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명 동원 사기단지 운영 '범죄 거물'
2009년 캄보디아 건너가 시민권 취득
美 아닌 中으로 송환 "정치적 이해관계"
2009년 캄보디아 건너가 시민권 취득
美 아닌 中으로 송환 "정치적 이해관계"
7일 캄보디아에서 체포된 중국 출신 사업가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 프린스그룹홀딩스 홈페이지
캄보디아 대규모 온라인 사기(스캠) 범죄 단지 배후로 지목된 천즈(38) 프린스그룹 회장이 현지에서 체포돼 중국 송환됐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평범한 사람들을 희생양 삼아 수십억 달러 규모의 ‘검은돈 제국’을 구축해 온 인물이다. 범죄 거물이 사실상 몰락 수순에 놓이면서, 중국인인 그가 어떻게 캄보디아에서 정·재계에 깊숙이 뿌리내릴 수 있었는지를 둘러싼 관심도 커지고 있다.
1만 명 동원된 범죄 단지 운영
캄보디아 내무부는 7일 천즈를 포함한 중국 국적자 3명을 체포해 중국으로 송환했다고 밝혔다. 당국은 천즈의 캄보디아 국적이 지난해 12월 국왕 칙령으로 이미 박탈됐다고도 덧붙였다.
천즈는 대규모 사이버 범죄 조직을 운영한 혐의로 지난해 10월 미국과 영국에서 사기 및 자금세탁 혐의로 기소됐다. 미국 검찰에 따르면 그는 인신매매된 노동자들을 범죄 단지에 감금하고 강제 노동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미 법무부는 악명 높은 프놈펜 태자·망고 단지를 포함해 프린스그룹 산하 범죄 단지에 5,000~1만 명이 동원됐고, 사기에 활용된 계정이 70만 개를 넘었다고 추산했다.
지난해 10월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 캄퐁스프주에 위치한 '망고단지' 외부 모습. 캄퐁스프=허경주 특파원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돼지 도살’로 불리는 가상화폐 사기를 강요받았다. 장기간 피해자와 신뢰를 쌓은 뒤 투자금을 가로채는 수법이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거나 범행을 거부할 경우 폭행과 고문이 뒤따랐다는 증언도 나온다. 중국과 한국, 일본, 동남아 국가 출신들이 고소득 일자리를 찾으러 왔다가 폭력과 위협 속에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사기 범죄에 내몰렸다.
지난 3개월간 유럽과 미국, 아시아 각국 당국은 프린스그룹을 상대로 대규모 자산 몰수에 나섰다. 미국 정부는 이 과정에서 약 12만7,000여 개의 비트코인을 압수했다. 현재 시세 기준으로 약 110억 달러(약 159조 원)에 달한다. 한국 정부도 지난해 11월 천즈 등 개인 15명과 프린스그룹 및 관련 단체 132개를 독자 제재했다.
천즈가 기소된 미국·영국이 아닌 중국으로 송환된 배경을 놓고, 캄보디아 정부가 정치권 결탁과 인권 문제 등을 둘러싼 서방의 정밀한 사법 절차를 피하려 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버드대 아시아센터의 초국적 범죄 전문가 제이콥 대니얼 심스 방문연구원은 AP통신에 “천 회장을 중국에 넘기는 것이 (캄보디아로서는) 가장 손쉬운 선택이었을 것”이라며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서방 감시를 피해 처리하려는 중국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0월 캄보디아 프놈펜 중심가 센속에 위치한 프린스그룹 본사 전경. 왼쪽과 오른쪽 2개 동을 사용하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켜져 있던 대형 전광판이 꺼져 있다. 빌딩 가장 높은 곳에 걸려 있던 왕관 모양의 그룹 간판도 떼어졌다. 프놈펜=허경주 특파원
10대 때 사기 가담, 조직 키워
천즈의 성장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중국 홍성신문, 홍콩 성도일보 등을 종합하면, 중국 푸젠성 어촌마을 출신인 그는 중학교를 중퇴한 뒤 10대부터 PC방에서 일했다. 이곳을 근거지 삼아 동급생을 모으고 사이버 공격과 불법 게임 서버 운영, 이용자 정보 거래 등을 통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이때 벌어들인 수익금은 이후 그가 조직을 불려 나가는 밑천이 됐다.
2009년 캄보디아로 건너가 부동산 사업을 발판 삼아 세를 키웠고 2014년 캄보디아 국적을 취득했다. 이듬해 프린스그룹을 설립한 그는 부동산을 넘어 금융·관광·카지노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지난해 10월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중심가에 위치한 프린스그룹 산하 진베이 팰리스 호텔 전경. 시아누크빌=허경주 특파원
계열사 프린스호텔을 정·재계 인사들의 사교 거점으로 활용하며 ‘성공한 사업가’ 이미지를 구축한 뒤, 2023년 캄보디아 왕실로부터 귀족 칭호인 ‘오크냐’를 받기도 했다. 이 칭호를 받으려면 최소 50만 달러를 정부에 기부해야 한다. 훈마네트 캄보디아 총리와 그의 부친이자 실권자인 훈센 전 총리의 고문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서방 제재가 본격화하고 체포 가능성이 높아지자 캄보디아 권력층은 재빠르게 선 긋기에 나섰다. 훈센 전 총리 대변인은 7일 “법을 위반한 사람은 누구든 신분·지위·직무를 막론하고 제재를 피할 수 없다”며 “국가 지도부 이름을 보호막으로 불법행위를 은폐하는 세력은 단호히 정리해야 할 대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