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통일교가 주최한 ‘월드 서밋 2019’에서 축사하는 한학자 총재. 유튜브 갈무리
통일교가 교단 위상을 과시하는 국제행사에 이른바 ‘브이아이피(VIP)’를 섭외하기 위해 정치권에 공을 들여온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통일교가 한학자 총재에게 보고한 ‘티엠보고(True Mother·참어머니)’ 문건에는 주요 인사 섭외를 위해 정치적 연줄이 총동원됐던 대목이 여럿 등장한다.
23일 한겨레가 확보한 티엠보고를 보면, 통일교의 국제행사인 ‘월드 서밋 2019’을 한달 앞둔 2019년 1월 통일교 각국 총괄이 총동원돼 주요인사 섭외 상황을 한 총재에게 보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통일교는 문재인 대통령을 행사에 초대하기 위해 청와대 주요인사들과도 접촉했다. 2019년 1월15일 티엠 보고에는 “오늘 (국정)상황실장, 제1부속실장, 정무비서관과 함께 진지한 미팅을 했다”며 이들과 ‘문 대통령의 참석 여부’를 논의했다고 적혀있다. 이어 1월18일에는 “푸른 기와집(청와대)에서 늦어도 다음주까지 확실히 답을 주겠다고 연락이 왔다”며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고 보고했다.
통일교의 ‘관리 대상’이었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정치인들 역시 ‘월드서밋’ 섭외에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1월24일 보고에는 여야의 외통위원을 통해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하도록 하겠다”며 “양쪽에서 전화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이어 “28일 강 장관과 일정이 잡히면 임(종성) 의원이 같이 들어갈 계획”이라며 금품 수수 의혹을 받는 임종성 민주당 의원 역시 섭외를 돕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보고에 등장하는 외통위 소속 위원들은 대부분 경찰이 최근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통일교의 ‘2019년 국회의원 후원명단’에 포함돼있다. 명단에 포함된 10명의 의원 중 절반가량이 외통위를 거쳤는데, 이런 인맥이 행사 섭외에 활용된 것이다. ‘월드 서밋’에는 문 대통령의 섭외가 불발됐지만, 조명균 당시 통일부 장관과 조현 외교부 제1차관이 참석해 축사했다. 이 행사에는 이외에도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미국대사 등 국제적 인사들도 참석했다.
다만 통일교의 국제행사 개최 자체를 문제 삼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국회 외통위 소속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국가간 외교나 의원외교는 국가 대 국가 채널로 이뤄지기도 하지만, 민간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서도 활발하게 벌어진다”며 “통일교가 일본·미국 등에서 강력한 인맥을 갖고 있다면 이를 활용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을 수사 주인 경찰청 특별전담수사팀은 이날 통일교 세계본부 총무처장을 지낸 조아무개씨를 불러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경찰은 조씨를 상대로 정치후원금 관련 자금 집행이 있었는지 집중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24일 한 총재와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을 2차 접견 조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