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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자 넘으면 출생신고 안돼…최근 한국인-외국인 사이 자녀는 글자수 제한 없애
한국 국적자 최장 이름은 17자…다양성 증가 추세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1970년대 코미디언 구봉서는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같은 긴 이름과 관련된 코미디 대사로 인기를 끌었다. 과거에는 실제로 이런 긴 이름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대법원이 최근 규정을 개정해 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의 이름에 글자 수 제한을 없앴지만 부모가 모두 한국인인 경우 글자 수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어떤 이유에서 이름에 글자 수가 제한되기 시작했을까. 제한이 없던 시절엔 어떤 특이한 이름들이 있었을까.

구봉서와 배삼룡, 서영춘
코미디언 구봉서는 우리나라 희극계의 대부이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쓴 연예계의 거목으로 배삼룡 등과 콤비를 이뤄 1960~80년대 한국 희극계를 주름잡으며 코미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사진은 70년대 개봉한 영화 '형님먼저 아우먼저' 포스터에 등장하는 구봉서(왼쪽부터), 배삼룡, 서영춘.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글이름 유행으로 긴 이름 등장하자 1993년 글자 수 제한
이름 글자 수를 제한하는 규정이 생긴 것은 1993년이다. 법원행정처 사법발전재단 사법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역사 속의 사법부'(2009)에 따르면 긴 이름으로 '불편'한 경우가 생겨나면서 이같은 규정이 만들어졌다.

당시 대법원은 '이름의 기재 문자와 관련된 호적사무처리지침'이라는 예규를 통해 성을 제외하고 다섯 자가 넘는 이름이 기재된 출생신고를 수리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내부 지침을 정했다.

당시 예규는 "이름은 그 사람을 특정해 주는 공적인 호칭으로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상당한 이해관계를 가지게 되므로 난해하거나 사용하기에 현저히 불편을 초래하는 것은 쓸 수가 없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지만 어떤 '불편'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 이름에 쓸 수 있는 한자의 개수도 제한됐다. 1990년 인명용 한자는 통상적으로 쓰이는 한자 2천731개로 한정됐다. 당시 호적 사무를 전산처리하기 위해서 한자 수 제한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후 인명용 한자는 관련 규정이 12차례 개정되면서 현재 9천389자로 늘었다.

인명용 한자의 사례를 볼 때, 이름의 글자 수를 제한하게 된 '불편함'은 전산처리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한글단체, 한글이름 쓰자..기자회견
2019년 3월7일 국어단체연합 국어문화원, 국어문화운동실천협의회 등 한글 관련 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말글로 이름을 짓고 쓰자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글 이름 짓기라는 당시 시대 흐름도 이름의 글자 수 제한에 한몫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는 순우리말 이름 짓기가 유행했다.

항렬(돌림자)을 따라 한자로 이름을 짓는 것이 전통적인 작명법이었는데, 순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개성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맞물리면서 한글 이름이 부상하게 됐고 그러면서 이름이 길어지게 됐다. 한자는 그 의미를 압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지만 순우리말은 풀어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글학자 배우리 씨가 쓴 책 '우리말 고운 말 고운이름 한글이름'에는 10글자 내외의 다양한 한글 이름이 수록돼 있다.

예컨대 '정우람히너른바회', '박차고나오노미새미나', '황금독수리온세상을놀라게하다', '윤하늘빛따사로움온누리에' 등이 있다.

특히 김텃골돌샘터 씨의 가족 이름이 흥미롭다. 김씨의 아내 이름은 '강뜰에새봄결'이고, 아들은 '김빛솔여울에든가오름', 딸은 '김온누리빛모아사름한가하'이다.

이런 한글 사랑 덕분에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은 지난 2007년 김씨를 우리말지킴이로 선정하기도 했다.

글자 수 제한이 등장하기 전에는 얼마나 긴 이름이 있었을까.

'역사 속의 사법부'에 따르면 성이 박씨이고 이름이 '하늘별님구름햇님보다사랑스러우리'인 17자가 한국 국적자 중 가장 긴 이름이다. 대상을 넓히면 이중국적자인 '프라이인드로스테쭈젠댄마리소피아수인레나테엘리자벳피아루이제'씨의 30자 이름이 우리나라에 등록된 가장 긴 이름이다.

'역사 속의 사법부'가 2009년에 발간됐기에 그 이후에 이보다 더 긴 이름이 등록됐을 가능성도 있다. 외국인이 귀화했을 경우 이름에 글자 수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1998년부터는 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자녀의 경우 아버지 나라 신분등록부에 기재된 외국식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하면 글자 수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러다 이번에 한국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 사이에 출생한 자녀의 이름까지 글자 수 제한이 없어졌다.

한글 이름 '바다'·'가을' 선물 받은 멕시코 자매
2021년 10월 9일(현지시간) 주멕시코 한국문화원이 마련한 한글날 기념행사에서 현지인 자매가 '바다'와 '가을'이라는 순우리말 새 이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주멕시코 한국문화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름만 보면 남녀 구별?…최근 들어 중성적 이름 등장
한때 한글 이름이 유행했던 것처럼 시기마다 인기 있는 이름이 달랐다.

'역사 속의 사법부'가 정리한 이름 순위에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 통계서비스'가 공개하는 상위 출생신고 이름 현황을 더해 10년마다 가장 많이 접수된 이름 순위를 살펴보니 남자의 경우 1948년, 1958년, 1968년에는 '영수', '영호', '영식', '영철'이라는 이름이 꾸준히 인기가 높았다.

이 중 '영철'은 최근에도 한 연예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남성 출연자들에게 부여된 가명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1978년을 기점으로 남자 이름은 '-훈'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정훈', '성훈', '상훈', '지훈' 등이 그 사례다.

2000년대 들어서는 '민준', '준서', '서준', '하준'과 같이 '준'이 들어간 이름이 강세를 보였다.

[표] 남자 이름 연도별 추이



※ 1998년까지는 '역사 속의 사법부'에서 발췌. 나머지는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 통계서비스'가 공개하는 상위 출생신고 이름 현황

여자 이름의 경우 1978년 이전까지만 해도 '-자', '-숙', '-희' 등의 특정 이름으로 쏠림 현상이 심했다.

이 가운데 '순자', '영자' 등의 '-자'는 일본식 이름 '-코(子)'의 잔재였다.

'영숙', '정숙', '명숙', '경숙' 등의 '-숙'(淑)은 '맑고 깨끗하며 정숙하다'는 의미로,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바라는 덕목을 담은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영희', '경희' 등에 많이 쓰인 '희'(姬)는 공주나 귀한 여성을 지칭할 때 쓰이는 한자어로, '아름답고 고귀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1978년 이후엔 '지영', '지혜', '지은' 등 '지'(智)가 많이 등장하며 지성 덕목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쏠림 현상도 완화됐다. 특히 여자 이름 1위의 건수는 1968년 8천963건에서 2018년 2천531건으로 줄어들었다. 2018년 남자 이름 1위 건수(3천86건)와 비교하면 여자 이름이 훨씬 다양해졌음을 알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남녀 모두 이름만 봐서 성별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은 중성적 이름이 부상하기도 했다. '유진'(여자), '지호'(남자) 등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표] 여자 이름 연도별 추이



※ 1998년까지는 '역사 속의 사법부'에서 발췌. 나머지는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 통계서비스'가 공개하는 상위 출생신고 이름 현황

최근 2년(2023∼2024년)만 놓고 보면 남자 이름은 '이준', '도윤', '하준', '은우', '서준' 등이, 여자 이름은 '서아', '이서', '아윤', '지아', '하윤' 등이 많이 사용됐다.

우리말 이름 선물받은 외국인 유학생들
2014년 10월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순우리말 작명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외국인 유학생 20여 명은 실제 성대 재학생이 사용하고 있는 순우리말 이름과 함께 이름이 새겨진 붓글씨와 도장을 함께 받았다.[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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