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노동력’ 장애이주민 4만6000명, 이민시대 최고 난제로
이민시대 - 노동력이 아니라 사람이 온다 4년 뒤 국내 체류외국인은 300만명으로 전망된다. 인구 절벽에 따른 이민자 증가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인력 확보 차원을 넘어 사회통합까지 고려한 섬세한 이민 정책이 절실하다. 중앙일보는 이미 도래한 ‘이민시대’ 현장의 내외국인을 두루 만나 서로 공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점검했다.
오수연(55·가명)씨가 하루를 보내는 자택 침대 위에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오씨는 5년 전 출근길 버스 바퀴에 깔리는 사고로 인해 한쪽 팔을 잃었다. 전율 기자
몽골 출신의 한국 영주권자 오수연(55·가명)씨는 왼팔이 없다. 5년 전 출근길, 느닷없이 돌진한 버스에 깔려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의사는 괴사가 진행된 팔꿈치 아래를 절단해야 한다는 절망적 소식을 전했다. 팔을 자른 뒤에도 혈관 이식을 위해 12번의 전신마취 수술을 견뎠다. 이후 오씨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호텔 객실 담당(하우스키퍼) 일을 관둬야 했고, 통장 잔고는 금세 바닥났다. 약을 삼켜도 잦아들지 않는 혈관 통증 탓에 아직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요리도 제대로 할 수 없어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 지 오래다.
중증 장애인으로 등록됐을 때만 해도 일말의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그가 국가에서 받는 지원은 전기·가스 요금, 지하철 무임승차 카드가 전부다. 장애인 복지센터를 찾아 장애인 반찬 배달 서비스 지원을 요청했다가 “외국인은 안 된다”고 거절당했다. ‘국가 예산을 고려해 외국인 장애인에 대한 사업비 지원을 제한할 수 있다(장애인복지법 제32조)’는 법 조항이 근거였다.
결혼이민으로 고향을 떠나 한국에 뿌리내린 지 25년. 몽골어보다 한국어가 편하고 영주권도 가졌다. 그리고 한국에서 일하다 불의의 사고로 다쳤다. 그러나 외국인인 오씨는 여전히 장애인 의료비 지원이나 장애수당 등 복지 사업 대상에선 제외된다. 한국 사회에서 가졌던 일말의 소속감도 산산이 부서졌다. 그는 “20년 넘게 한국에서 일하고 세금도 내고 살았다”며 “출근길 사고로 장애를 얻었는데 외국인이란 이유로 실질적 도움을 받지 못하니 너무 서럽다”며 눈물을 쏟았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재외동포 최올가씨가 지난해 인천 연수구 장미근린공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하반신이 마비된 고려인 최올가(49·우즈베키스탄)씨도 장애인 등록을 했지만 주요 장애인 복지에선 배제됐다. 그는 “다시 일하고 싶어 도움을 구하러 주민센터를 찾아갔지만, 외국인은 장애인 등록을 했어도 자립 지원 서비스는 받을 수 없다고 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에 체류하는 장애 이주민 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장애 이주민은 2020년 4354명에서 2024년 8238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문제는 통계 밖의 장애 이주민이 더 많다는 점이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으로 등록이 가능한 외국인을 재외동포·재외국민·영주권자·결혼이민자·난민인정자로 한정한다. 체류 외국인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이주노동자·유학생·난민신청자·동반 가족 등은 등록이 불가능하다.
법무부 산하 이민정책연구원은 ‘외국 국적 장애인 등록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실제 장애 이주민 수가 4만6377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2024년 7월 기준). 그림자 속 장애 이주민이 4만명 가까이 된다는 뜻. 보고서는 “국적과 장애라는 이중 차별로 새로운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외국인 장애인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장애 이주민까지 지원해야 하냐’는 반감이 여전한 것이 현실이다. 이민정책연구원이 내국인 6000명을 조사해 발간한 ‘이민자 사회통합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을 대상으로 ‘공공부조 제공을 확대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30.3%, ‘사회보험 제공을 확대해야 한다’는 27.2%에 그쳤다. 박지환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민자를 오로지 노동력으로만 본다면 한국 사회에 장애 이주민은 필요 없는 존재로 인식될 수 있다”며 “장애 이주민은 한국 사회가 이주민을 한 명의 사람으로서, 얼마나 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존재”라고 진단했다.
바가트 붑 나라얀(45)의 아들 오저스(8)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다. 오저스는 3년 전 자폐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영근 기자
‘있지만 없는’ 그림자 장애 이주 아동 급증 장애가 있는 이주 아동은 성인보다 더 큰 위기 속에 놓여 있다.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바가트 붑 나라얀(45)의 8세 아들 바가트 오저스는 2년 전 자폐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았다. 바가트는 지난 2010년 비전문취업(E-9) 비자로 한국 땅을 밟았고 3년 전 지역특화형(F-2-R) 비자를 얻어 경북 영주시 한 자동차 부품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는 “아들은 국적과 체류 자격 문제로 지원을 받을 수 없다. 한국인이 기피하는 곳에서 일하며 세금도 착실히 내는데, 지원은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속상했다”고 말했다. 베트남 출신 판 반 투언(39)의 딸 판 반 장미(9)도 정부가 제공하는 활동 지원 등을 받지 못한다. 장미는 태어나자마자 뇌병변 장애 진단을 받았다. 양 발목에 찬 빨간색 보조기에 의지해 겨우 몸을 가누는 상태라 다리 근육이 굳기 전 재활 치료가 필요하지만, 투언에게는 시간당 10만원인 치료 비용이 버겁다.
판 반 투언(39)과 딸 장미(9)의 가족의 모습. 양쪽 발목에 보조기를 찬 장미가 엄마에게 의지해 걷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민정책연구원에 따르면 10세 미만 등록 장애 이주민은 2020년 40명에서 2024년 165명으로 4배 이상 증가했고 10~19세 장애 이주민도 같은 기간 26명에서 160명으로 급증했다. 가족을 초청할 수 있는 비자 소지자가 늘면서 미성년 장애 이주민도 함께 증가했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정지숙 ‘이주민과함께’ 이사는 “가족과 체류할 수 있는 비자는 늘려 놓고 복지 등 정주 여건은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있다”며 “이주민을 노동력으로만 보고 설계한 허술한 이민 정책이 현실과 충돌하고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낳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국적을 따지지 않고 장애 이주민에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독일 역시 국적과 체류 자격과 관계없이 장애인 복지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지난해 6월 한국 정부에 “출신 국가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이 사회 보장과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정부는 현행법상 모든 이주민에게 복지 서비스를 허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체류 자격에 따라 장애인 등록 신청이 제한될 수 있으나, 향후 단기체류자를 제외한 다른 이주민의 장애인 등록을 허용하는 방안은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주민이 직접 부담하는 자원으로 기금을 마련해 지원하는 방법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이민 정책을 주요 추진 계획 중 하나로 삼겠다고 밝히며 ‘이민자 기여 사회통합기금’ 마련을 제시했다. 외국인 납부 수수료 등을 재원으로 별도 기금을 마련하는 게 골자다.
이민자 사회통합지수, 어떻게 조사했나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산하 이민정책연구원이 2024년 8월 19일~9월 20일 전국 17개 광역시·도와 다문화도시협의회 소속 22개 기초자치단체의 만 19세 이상 내국인 6000명과 이민자(국내 장기체류 외국인·5년 이내 귀화자) 6000명을 대상으로 대면면접조사 방식과 Open URL 활용 조사 방식을 병행해 진행했다. 표본은 전국 이민자 모집단 약 185만명의 체류 자격별 특성을 반영하여 설계 한 후 지역·성·연령별을 층화하여 추출했다. 목표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1.6%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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