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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장기를 이식받은 ‘다섯 아들’을 위해 날마다 새벽기도
뇌사 장기기증인 故한영광씨의 어머니 홍성희씨 이야기
뇌사 장기기증으로 다섯 명의 생명을 살린 故 한영광씨가 2018년 9월 경기도 김포시 패밀리파크에서 어머니 홍성희 씨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홍씨 제공
뇌사 장기기증으로 다섯 명의 생명을 살린 故 한영광씨가 2018년 9월 경기도 김포시 패밀리파크에서 어머니 홍성희 씨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홍씨 제공

하루에도 여덟 명이 장기 기증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다. 깊은 상실의 자리에서 한 가족은 사랑의 나눔을 선택했다. 뇌사 판정을 받은 서른 살 청년의 장기기증으로 다섯 명의 삶이 이어졌다. 아들을 떠나보낸 뒤에도 매일 새벽마다 그 ‘다섯 생명’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 홍성희(64)씨는 18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들의 이름이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의 삶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뇌사 장기기증으로 다섯 명의 생명을 살린 故한영광씨 어머니 홍씨는 지난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2025 GKL 이웃사랑실천상‧사회공헌상’ 시상식에서 이웃사랑실천상을 수상했다.

홍씨는 “처음엔 인터뷰 요청을 받을 용기가 없었다”며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이 될 수 있다면 응답하는 것이 맞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신앙의 고백을 나눌 수 있는 국민일보라서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을 통해 아들의 장기기증 사실이 알려진 이후 여러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지만, 당시에는 슬픔이 깊어 개인적 인터뷰는 고사했다고 전했다.

아들은 하나님이 주신 자녀
한영광씨(맨 왼쪽)와 가족들이 2019년 인천 연수구의 한 식당에서 아버지 한성희씨의 환갑 잔치를 기념해 찍은 단체 사진. 홍씨 제공
한영광씨(맨 왼쪽)와 가족들이 2019년 인천 연수구의 한 식당에서 아버지 한성희씨의 환갑 잔치를 기념해 찍은 단체 사진. 홍씨 제공


故한영광씨는 2024년 5월 27일, 갑작스러운 낙상 사고 이후 뇌사 판정을 받고 심장, 폐, 간, 신장 등을 기증했다. 서른 살의 건장한 청년이었던 그는 대학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한 뒤 관련 회사에 입사해 창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홍씨는 “위험하지도 않은 낮은 계단에서 사고가 났다. 처음엔 의료진도 오후쯤 깨어날 거라고 했는데, 사흘 만에 뇌사 판정을 받았다”며 “그때부터 갑자기 죽음을 준비해야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장기기증을 먼저 제안한 이는 남편 한성희(65)씨였다. 한씨는 30여년 전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했고, 출근 전마다 새벽기도에 나가는 기독교 신앙인이었다. 홍씨도 “처음엔 너무 힘들었지만 영광이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 주신 자녀라는 믿음으로 키워왔다”며 “이름 그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아들도 원했을 것으로 생각해 기증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의 이름에 얽힌 사연도 전했다. “아이를 갖기 전 1년 동안 하루 세 번씩 기도하며 기다렸다. 그 기도하는 모습을 본 교역자님이 ‘예명은 사무엘, 이름은 영광이로 하자’고 권하셨다. 그래서 한영광이 됐다.” 홍씨는 “그 이름처럼 아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고백했다.

신앙으로 버텨온 나날들
2024년 인천 대부도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홍성희씨가 아들을 추억하며 ‘영광아 보고 싶다’라고 남긴 손글씨. 홍씨 제공
2024년 인천 대부도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홍성희씨가 아들을 추억하며 ‘영광아 보고 싶다’라고 남긴 손글씨. 홍씨 제공

홍씨는 아들을 떠나보낸 깊은 슬픔 속에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기도 중에 ‘영광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며 “이 경험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40여 차례의 심리 상담을 받으며 그는 ‘셀프톡(Self-talk)’을 경험했다. “마치 아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어요. ‘엄마 너무 슬퍼하지 마, 세상은 찰나야’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고, 제가 ‘나도 너를 따라가고 싶다’고 하면 ‘엄마는 아직 사명이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죠.”

집 한편에는 아직도 아들이 마지막 날 퇴근 이후 벗어놓고 간 양복이 걸려 있다. “너무 힘든 날이면 그 양복을 안고 울어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슬픈 사람, 아픈 사람을 위로해야 할 사명이 있다’고 아들이 말하는 것 마음이 들어 다시 기도 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슬픔을 건너 이웃, 가족과 함께
홍성희씨 부부가 도너패밀리와 함께 제주도 동화마을로 여행 가서 찍은 단체 사진. 홍씨 제공
홍성희씨 부부가 도너패밀리와 함께 제주도 동화마을로 여행 가서 찍은 단체 사진. 홍씨 제공

홍씨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유재수) 도너패밀리(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모임)에 참여한 건 그래서였다. 그는 “기증인 유가족들은 보통 몇 년이 지나야 모임에 나오는데, 저는 두 달 만에 나갔다”며 “같은 입장에 있는 분들이라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자리에 앉아 함께 울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나만 이런 아픔을 겪는 게 아니구나’라는 위로가 됐다”고 덧붙였다.

홍씨는 “슬픔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됐다”며 “제가 받은 위로를 다시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이후 그는 생명나눔 캠페인과 유가족 여행, 장기기증의 날 행사 등에 남편과 함께 꾸준히 참여해왔고, 올해 7월에는 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를 위한 장학금 기부에도 동참하며 도너패밀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맨 왼쪽부터) 故한영광씨의 아버지 한성희씨, 누나 한아름씨, 어머니 홍성희씨가 지난해 12월 경기도 시흥시의 한 카페에서 촬영한 사진. 홍씨 제공
(맨 왼쪽부터) 故한영광씨의 아버지 한성희씨, 누나 한아름씨, 어머니 홍성희씨가 지난해 12월 경기도 시흥시의 한 카페에서 촬영한 사진. 홍씨 제공

남겨진 가족들은 떠난 이를 잊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향해 다시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남편 한씨는 “천국에 아들을 유학 보냈으니 그곳에서 다시 만날 날을 소망하며 살아가자”며 아내를 위로한다.

두 살 터울의 누나 한아름(34)씨는 최근 홍씨에게 보낸 생일 축하 편지(사진)에서 “주님 부르실 그 날, 천국에 입성할 때 맨발로 뛰어나와 반겨줄 아들을 생각하며 천국 소망으로 인내하며 이겨내자”고 적었다.

아름씨는 남편과 함께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동생이 잠든 추모공원을 찾는다. 홍씨는 “두 주에 한 번 가자고 해도, 제가 못 가는 날엔 혼자서라도 사위와 함께 다녀온다”며 “동생을 그만큼 사랑하는 누나”라고 덧붙였다.


홍씨 가족은 지난해 장례비로 받은 아들의 마지막 급여에 사비를 더해 1000만 원을 출석 교회인 부천성산감리교회(한성권 목사)에 헌금했다. 홍씨는 “도저히 그 돈을 쓸 수가 없었다. 이웃 복지 사역을 활발히 하는 교회에 헌금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식을 잃은 슬픔을 가족이 서로 붙들며 견디고 있다”며 “아들을 떠나보낸 아픔 속에서도 딸이 무너지지 않고 동생의 삶을 기억해주는 모습이 제게는 또 다른 위로”라고 말했다.

다섯 아들을 위한 새벽기도
홍성희씨가 지난해 12월 경기도 시흥시의 한 카페에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뇌사 시 장기기증인 유가족에게 수여한 ‘생명의 별’ 크리스털 패를 안고 있다. 크리스털 패에는 아들 故한영광 씨의 얼굴 사진이 새겨져 있다
홍성희씨가 지난해 12월 경기도 시흥시의 한 카페에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뇌사 시 장기기증인 유가족에게 수여한 ‘생명의 별’ 크리스털 패를 안고 있다. 크리스털 패에는 아들 故한영광 씨의 얼굴 사진이 새겨져 있다. 홍씨 제공

홍씨는 지금도 매일 새벽기도에 나가 아들의 장기를 이식받은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 기도는 지난해 7월, 아들의 심장을 이식받은 이가 보낸 한 통의 편지로 응답받았다. 새벽마다 울며 기도한 지 두 달 만에 받은 편지였다.

편지에는 “주위에 사랑하고 기도해주신 분들 생각하며 잘 회복하고 있다. 두 번째 인생은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해주신 그분의 몫까지 지금보다 더 사랑하고 아끼며 많이 웃으며 행복하게 살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었다.

홍씨는 “기증을 받아도 100명 중 한 명만 편지를 쓴다고 들었다. 유가족에게 이 편지는 정말 큰 위로”라며 “우리 아들 심장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뛰고 있고, 다섯 명의 ‘아들’이 생긴 것 같아 날마다 그들이 주님의 영광으로 살도록 기도한다”고 말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날은 교회 창립 53주년 기념 생명나눔 예배를 앞둔 때였다. 홍씨는 “아들의 이름이 다섯 사람의 삶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생명이 얼마나 귀한지 다시 묻게 한다”며 “한국 사회와 교회가 장기기증을 두려움이 아닌 사랑의 실천으로 바라보게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아들의 선한 마음이 다른 이들의 삶 속에서도 계속되기를, 그 삶이 ‘영광’이라는 이름처럼 밝게 빛나기를 오늘도 기도합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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