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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크뉴스 › 스테이블코인의 역습...투자판·정책 다 바꿨다

랭크뉴스 | 2025.07.09 08:40:06 |


장면1.

서학개미 김동영(38) 씨는 최근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그는 지난 6월 5일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서클인터넷그룹에 투자했다. 공모가(31달러) 대비 9배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면서 큰 이익을 냈다. 신이 난 김 씨는 추격 매수를 결정, 하지만 이후 주가가 급락하며 손실을 봤다. 서클은 미국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유에스디코인(USDC)’ 발행사다.

국장에 투자하는 이주미(35) 씨도 한 달 새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테마주로 꼽히는 카카오페이에 투자해 지난 6월 상한가를 두 차례 맛봤지만 한국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의 리스크를 경고한 직후 주가는 다시 급락했다. 7월 2일 현재 종가(7만7400) 기준으로 고점 대비 17%가량 떨어진 상태다.

장면2.
‘ㅇㅇ은행 스테이블코인 상표권 출원’, ‘상표권 경쟁’…. 요즘 쏟아지는 기사 제목이다. 특허청 키프리스에 따르면 올해에만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 출원이 280건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원 기업은 23곳으로 토스뱅크가 48건으로 가장 많았다.

장면3.
박하영(55) 씨는 서울 강남 스타벅스 매장에서 애플페이에 연결된 스테이블코인 카드(레돗페이)로 커피 한 잔을 결제했다. 레돗페이는 달러 가치와 일대일로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 결제 카드다. 이 카드로 결제하면 디지털 지갑에서 실시간으로 스테이블코인이 차감되는 식이다. 박 씨는 “실물 카드는 발급 비용이 100달러로 조금 비싸지만 가상 카드는 10달러를 내면 즉시 발급되고 애플페이에도 등록이 돼 편리하다”고 말했다. “유학 간 자식에게 생활비를 보낼 때도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다”며 “낮은 수수료로 신속히 보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했다.

올해 들어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20% 가까이 증가하며 2400억 달러를 넘겼다. 투자에서 결제, 송금까지 활용도가 확대되면서 기업과 개인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법안 발의와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 등 제도권 진입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래픽=송영 기자

◆미국이 던진 돌 ‘스테이블코인’

스테이블코인은 가치를 달러 등 실제 자산에 고정한다. 발행할 때 미 국채, 달러, 금 등을 준비금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가격 변동성이 거의 없어 가상화폐 시장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키우려 했던 중앙은행 발행 가상화폐(CDBC)를 반대하고 ‘달러 패권’ 유지 수단으로 스테이블코인에 힘을 싣고 있다.

달러가 기축통화 역할을 하려면 무역수지가 적자일 수밖에 없다. 국외에 끊임없이 달러가 흘러가 사용돼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의 예산 적자 규모가 연간 1조 달러가 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미 재무부는 적자를 메우기 위해 계속해서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최근 중국 등 주요 수요처가 매입을 확 줄였다. 수요가 받쳐주지 못해 국채금리가 상승(국채 가격 하락)하면 미 정부가 지급해야 할 비용(이자)도 커진다.

트럼프 행정부는 스테이블코인을 미 국채를 떠안을 ‘묘수’으로 봤다. 현재 시장에서 유통되는 스테이블코인의 99%가 달러화에 연동돼 있다. 그 대부분은 미 국채를 담보로 하고 있다. 테더(USDT), 유에스디코인(USDC) 등이 대표적이다. 테더사의 미 국채 보유량은 1000억 달러가 넘는 규모로 ‘큰손’이다. 스테이블코인의 유통이 확산할수록 미 국채 매입이 늘어나고 달러 지배력 강화로 연결될 수 있다는 논리다.

미 상원은 지난 6월 17일 관련 법안인 지니어스법(Genius Act)을 통과시켰다. 이제 하원 표결만 남겨두고 있다. 이 법은 은행뿐 아니라 신용조합, 비은행 기관 등도 연방정부나 주정부 인가만 받으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그래픽=송영 기자


◆통화주권 확보 vs 원화 코인 의구심

미 재무부 차입 자문위원회(TBAC)는 달러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가 지난 5월 2429억 달러에서 2028년 약 2조 달러 규모(2025년 대비 8.3배)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에 대응해 세계 각지에서 자국 화폐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힘을 쏟고 있다.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통화주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일본은 일찍부터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율 체계를 마련해 금융사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고 홍콩도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는 등 관련 제도를 정부 차원에서 적극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가상자산시장법(MiCA)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발행 및 청약권유를 규제하는 등 제도권에 편입하고 있다.

한국도 대선 이후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후 ‘1코인=1000원’ 식으로 코인의 가치를 법정 통화와 연동시키는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여당에선 관련 법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요건(자기자본 5억원·비은행 민간업체도 포함)과 금융위원회 인가 체계 등을 담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을, 안도걸 민주당 의원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액의 100% 이상 담보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비기축통화인 원화를 활용한 스테이블코인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HSBC는 보고서를 통해 국제 결제시장에서 원화의 낮은 지위와 이미 잘 구축된 결제 환경, 높은 신용카드 사용률, 금융당국 규제 등으로 인해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확대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유럽중앙은행(ECB) 포럼에 참석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존재 자체가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의 전환을 더 쉽게 만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달러 스테이블코인 사용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송영 기자

◆코인런 막을 안전장치는?

한국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은 스테이블코인 확산에 경고음을 내고 있다. 금융안정과 경제 전반에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한국은행은 상반기 금융안정 보고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이 준비자산의 신뢰 훼손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코인런(대규모 인출 사태)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를 막을 안전장치가 없다고 경고했다. 코인런은 국채 대량 매도로 이어져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자칫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민간이 발행하는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확산하면 법정통화에 대한 신뢰와 은행의 신용 창출 기능이 약화되는 등 통화정책 유효성을 제약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BIS는 한국은행과 마찬가지로 가격 불안정성과 코인런, 신흥국에서의 자본 유출 위험 등을 우려했다(연례보고서 초안).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2024년 1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국내외 불확실성으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된 시기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거래소에서 국외로 유출된 자금 규모는 약 50조3000억원으로 추정된다.

◆민간 화폐 유통, 괜찮을까

BIS는 스테이블코인을 19세기 미국 자유 은행 시대에 유통되던 사설 은행권과 비교했다. 1837년부터 1863년까지 27년간 미국에서 모든 민간 은행이 국채나 금·은 등을 담보로 자체 화폐를 발행했다.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중앙은행 역할을 하던 제2미국은행의 재인가를 거부하면서 단일 법정 화폐를 발행하는 기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신뢰도와 안정성이 떨어지는 은행이 발행한 지폐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화폐의 단일성(모든 화폐가 같은 가치를 유지)이 깨진 것이다. 충분한 담보 없이 화폐를 발행했다가 망하는 은행도 속출했다.

BIS는 200년 전 이야기를 꺼내면서 민간이 화폐를 발행하게 되면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의 ‘무조건적 수용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기준금리 활용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해도 코인 발행사들이 높은 금리를 내세워 원화를 유치한다면 유동성이 막히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그래픽=송영 기자


◆CBDC 중단한 한국은행

법과 규제는 아직 첫 삽도 못 떴지만 시장에선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일단 무역거래나 해외 송금 시 시간과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다는 이점이 크다.

국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시장 선점을 둘러싼 상표권 경쟁이 금융권과 핀테크 업계를 가리지 않고 본격화되고 있다. 상표 출원이 곧바로 사업화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일단 사전 조치부터 취하고 보는 것이다.

핀테크 회사와 은행이 손을 잡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블록체인 투자사인 해시드가 주요 금융지주사 등과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컨소시엄 구성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도권 편입이 가시화하면 은행과 핀테크 등 비은행 산업의 합종연횡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은행이 추진해온 CBDC 사업은 2차 실험(테스트)을 앞두고 잠정 중단됐다. 스테이블코인 열풍에 밀린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 측은 “사업 불확실성이 커 일단 지켜보자는 논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만큼 민간이 발행한 스테이블코인보다 신뢰성과 안정성 면에서 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실험에 수십억원씩 투자했던 시중은행들은 한마디로 ‘벙쩠다’는 입장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일단 상표권 출원 등 원화 스테이블코인 대응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면서도 “스테이블코인 관련 제도의 방향이 하루빨리 잡혀야 인력도 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송영 기자


김태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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