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 후 일주일 만인 지난 4월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떠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주가 자체가 시세조종 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소액의 오르내림이 있었고, 오히려 조금 비쌀 때 사서 쌀 때 매각한 게 많아서 나중에 수천만원의 손해를 봤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나와 그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발언은 진실 공방으로 이어졌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김 여사가 연루된 의혹을 바라보는 윤 전 대통령의 시선을 반영한 것으로도 해석됐다. 실제 ‘윤석열 검찰총장 체제’에서, 그리고 윤석열 정부에서 검찰은 ‘김건희 봐주기 수사’ 의혹에 휩싸였다.
2021년 12월 14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4명의 검찰총장, 김건희는 ‘무혐의’로
2020년 4월.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고발장이 검찰에 접수됐다. 수사의 최종 명령권자인 검찰총장은 윤 전 대통령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수사는 큰 진척이 없었다.
당시엔 윤 전 대통령이 도이치모터스 사건을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대선 후보로 나오면서 이 사건에 대한 답을 요구받았다. 오히려 김 여사가 손해를 봤다는 식이었다. 그동안 검찰의 지지부진한 수사가 이 발언으로 ‘설명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2021년 6월1일. 문재인 정부에서 김오수 검찰총장이 임기를 시작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에서 2022년 5월6일까지 직을 유지했다. 이 시기 재판에 넘겨진 도이치모터스 주범·공범 9명에 대한 1심 선고가 나왔다. 1심 판결문에는 김 여사가 37번, 그의 모친 최은순씨의 이름이 27번 등장했다. 도이치모터스 초기 수사팀은 ‘김 여사에 대한 대면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알려졌으나, 결과적으로 검찰청사에서 김 여사의 모습을 본 사람은 없었다.
2022년 9월16일. 이원석 검찰총장이 임기를 시작했다. 김 여사 수사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는 평가를 받던 중 2023년 2월 도이치모터스 사건 2심 선고가 나왔다. 이번에도 역시였다. 2심 판결문에는 김 여사가 87번, 최씨가 33번 등장했다. 1심 선고 때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여기에 더해 2023년 11월 최재영 목사가 김 여사에게 300만원대 디올백을 전달한 영상까지 공개됐다. 비판 여론이 뜨거워졌다. 김 여사 대면조사는 물론 특검 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총장은 명품백 수수 의혹 관련 수사전담팀 구성을 지시했다.
전담팀까지 꾸린 만큼 이제 수사가 진행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사실상 총장의 위엔 두 사람이 있었다. 검찰 선배인 박성재 법무부 장관,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이 뒤에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당시 이 총장이 전담팀 구성을 지시한 지 11일 만인 지난해 5월13일, 갑자기 법무부는 검사장급 인사를 단행했다. 김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와 명품백 의혹 수사를 이끌던 송경호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그 휘하의 1~4 차장검사 전원이 교체됐다. 인사발령 다음날 이 총장은 출근길에 비장한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충분한 사전 조율 거친 인사가 맞나요?” 기자들이 마이크를 대며 물었다.
이 총장은 아무 말이 없었다. 침묵은 정확히 7초가량 계속됐다.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이란 단어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그는 “더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라고만 말한 채 청사로 들어갔다. ‘항의’였다.
중앙지검장이 교체된 이후 김 여사는 2024년 7월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검찰청사에서 김 여사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공개로 제3의 장소에서 조사가 진행됐다. ‘봐주기 수사’ 특혜 논란이 끓어올랐다. 당시 이창수 중앙지검장은 이 총장에게 김 여사 조사 방식이나 장소, 시기 등을 보고하지 않았다. 사실상 ‘총장 패싱’이었다.
2024년 9월16일. 윤석열 정부 두 번째 총장인 심우정 검찰총장이 임기를 시작했다. 그가 윤석열 정부 마지막 검찰총장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은 없었다. 2024년 10월17일 검찰은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와 명품백 의혹 사건을 모두 ‘무혐의’로 처분했다. 당시 검찰은 무혐의 근거를 설명하는데 이례적으로 4시간을 할애했다.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목소리만 키웠다.
‘수사 개입’ 의혹 김건희, 박성재에 다수 메신저
“여론 재판을 열자는 것이냐”
검찰의 ‘김 여사 무혐의’ 처분 발표가 있기 일주일 전인 2024년 10월10일 김 여사가 당시 박성재 장관에게 이런 주장을 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의 페이스북 글을 보냈다. 김 여사는 지난해 5월부터 자신의 수사 상황을 박 전 장관에게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 수사는 어떻게 되고 있죠?’
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수사는 2년간 진척이 없는 거죠?’
윤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김건희 특검법’이 통과되고서야 이런 내용들이 뒤늦게 수면 위로 올랐다. 검찰의 석연찮은 수사 진행상황과 무혐의 처분에서 김 여사의 ‘수사 무마 의혹’까지 번졌다. 검찰이 무혐의로 처분했다가 서울고검에서 재수사로 결정하고, 이후 특검에 넘어간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은 ‘기소’로 결과가 뒤집혔다. 검찰의 무혐의 처분이 나온 지 열 달 만이다.
특검은 지난 18일 김 여사 관련 수사를 담당하거나 지휘한 박 전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 심우정 전 총장, 이창수 전 지검장, 조상원 전 중앙지검 4차장, 박승환 전 중앙지검 1차장, 김승호 전 중앙지검 형사1부장 등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수수색에 나섰다. 최재훈 전 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현 대전지검 부장검사)에 대한 압수수색은 지난 2일 이뤄졌다. 이들 중 일부는 특검 조사를 받게 될 전망이다. 특검은 오는 22일 이 전 지검장을 소환 조사하기로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의 검찰수사 부실문제가 어디까지 규명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