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랭크모어

다큐 ‘청와대 건너 붉은 벽돌집’을 연출한 안소연 감독(오른쪽)이 할머니와 함께 청와대를 찾아, 오랜 이웃이지만 범접할 수 없던 곳을 방문한 감회를 나누고 있다. [사진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다큐 ‘청와대 건너 붉은 벽돌집’을 연출한 안소연 감독(오른쪽)이 할머니와 함께 청와대를 찾아, 오랜 이웃이지만 범접할 수 없던 곳을 방문한 감회를 나누고 있다. [사진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청와대 인근 이층 집에서 증조 할머니 때부터 50년 간 살아온 3대 가족이 있다. 삼엄한 경계 덕에 도둑 한 번 들지 않았지만, 언젠가부터 평화가 깨지기 시작했다. 확성기 구호와 함성 등 시위 소음이 집안으로 스며들면서다.

다큐멘터리 ‘청와대 건너 붉은 벽돌집’(24일 개봉)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부터 권력의 중추 옆에서 살아온 가족의 일상을 통해 시대 변화를 조망한 작품이다. 올해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새로운 시선상’을 받았다.

다큐를 연출한 안소연(30) 감독은 영화 연출을 전공한, 이 집안의 손녀다. 지난 24일 경복궁 근처 카페에서 만난 그는 다큐의 원래 취지는 ‘고발’이었다고 했다. 청와대 인근 주민들의 고통을 호소하기 위해 4년 전부터 시위 소음을 측정하고 민원을 제기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 고통이 끝날 줄 알았는데, 반탄 시위대가 바통 터치하듯 몰려왔어요. 문재인 정부 때 시위가 더욱 심해지면서, 우울감과 무기력함에 시달렸습니다.”

작품의 시야를 넓힌 건, 자신의 가족사와 정치사가 맞물려 있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이후 “가족의 특별한 경험을 사회적 화두로 확장하는 시도”를 했다.

다큐는 집 수리하러 지붕 위에도 못 올라가고, 자고 일어나니 대문 앞에 경비 초소가 생기는 등 살벌했던 군부독재 시절의 경험을 할머니의 증언을 통해 담아낸다.

할머니의 가계부에서 안 감독이 주목한 날은 1979년 10월 26일이다. 격동의 그날, 할머니는 시장에서 조기와 밤을 사왔다. 정치적 격변의 시간에도 가족의 일상은 계속되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상 계엄 당시, 고교생이던 아버지는 교통 통제와 시위로 도로가 막혀 산을 타고 귀가해야 했다.

다큐는 청와대 앞에서 이뤄진 문재인 전 대통령의 퇴임 연설 장면을 비중 있게 다룬다.

“가장 먼저 한 말이 청와대 인근 주민들에 대한 사과와 감사였어요. 문 정부 내내 시위 소음과 교통 통제로 고통받은 게 생각나 눈물이 나더군요. 잠시나마 우리를 해방시켜 준 건 코로나19였습니다.”

윤석열 후보의 당선 이후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가족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다큐에서 안 감독의 아버지는 “이젠 용산 주민들이 매운 맛을 보겠네”라고 말한다.

청와대 개방 첫날, 할머니와 함께 애증이 쌓인 ‘이웃집’을 처음 방문한 안 감독은 “범접하기 힘든 권력의 중심이 하루 아침에 관광지가 된 현실이 당황스러웠다”고 돌이켰다.

시위로 인한 고통이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안 감독은 보수단체 시위로 몸살을 앓는 문 전 대통령의 양산 사저로 향했다.

“양산 주민들의 고통이 코끝이 찡할 정도로 와 닿았어요. ‘조용하고 평화롭던 동네가…’라는 한 주민의 혼잣말은 늘 우리 가족이 했던 말이었죠.”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되찾은 집안의 평화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 계엄 선포 이후 다시 광장을 채운 찬탄·반탄 시위로 깨지고 만다. 안 감독은 “우리 집을 채웠던 소음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신음 소리였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로 돌아오면서, 주민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고 안 감독은 말했다. 그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해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주민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위 관련 규제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큐는 할머니가 자식과 손주들이 태어났을 때 정원에 심은 나무들을 손질하는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계절이 수없이 바뀌어도 나무들은 조용히 뿌리 내리며 자라잖아요. 우리 민주주의도 그렇게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중앙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2907 김범수·백종원의 공통점은…주식 100억 이상 말띠 주주 85명.jpg new 뉴뉴서 2025.12.29 0
42906 추경호, 대구시장 출마 선언…“특검 정치탄압 심판 아닌 대구시민 심판 받겠다”.jpg new 뉴뉴서 2025.12.29 0
42905 추경호, 내년 지방선거 대구시장 출마‥"정치탄압 이겨낼 것‥무거운 책임감".jpg new 뉴뉴서 2025.12.29 0
42904 추경호, 대구시장 출마 선언…“정치 탄압·보복 반드시 이길 것”.jpg new 뉴뉴서 2025.12.29 0
42903 與 최민희, 쿠팡 보상안에 “이용권 풀기대책… 위기도 장사에 이용해”.jpg new 뉴뉴서 2025.12.29 0
42902 하이브 '효녀'였는데...결국 쪼개진 뉴진스.jpg new 뉴뉴서 2025.12.29 0
42901 쿠팡 ‘1조6850억 보상’ 발표했지만... 사실상 실질 혜택은 인당 1만원.jpg new 뉴뉴서 2025.12.29 0
42900 "요즘 다이소도 비싼 거 같은데?"…이런 사람 많아지더니 '더 싸게' 파는 곳 나왔다.jpg new 뉴뉴서 2025.12.29 0
42899 주진우 "이혜훈, 보수 전사인 척하더니… '글삭튀' 후 자리 구걸".jpg new 뉴뉴서 2025.12.29 0
42898 '청와대는 처음이시죠?' 실장들 마주친 대통령 깜짝 [현장영상].txt new 뉴뉴서 2025.12.29 0
42897 김건희 특검 “대통령 권력 업고 매관매직…국가 시스템 무너뜨려”.jpg new 뉴뉴서 2025.12.29 0
42896 배수구에 팔 낀 9세 초등생…수심 55㎝ 풀빌라서 숨져.jpg new 뉴뉴서 2025.12.29 0
42895 쿠팡 5만원 탈 쓴 ‘5천원 쿠폰’ 보상…“이러면서 재가입하라고?”.jpg new 뉴뉴서 2025.12.29 0
42894 어도어 “다니엘과 전속계약 해지·손해배상 청구한다”···뉴진스 ‘5인 완전체 복귀’ 무산되나.jpg new 뉴뉴서 2025.12.29 0
42893 “월세 20만원 때문에”···동거녀에 흉기 휘두른 50대 ‘징역 5년6개월’.jpg new 뉴뉴서 2025.12.29 0
42892 "올해 1234% 올랐다"…'원익홀딩스' 순매수 1위 [주식 초고수는 지금].jpg new 뉴뉴서 2025.12.29 0
42891 쿠팡 “1인당 5만 원 보상”…뜯어보면 ‘생색내기’ 논란.jpg new 뉴뉴서 2025.12.29 0
42890 [단독] 죽은 아들이 근로계약서를 다시 썼다?…쿠팡, 산재 사망자 서류 조작 의혹.jpg new 뉴뉴서 2025.12.29 0
42889 [단독] “‘보상’ 단어 쓰지마라”…쿠팡 기막힌 내부지침.jpg new 뉴뉴서 2025.12.29 0
42888 “쿠팡 ‘5만원 이용권’, 보상 아닌 국민기만…강제소비 불과”.jpg new 뉴뉴서 2025.12.29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