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 외교부 장관과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지난 8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자주파 대 동맹파’ 갈등 구도에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직접 ‘자주파 화력지원’에 나선 가운데 한·미 의원 연맹 소속 여당 의원 일부가 조현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당이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2일 여의도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 의원 연맹 송년 만찬 직후 복수의 민주당 의원들이 기조연설을 맡았던 조 장관과 따로 대화를 나눴다. 이들은 만찬장 한쪽에서 대화를 시작했으며, 조 장관이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복도까지 동행하며 낮은 목소리로 약 10여분 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에 따르면 대화의 핵심은 이재명 정부 내에서 주도적 남북관계를 중시하는 자주파와 한·미 관계를 중시하는 동맹파 간 이견이 표면화하는 가운데 여당의 역할론이었다. 민주당 A의원이 “우리가 (자주파를 지원하는) 목소리를 좀 낮춰야 하지 않겠나”며 “그래야 앞으로 미국과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자 다른 의원도 비슷한 취지로 말하며 이를 거들었다. 이에 조 장관은 “맞는 말이다. 그래 주면 좋겠다”고 수긍했다고 한다.
특히 이날 만찬에는 진보 진영의 원로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도 참석했다. 다만 문 교수는 행사 중간에 자리를 떠났는데, 이후 여당 의원 일부가 동맹파로 꼽히는 조 장관에게 이런 화두를 던진 것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8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8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 의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이는 최근 정청래 지도부가 통일부를 중심으로 한 자주파에 공개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것과는 결이 다른 움직임이다. 통일부가 지난 16일 한·미 외교 당국 간 진행한 대북 정책 협의에 불참하며 ‘외교부 패싱’을 선언하자, 정 대표는 다음 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동영 통일부의 정책적 선택 결정이 옳은 방향”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통일부가 (대북 정책 관련) 주무 부처를 맡고 외교부가 대미외교 지원을 담당해야 한다”(박지원 최고위원), “외교부가 대북정책의 전면에 나서 이를 주도하려는 행태는 명백한 월권”(친명계 원외조직 더민주혁신회의) 등 ‘동맹파 견제성’ 메시지가 당에서 쏟아졌다. 정 대표가 대북 정책을 논의하는 당 거점기구로 신설하려는 ‘한반도평화전략위원회’(가칭)에도 대표적 자주파 원로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문정인 명예교수 등의 합류가 거론된다.
이와 관련, 익명을 원한 여당 인사는 “‘통일부 장관-여당 대표-원로 그룹’이 삼각편대를 구축해 동맹파를 누르는 흐름은 맞지 않다는 우려가 당 내에 적지 않다. 대미 외교를 위해 어느 정도 톤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한·미 의원 연맹 송년 만찬. 한·미 의원 연맹
의원연맹 소속 여당 의원들이 조 장관에게 당내 메시지 ‘수위 조절’ 필요성을 직접 언급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는 한국 외교의 중심축을 동맹에 둬야 한다는 취지에서 창설된 의원연맹의 기본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의원연맹은 지난 3월 창립 총회를 통해 공식 출범한 여야를 아우르는 초당적 기구다. 의원연맹은 내년 4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방중에 앞서 3월 방미도 추진하고 있다. 2월엔 핵추진 잠수함(핵잠 혹은 원잠) 도입 및 핵연료 농축·재처리, 관세 협상 등 한·미 정상 간 합의의 후속조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 용역을 발주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