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노쇠 달라…되돌릴 수 있는 노쇠
단백질 더 먹고, 더 강한 근력운동 기본
“의료·요양비 1100만원 덜 쓰게 돼”
단백질 더 먹고, 더 강한 근력운동 기본
“의료·요양비 1100만원 덜 쓰게 돼”
2019년 9월 26일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컬쳐파크에서 열린 \'시니어 패셔니스타 콘테스트\'에서 참가자들이 런웨이 무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몸은 지금 ‘노화’하는 걸까, 아니면 ‘노쇠’하는 걸까?
얼핏 보면 같은 질문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의학계에서는 이 둘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단순히 나이를 먹는 노화 과정 속의 노인과 몸의 회복 구조가 무너진 노쇠한 노인이 앞으로 10년 동안 누리게 될 삶의 질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노쇠는 인간이라는 ‘배터리 시스템’ 자체 고장
인간의 몸을 하나의 ‘배터리 시스템’에 비유해보자. 이 배터리는 단순히 에너지를 저장하는 통이 아니다. 충전과 방전을 조절하고, 과열을 막으며, 과부하를 관리하는 복합적인 시스템이다.
젊을수록 이 시스템은 탄탄하다. 밤새 잠을 자고 나면 에너지가 다시 100%에 가깝게 회복되고 온종일 움직여도 회복 속도가 빠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변화가 시작된다. 노화는 배터리로 치면 ‘최대 충전 용량’이 서서히 줄어드는 과정에 가깝다. 20대에는 100%까지 충전되던 몸이 40대에는 90%, 60대에는 80% 정도까지만 차는 식이다. 그렇다고 충전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방전 속도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사용 시간을 조절하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
노쇠는 전혀 다르다. 배터리의 용량 문제가 아니라, 관리 시스템 자체가 흔들린 상태다. 충전해도 금세 방전되고,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아도 에너지가 새어 나간다. 작은 활동에도 과부하가 걸리고, 한번 방전되면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심한 경우에는 별다른 경고 없이 ‘전원이 꺼지는’ 상황도 벌어진다.
나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노화는 되돌리기 어렵지만, 노쇠는 적극적 개입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노쇠 치를 위한 복합중재 프로그램의 효과를 나타낸 그래프.
노화는 모두에게 오지만, 노쇠는 그렇지 않다
장일영 성균관대 삼성융합의과학원 겸임교수(전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는 노화와 노쇠를 구분하는 것이 ‘건강한 나이 들기’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장일영 교수는 “흔히 노쇠를 ‘나이 들어 생기는 자연스러운 병’으로 오해하지만 본질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는 “노쇠는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여러 요인이 겹치며 몸의 회복 여력 자체가 무너진 상태”라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근육, 이를 조절하는 신경계, 회복을 책임지는 수면과 영양이라는 세 축이 동시에 흔들릴 때 몸은 스스로를 복구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장일영 성균관대 삼성융합의과학원 겸임교수(노년내과 전문의)는 노화와 노쇠를 구분하는 것이 ‘건강한 나이 들기’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최승식 기획위원
지난해 국제 학술지 ‘자마 네트워크 오픈’에 실린 강원도 평창군 노쇠 예방·관리 연구를 이끈 장 교수는 “노쇠는 고장 난 상태가 가속화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예방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상태에서 무작정 걷기나 채식, 혈당 관리 같은 ‘예방 수칙’에만 매달리면 오히려 몸 상태가 더 악화할 수 있다. 배터리 시스템이 고장 났는데,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법에만 집착하는 셈이다.
배터리 수리처럼, 노쇠는 되돌릴 수 있다
같은 70대라도 누구는 하루 한 시간씩 걷고, 누구는 집 안에서 이동하는 것조차 힘들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노쇠의 정도다. 의학적으로 노쇠는 여러 장기와 기관의 ‘생리적 예비력’이 전반적으로 감소한 상태를 의미한다. 대표적인 증상은 △체중 감소 △근력 저하 △피로감 △보행 속도 저하 △신체 활동량 감소다. 이 가운데 세 가지 이상이 동시에 나타날 경우 노쇠로 진단한다.
나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노화는 되돌리기 어렵지만, 노쇠는 적극적 개입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서울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손호준 교수, 성균관대 장일영 교수, 지성환 박사과정 연구팀이 서울아산병원과 평창군보건의료원과 함께 진행한 ‘평창군 노쇠 복합중재 프로그램’이 이를 입증한다.
연구진은 평창군 보건의료원 지역사회 기반 노쇠 예방사업에 참여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복합중재 프로그램의 효과를 연구했다. 참가자는 모두 383명이었다. 연구 대상자들은 모두 신체 기능 점수(SPPB)가 12점 만점에 7점대로, 사망률이 건강한 노인에 비해 30% 이상 높고 2∼3년 안에 지팡이가 필요할 가능성이 큰 고위험군 노인이었다.
이 가운데 187명은 복합중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복합중재 프로그램은 △운동 △영양 지원 △정신건강 관리 △약물 조정 △가정환경 개선을 결합한 프로그램으로 24주간 진행됐다. 그리고 나머지 196명은 비교군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후 60개월 동안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통해 건강 상태와 의료 이용을 추적했다.
결과는 분명했다. 중재군은 비중재군에 비해 자택 내 독립적 생존기간이 평균 6.5개월 늘어났다. 5년6개월 동안 누적 의료·장기요양비 지출은 1인당 약 7688달러(약 1100만원) 줄었다. 반면 프로그램 비용은 1인당 약 872달러(약 120만원)에 불과했다. 투자 대비 편익(ROI)은 8.8배에 달했다. 장 교수는 “가족들의 생산성 감소와 돌봄 부담까지 고려하면 사회적 편익은 수천만원에 이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핵심은 ‘초과 회복’…근육이 노년의 운명을 가른다
분석 결과, 이 연구의 핵심 기전은 근감소증 개선이었다. 노쇠로 인한 근육 손실은 회복 능력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근손실에 적극 개입하지 않으면 낙상, 골절, 감염, 인지 저하, 치매 위험이 연쇄적으로 높아진다. 반대로 근육만 제대로 키워도 노년기 질병과 사망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장 교수는 이를 ‘초과 회복을 통한 역노화'라고 표현한다. “궤도가 낮아진 인공위성이 다시 고도를 높이려면 천천히 가는 게 아니라 더 빠르게 달려 원심력을 얻어야 한다. 노쇠한 몸을 되돌리려면 절약이 아니라 평소보다 더 강력한 단백질 섭취와 근력 운동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개인의 상태를 정확히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진료실에서 가장 안타까운 환자들은 노력할수록 몸이 나빠지는 분들이다. 자기 몸 상태에 맞지 않는 채식이나 과도한 걷기 같은 ‘예방 수칙'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미 건강 궤도를 이탈했다면 접근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쇠의 씨앗은 10대에 뿌려져
많은 이가 노쇠를 70~80대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장 교수의 견해는 다르다. 젊은 시절부터의 건강 관리가 노쇠의 늪에 빠질 위험을 줄여준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보통 인간의 에너지 정점은 30대 중반에서 40살 사이에 도달한다. 건강 최고점을 찍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16살에서 20살 사이에 얼마나 활동적이었는지가 40살 이전까지의 건강 총점을 좌우한다”며 “이 시기에 쌓아둔 신체적 역량을 이후 20년 동안 꺼내 쓰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학업 때문에 온종일 의자에 앉아 있거나 수면과 영양 관리가 무너진 청소년들은 건강 최고점 자체가 낮게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남들보다 일찍 골다공증이나 대사질환 같은 ‘젊은 노쇠의 늪’에 빠질 위험이 크다.
결국 노쇠는 노년기에 갑자기 찾아오는 불운이 아니다. 젊은 시절부터 누적된 생활 습관이 만들어낸 결과인 셈이다. 장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회는 있다. 본인의 건강 총점이 남들보다 낮더라도 근력 강화 등 적극적 개입으로 노쇠를 치료한다면 건강한 노년기라는 궤도에 다시 올라탈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