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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 평산책방 대담
문재인 전 대통령과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지난 19일 오후 경남 양산 평산책방에서 대담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문재인 전 대통령과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지난 19일 오후 경남 양산 평산책방에서 대담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email protected]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개인 일정으로 방한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를 지난 19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서 만나 한-일 관계와 동북아시아 평화 정착 방안 등에 관해 대담을 했다. 두 사람은 미-중 패권 경쟁, 북한의 적대적 핵보유 주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3중고에 짓눌린 동북아의 평화·안정을 위해 “한·일의 주도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하토야마 전 총리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한국민이 ‘이제 그만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무한책임’을 외치는 양심적 언행을 “존경한다”며 환대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평산책방에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며 퇴임 뒤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문 전 대통령이 “존경스럽다”고 화답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4대에 걸쳐 2명의 총리를 배출해 ‘일본의 케네디가’로 불리는 정치명문가 출신으로, 2009년 민주당을 이끌고 전후 첫 ‘비자민당 단독정부’를 만들었다. 두 사람의 대담은 평산책방에서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의 사회로 1시간15분 동안 진행됐다.

―두분은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문재인 독서를 권하는 일을 한다. 평산책방에서 하루 한두시간 자원봉사를 하고, 평산책방 유튜브로 좋은 책을 소개하기도 한다. 평산책방은 공익재단이라 수익금은 모두 공익사업에 쓴다. 현실 정치와는 확실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

하토야마 공공 형태의 책방 운영은 훌륭하고 존경스럽다. 지역민이 굉장히 사랑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아직도 뭔가 정치적 힘이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다. 나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상하는 연구소를 만들어 13년째 이사장을 맡고 있다. 동아시아를 전쟁이 없는 지역으로 만들고 싶다. 그러자면 역사를 직시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과거 잘못된 전쟁으로 한국과 중국에 비극과 피해를 안겨준 데 사죄하는 게 제 과제라고 여긴다. 한·일이 더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되도록, 소통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문재인 일본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인기가 없고 오히려 반대에 부닥치는데도 용기를 굽히지 않는 것에 존경을 표하고 감사드린다. (2015년 8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찾아 ‘무릎사과’를 하신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과거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는 일본의 자존심을 손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도덕성·국격을 높여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리더십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 생각한다. 재임 때 아베 신조 총리의 과거사에 대한 경직된 태도가 아주 답답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어떨 거 같나?

하토야마 아베 총리는 ‘한번 사과했으면 끝이다’라는 생각이다. 가해국이 ‘이렇게 했으니 끝났다’고 하는 건 옳지 않다. 피해자들이 ‘이제 됐다’고 납득할 때까지 계속 사과해야 한다. 나는 무한책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베처럼 다카이치 총리도 ‘끝난 문제’라고 주장할 것이다.

문재인 걱정이 된다. 우리 이재명 대통령은 아주 현실적 노선으로 일본과 관계 발전에 힘쓰겠다는 마음가짐일 터라, 다카이치 총리가 과거사 문제로 한국민을 자극·도발하는 행태만 보이지 않아도 양국 관계 발전과 정상 간 셔틀외교가 가능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최근 독도 발언처럼 한국민을 자극·도발하는 언행을 계속하면 한-일 관계가 다시 어려워질 소지가 있다.

―미국에서 ‘마가’라는 극우가 정치적 세를 불리고, 한·일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하토야마 최근 30여년간 일본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는 사이에 한국과 중국은 눈부신 발전을 했다. 그 부러움이 증오심으로 변해 배타주의로 연결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자기 나라만 사랑하는 건 애국이 아니다. 이웃의 다른 나라도 사랑해야 애국주의다. 일본이 배타주의를 극복해야 세계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문재인 옳은 말씀이다. 한국은 12·3 계엄 내란 사태로 민주주의가 위기에 몰렸을 때 신속하게 극복해 전세계가 한국 민주주의의 놀라운 회복력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지금도 한국의 보수 야당은 계엄 내란이라는 극단적 선택에 사과하지 않는다. 온건 합리 보수세력이 힘을 잃고 강경 극우가 보수의 주류가 된 탓이라고 본다. 양심적인 목소리가 배척되는 건 각국 내부에 애국적 목소리가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이다. 그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미국, 유럽연합도 마찬가지다. 전세계 민주주의 세력이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연대와 협력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정치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이 발표됐다. 신고립주의, 거래주의 등이 눈에 띄는데 어찌 대응해야 하나?

하토야마 트럼프 대통령이 방일했을 때 다카이치 총리의 행동을 보면 ‘미국이 어떤 정책을 내놓든 일본은 추종하겠다’는 결정을 한 거처럼 보였다. 트럼프의 경제제일주의에 (밀려) 일본은 80조엔, 한국은 50조엔을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나는 일·한이 협력해서 ‘이거 이상하지 않나’라고 강하게 주장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트럼프 정부가 보이는 미국 우선 일방주의적 행태와 다자기구에 대한 적대감 표출 등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와 번영을 위해 인류가 함께 구축한 다자주의와 자유무역 기조 등 전후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미국과의 동맹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중국과 협력도 유지해야 한다. 한·일은 미-중(의 패권 경쟁)이 이끄는 세계 질서에 따라만 갈 게 아니라 좀 더 자립적인 외교의 길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토야마 미·중 가운데 한쪽을 선택하라는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둘 다 중요하다. 그런데 다카이치 총리는 미국을 선택할 거 같다. 중국과 갈등하고 한국과도 과거사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그래서는 발전적 방향이 나올 수 없다. 공동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

―문 전 대통령은 2019년 유엔 총회 연설에서 ‘비핵화 프로세스는 적대관계 종식과 상호 안전보장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그 생각은 유효한가?

문재인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다만 평화 프로세스의 과정과 내용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비핵화 전제 평화 프로세스’였는데, 지금 북은 비핵화를 전제한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우선 북한의 핵동결 정도를 대화의 출발로 생각할 수 있겠다. 그리고 빠른 시일 안에 종전 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맺어 한반도의 오랜 전쟁을 공식 종료시켜야 한다. 평화 과정에 필수적이다. 이어 북-미·북-일 사이에 관계 정상화를 논의해 수교와 함께 비핵화도 최종적으로 이뤄지는 방안이 현실적이지 않겠나. 북의 비핵화를 요구하려면 확실한 안전보장책, 경제발전 비전을 제시해 북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 한다. 과거에는 그 역할을 미국이 했다. 그래서 북이 미국만 상대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이제 한·일이 함께 주도적으로 이니셔티브를 형성해 미국은 물론 유럽연합,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도 함께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안정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모색해야 할 단계에 왔다고 생각한다.

하토야마 문 대통령의 구상을 행동으로 옮기면 북의 완화된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총리를 존경하니까 아베 노선을 추종해 납치 문제가 먼저라고 계속 주장할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뒤 국내에만 계셨는데, 해외에 나갈 계획 없나?

문재인 해외에 나가는 것을 자제하거나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 내년에 ‘변방에서 중심으로’라는 제 회고록이 미국에서 영문판으로 번역돼 나온다고 한다. 그 시기에 아마 미국에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게 되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도와줄 만한 분들을 함께 만날 것이다.

하토야마 일본어 번역판도 곧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출간되면 아내와 함께 반드시 읽겠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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