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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봅시다] 생명의 시작은 언제이며,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배우 이시영씨. 뉴시스


“배아 냉동 보관 5년의 만료 시기가 다가오면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간이 왔고 폐기 시점을 앞두고 이식받는 결정을 제가 직접 내렸습니다. 상대방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제가 내린 결정에 대한 무게는 온전히 제가 안고 가려 합니다.”

배우 이시영씨가 최근 인스타그램에 ‘이혼 전 냉동한 배아를 홀로 이식해 임신했다’고 올린 글이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미 갈라선 상대의 동의 없이 이식한 결정에 대한 찬반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태어날 자녀의 정체성 혼란과 재산, 상속권으로 빚어질 법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죠. 그러나 이씨는 “제 손으로, 보관 기간이 다 되어 가는 배아를 도저히 폐기할 수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선물’이라는 신앙적 관점에서 생명 윤리를 다루는 교계 생명 운동 단체는 이번 일이 찬반을 명확히 하기 어려운 사안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결정은 환영하지만, 법적·윤리적 기준이 모호한 상태에서 자칫 생명을 기술과 선택의 문제로 취급할 우려도 있기 때문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고려대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인 홍순철 성산생명윤리연구소장은 1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성경은 물론 의학의 아버지였던 히포크라테스도 생명의 기원은 ‘수정 순간’으로 봤다. 수정체는 단순한 의학적 재료가 아니라 생명의 시작점으로 보는 것이 맞다”면서도 현행법상의 한계로 인해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는 “국내법은 태아에게는 상속권을 인정하되 형법으론 보호하지 않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생명의 시작점에 대한 법의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의사인 이명진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운영위원장은 “버려질 뻔한 생명을 출산까지 책임진 점은 고무적”이라면서도 “냉동 배아 출산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책임 있는 결혼생활’이며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시험관 시술 과정에서 일반화된 ‘잉여 배아’ 생성 관행의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의료 현장에서는 시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개의 배아를 만들어 일부만 이식하고 나머지를 냉동 보관하거나 폐기하는 일이 흔합니다. 서윤화 아름다운피켓 대표는 “국내에만 30만개 넘는 냉동 배아가 남아있다”면서 “잉여 배아가 안 생기는 단일 배아 이식이 생명 윤리의 핵심 대안”이라고 말했습니다. “시술 효율보단 생명의 존엄을 가치에 둔 의료 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해외에서는 배아를 생명으로 간주하고 법적으로 보호하는 인식이 점차 제도와 판례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앨라배마주에서는 냉동 배아를 파괴한 의료기관에 대해 “태어나지 않은 아이도 아이”라며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오리건주에선 30년간 냉동 보관된 배아를 입양해 쌍둥이를 출산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서 대표는 “국제 사회는 배아를 생명으로 간주하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생명존중을 위한 인식 개선교육과 제도적 재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나온 이씨의 고백은 생명이 언제 시작되며 누가 그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사회에 던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씨에겐 첫째 아들이 있습니다. 그에게 아이는 “꽉 찬 행복과 희망과 감동을 주는 천사” “존재 이유라고 느끼게 해 주는 기적” 같은 존재입니다. 이번에 이식한 배아를 폐기하지 않은 이유에도 그토록 소중한 생명을 없앨 수 없다는 마음이 있었을 겁니다.

무엇이 정답인지 단칼에 결론 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생명을 생명답게 존중하는 문화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 일어나길 바라봅니다. 생명 본질에 대한 인식이 잘 전환될 때 법·제도도 제대로 마련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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