지면 '왜 묻느냐' '사생활 캐는 거 아니냐'는 말이 돌아왔다고 한다. 국가 정책에 꼭 필요한 자료라고 생각해 그는 문전박대를 견뎠지만 한 시민으로부터 신분증 앞뒷면을 반강제로 촬영당한 뒤 끝내 활동을 중도 포기했다.
'인구주택총조사'가 시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통신사의 개인정보 해킹,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등이 잇따라 발생하고 기관 사칭 보이스피싱 급증으로 시민들이 개인정보에 민감해진 탓이다.
범죄우려↑ 참여율↓
인구주택총조사 안내. 국가데이터처 제공
19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인구주택총조사는 국내 모든 사람·주택의 규모 및 특징을 파악하는 국가 기본 통계로, 5년마다 국민의 20%(약 500만 가구)를 표본 추출해 실시한다. 수탈 목적이긴 했지만 1925년 조선총독부가 시작한 '간이 국세조사'가 첫 조사로 평가되며 이때부터 따지면 올해로 100주년이다.
시대 흐름에 맞춰 5년마다 새로운 항목도 추가한다. 올해는 저출생, 고령화, 비혼·동거, 다문화 등 사회 변화를 고려해 '결혼 계획 및 의향' '가구 내 사용 언어' '임대 주체' '가족 돌봄 시간' 등 7개 항목을 더해 총 55개 항목이다. 이 중 행정자료로 대체하기 어려운 42항목을 묻는다. 표본으로 선정된 시민들을 대상으로 지난달 인터넷 및 전화 조사가 이뤄졌고, 이달 1일부터 18일까지는 미응답 가구 방문 조사가 실시됐다.
그러나 국가데이터처(구 통계청)에 따르면 조사 참여도는 감소 추세다. 전수 방문 조사였던 2010년도까지는 응답률이 100%에 가까웠으나 2015년(97.8%), 2020년(96.3%) 등 계속 줄고 있다. 1% 감소 때마다 인구 5만 명의 답변이 누락되는 셈이다.
올해는 개인정보 관련 사건사고 여파로 통계 수집이 더 어려워졌다. 서울 관악구 조사원 김모(32)씨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도 있었는데 국가가 신상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냐고 따져물어 죄송하단 말밖에 못 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실제 방문조사 종료 3일 전인 지난 15일 기준 전국구 진척률이 90%에 안팎에 그쳐 일부 지자체는 기간 연장을 요청해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신뢰도 높일 통계 방식 고민해야"
조사 마지막날인 18일 현주(가명)씨는 관리자로부터 응답률을 더 높이라고 압박을 받아 따로 호소문을 작성해 미응답 가구 현관문에 부착했다. 현주씨 제공
이러다보니 응답률을 높이려고 관리자들이 조사원에게 무리하게 방문 조사를 강요하기도 한다. '부재불응(응답자가 없거나 답하지 않는 상태)'이 3회 이상일 경우 더 이상 방문하지 않고, 오후 9시 전엔 근무를 마치는 게 권장 사항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김씨는
" 관리자가 밤 9시 이후에도 업무를 하라고 지시했다"며 "3번 이상 방문해서 부재불응인 걸 확인해도 승인해주지 않고 설득하라고 했다"고
토로했다. 광주 서구 조사원 현주(가명·32)씨도 "관리자가 미완료 세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가서 빈집 여부를 확인하고, 살고 있다면 전화 연결을 부탁해 응답을 받아 오라고 했다"며 "억지로 받아낸 응답을 믿을 수 있을지도 의문"
이라고 혀를 찼다. 시대가 바뀐 만큼 새로운 표집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지속가능경제학과 교수는 "통계 방식 고도화, 본 조사 외에도 믿을 만한 보조 지표 마련, 허수 응답을 걸러낼 문항 설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