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피부과에 갔는데 의사가 피부과가 아니라 이비인후과 전문의더라고요." "제가 간 피부과는 응급의학과 의사였어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동네 피부과를 찾았다가 담당 의사가 피부과 전문의가 아닌 다른 과목 전문의거나 아예 전문의가 아닌 사실을 알게 됐다는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개업의들이 이른바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 그중에서도 수술 등의 위험이 적은 피부과에 쏠린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그런 의사들이 많을까. 1차 의료기관인 의원급 의료기관의 통계를 통해 살펴봤다.

피부과와 성형외과를 진료과목으로 내세운 한 의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받은 '표시과목별 의원급 의료기관 현황' 자료를 보면 이른바 '동네병원'으로 불리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수는 총 3만7천498개(올해 10월 기준)다.

이 가운데 일반의가 개원한 의원이 1만225개로 가장 많다. 여기에는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면허를 취득한 뒤 바로 병원을 여는 경우와 의사면허를 딴 뒤 특정 분야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전공의 과정을 거쳐 전문의 시험을 통과했지만 (전문과목을 표시하지 않고) 일반의로 개업한 경우가 모두 포함된다.

나머지 동네병원 중 전문의 자격증이 있는 의사가 개업한 곳은 내과가 5천684개로 가장 많다. 이어 이비인후과(2천784개), 정형외과(2천762개), 소아청소년과(2천172개), 안과(1천766개), 정신건강의학과(1천737개), 피부과(1천515개), 마취통증의학과(1천425개), 산부인과(1천337개), 성형외과(1천225개), 비뇨의학과(1천127개), 외과(1천75개) 등 순이다.

이 수치대로라면 전문의가 개원한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내과나 정형외과, 소아청소년과가 피부과보다 수백∼수천개 더 많아 보이지만, 여기에는 일반의가 개원한 의원들의 진료 과목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일반의의 경우 진료과목을 신고하면 내과, 외과, 피부과 등 거의 모든 과목을 진료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 일반의가 어떤 과목을 주요 진료 과목으로 등록했는지에 대한 통계는 별도로 없다.

피부과의원
[연합뉴스TV 제공]

다만 최근 일반의가 새로 개원한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80% 이상이 피부과를 선택하는 등 피부과 쏠림 현상을 일부 확인할 수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 9월 심평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7월 일반의가 신규 개설한 의원급 기관은 176개로, 1개당 평균 2.4개 과목을 진료하겠다고 신고했다.

이 가운데 피부과 신고가 146건(83%)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성형외과 49건, 가정의학과 42건, 내과 33건 등의 순이었다.

2022~2024년 조사에서도 피부과를 신고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런 통계들로 볼 때 일반의 가운데 피부과를 주요 진료과목으로 선택한 의원급 의료기관까지 고려하면 실제 피부과를 진료하는 의원급 의료기관 숫자는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의 신규개설 의원급 의료기관 진료과목 신고현황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피부과 진료를 하는 의사가 늘어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의료계에서는 우선 수입을 꼽는다.

미용시술은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정의학과나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내과 등에서 진료하는 질병은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돼 환자 1명당 병원이 받는 진료비가 적어서다.

보건복지부가 2022년 발표한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피부과 의원에서 일하는 의사의 연평균 임금은 3억263만원으로, 소아청소년과 의사(1억875만원)의 3배다.

박근태 대한개업의협의회 회장은 "감기 환자나 혈압·당뇨 환자는 기본적으로 진료비만 받고 있다"며 "수가가 너무 낮게 책정됐다"고 말했다.

김선민 의원실이 심평원에서 받은 지난해 표시과목별 의원급 의료기관의 건강보험 청구실적(심사 완료된 명세서 대상)을 보면 피부과가 심평원에 청구해 받은 보험액은 의원급 의료기관 1개당 4억2천400만원으로, 정형외과(11억9천600만원), 산부인과(10억3천800만원), 내과(8억7천300만원), 외과(8억900만원)보다 현저히 적다.

청구 실적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항목 해당 진료가 많다는 의미다.

이는 피부과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비급여 진료가 많을수록 수익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피부과 시술
[연합뉴스TV 제공]

이 때문에 피부 미용 진료로 전환을 고려하는 의사들도 많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올해 초 서울 강남구 한 호텔에서 열린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학술대회에선 보톡스·필러 시술 강의가 큰 관심을 끈 것으로 알려졌다.

피부과의 경우 의료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수술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성형외과 역시 수입이 좋지만 잘못하면 의료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데 피부과는 이런 위험도 적다는 것이다.

내과 전문의로 개원했지만 피부과 진료도 하는 한 의사는 "'피안성' 중에서도 피부과를 가장 선호하는 분위기"라며 "성형은 수술 쪽이라 또 선호가 조금 떨어진다"고 전했다.

박 회장은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내과 등 필수 의료 쪽 의사들이 피부미용 쪽으로 많이 빠지는 것이 현실"이라며 "의료 수가는 낮아 수익은 안 되고, 의료사고라도 발생하면 형사처벌에 징벌적 배상금까지 있으니 꼭 해야 하는 과목인데도 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피부과의사회 홈페이지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이처럼 비전문의의 피부과 진료가 늘어나면서 비전문의에게 진료받아도 괜찮은지 궁금해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피부과 전문의 단체인 대한피부과의사회는 홈페이지에 "국내 의사 중 약 2%만 피부과 전문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전문의가 의대 6년을 마친 뒤 인턴 1년 과정과 레지던트 4년 과정 등 총 11년을 피부만을 공부한 '피부 전문가'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피부과의사회는 또 잘못된 치료는 피부를 더 나쁘게 만들 수 있다며 전문가 지도가 필요하다고 홍보하고 있다.

반면 세부 영역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피부 질환이라면 당연히 전문의가 낫겠지만 미용 부문이라면 다를 수 있다"며 "수련의 과정에서 미용 쪽을 배우는 것은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촬영 이충원]

꼭 피부과가 아니더라도 다른 진료과목 전문의가 자신의 전공을 포기하는 사례도 통계로 확인된다.

김선민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일반의 의원급 의료기관 1만225개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모두 1만6천18명이다.

이 중 1만1천131명(69.5%)은 특정 분야의 전문의다.

10명 중 7명은 전문의인데도 일반의원에서 일한다는 의미다.

전문성을 사실상 포기하고 일반의원에서 근무하는 전문의를 과목별로 보면 가정의학과가 3천444명으로 가장 많다. 외과 1천273명, 산부인과 1천247명 등도 1천명을 웃돈다.

이어 내과 995명, 소아청소년과 467명, 비뇨의학과 479명, 마취통증의학과 455명, 영상의학과 442명 등 순이다.

의료계에서는 이른바 '필수 의료' 과목을 전공한 전문의 다수가 일반의로 일하는 이유는 진료과목을 변경하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라고 이야기한다.

박 회장은 "전문의로 개원해도 다른 과목을 진료할 수 있지만 전문의와 일반의에 대한 간판 규정이 달라 일반의로 개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피부과 전문의는 의원 간판에 '○○피부과의원'으로 전공과목을 표시할 수 있다. 피부과 전문의가 아닌데 피부과를 진료과목으로 신고한 일반의는 '○○의원 진료과목 : 피부과' 같은 식으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피부&에스테틱' 또는 '○○스킨 클리닉' 같은 간판을 달고 있다면 피부과 전문의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

환자 입장에선 피부미용 진료를 위해 신경외과를 찾기보다는 피부과라고 적혀있는 일반의 병원을 찾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전문의도 일반의로 전환해 개원하는 편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일반의는 진료과목을 여러 개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일반의 전환이 많은 이유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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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진([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