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흔 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 인터뷰]
李정부 첫 부동산 규제 "급소 쳤다" 평가
"전세 대출 축소 따른 문제점 대비해야"
보유세 인상, 낮은 분양가 주택 공급 등
"일관성 있게 정책 추진해야 시장 안정"
조정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토지주택위원장이 3일 서울 양천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 위원장은 "부동산 시장이 불안정하면 가정을 꾸리기 위해 집을 마련해야 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6·27 대책' 이후에도 정교한 후속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예진 기자
지난달 27일 정부가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방안'(6·27 대책)은 수도권 지역의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한 이재명 정부의 '극약 처방'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수도권과 규제 지역의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 원으로 설정하는 등 유례없는 규제 방안이 담긴 데다 별도의 유예 기간 없이 즉각 시행됐다는 점에서, '강도'와 '속도' 모두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시장은 일단 정부 규제에 따른 영향을 주시하며 관망세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새 정부의 첫 부동산 규제안을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난 3일 서울 양천구 소재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조정흔 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은 6·27 대책을 두고 "급소를 쳤다"고 표현했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서 '돈줄'을 막는 조치가 전격적으로 이뤄진 만큼 과열된 시장이 진정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20년 경력 감정평가사인 조 위원장은 2018년부터 경실련에서 활동하며 서민의 주거 안정 문제를 고민해 왔다. 조 위원장으로부터 6·27 대책의 의미와 향후 과제 등을 들어봤다. 이하는 조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날 발표된 정부 가계부채 관리방안 등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에 대한 총평이 궁금하다.
"올해 들어 서울 강남 지역부터 시작된 집값 급등 양상이 다른 지역으로 '낙수효과'처럼 확산하는 상황에서 나온 대책이라 시의적절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처럼 대책 발표 이후 유예기간을 뒀으면 시장 참여자들이 우회로를 찾으려고 하면서 혼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격적으로 시행한 것은 다행이다. 강남의 고가 아파트 등을 '현금 부자'들이 사는 비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고소득 직장인이 10억 원씩 주택담보대출을 일으켜 매입하는 사례도 분명 존재한다. 주담대 한도 규제는 분명 고가 아파트 매매를 축소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고소득 흙수저의 강남 입성이 막혔다'는 한탄도 있다.
"6·27 대책 발표 직후 일부 언론이 그런 취지로 비판적 보도를 했다. 과거에도 고강도 부동산 대책이 나오면 예외 없이 비슷한 기사들이 등장했다. 그런데 강남으로 입성을 꿈꿀 만큼 경제력이 상당한 가정을 우리 사회가 왜 걱정해야 하나. '계층의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식으로 고소득층의 자산 형성까지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은 기만적이다.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할 사회적 약자가 진정 누구인지 고민해야 한다."
조정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이 3일 서울 양천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며 자료들을 살펴보고 있다. 조 위원장은 "경실련이 설립된 1989년 당시에도 부동산 투기로 인한 서민들의 주택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였다"고 말했다. 강예진 기자
-비규제 지역 및 중저가 주택으로의 '풍선효과' 우려도 있는데.
"후속 대책에 따라 부작용의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정부가 양질의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방안을 발표한다면 주택 수요자 입장에선 굳이 서둘러 매수세에 동참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6·27 대책은 디딤돌(매매)과 버팀목(전세) 등 정책 대출의 한도도 축소했다. 정책 대출로 구매 가능한 중저가 주택의 가격 상승에도 제한이 생기는 만큼 특정 가격대 매물 쏠림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정책 대출 축소는 젊은 세대의 주거비 부담을 늘리지 않을까.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본다. 하지만 정책 대출을 통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는 자금 또한 결국엔 집값 상승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통해 그 고리를 끊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당연히 고통이 수반된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대체 주거지가 필요하다. 공공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하는 이유다."
조정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이 3일 서울 양천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방안(6·27 대책)을 평가하고 있다. 조 위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부동산 정책에 관해 원론적 수준의 공약을 발표했다. 규제 철학이 확고했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전략적인 모호성'을 통해 시장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예진 기자
-전세 대출 한도까지 줄어 세입자들 걱정도 만만찮다.
"전세 대출은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고 왜곡한 주범이다. 서민을 위한 주거 안정 대책으로 시장에 나왔지만 현실에선 집값 부양에 악용돼 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 급등기에 전세 대출을 확대한 결과,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매매가가 오르는 현상이 벌어졌다. 집값 안정을 위해선 전세 대출 총량을 줄이는 게 맞다. 다만 전세 대출이 줄면 전세가가 내려갈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역전세'가 벌어져 피해 가구가 생길 수 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
-6·27 대책 발표 직후 시장 반응은 어떻게 평가하나.
"아직 일주일 정도밖에 안 돼서 분석이 어렵다. 다만 숨 고르기 장세가 당분간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집을 구매할 계획이 있었던 가정은 관망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매매 계약을 체결했거나, 입주 예정인 아파트의 잔금을 치러야 하는 사람들의 혼란을 최우선으로 지켜봐야 한다."
-이번 대책엔 안 담겼지만 보유세 인상 논의도 뜨겁다.
"주택 보유세에 대한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 보유세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사용료로 봐야 한다. 예컨대 한강 변에 주공아파트가 처음 지어졌을 당시엔 주변이 허허벌판이었다. 그러다 수십 년이 지나 주거 환경이 정비되면서 집값이 올랐다면 입주자가 노력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 주변 인프라가 개선된 것은 국가가 투자했기 때문이다. 그 투자에 대한 비용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신자유주의의 대부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토지 보유세를 '모든 세금 중 가장 덜 나쁜 세금'이라고 평가한 이유다. 다만 1주택 실거주 고령층의 충격에 대비해 보유세 인상 논의는 중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조정흔(왼쪽 두 번째) 토지주택위원장 등 활동가들이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역대 정권별 서울 아파트 시세 변화 분석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부동산 안정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의 '4기 신도시 개발' 공약은 실효성이 있을지.
"지금과 같은 주택 공급 시스템에서는 회의적이다. 3기 신도시든 4기 신도시든 공급 자체보다는 '어떤 형태의 공급이냐'가 관건이다. 신도시 주택 분양가가 예비 수요자들의 소득 수준에서 부담 가능한 정도로 책정되지 않는다면 수도권 집값을 잡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낮은 분양가의 경우 시세 차익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이익 환수 방안이 필수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집값이 오른다'는 통념, 앞으로도 유효할까.
"경실련이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부터 윤석열 정부가 임기를 마친 올해 5월까지 서울 전역에 있는 주요 75개 아파트 단지의 30평대 매물을 대상으로 시세 변화를 분석한 결과 문재인(119%)·노무현(80%) 정부가 상승률 1, 2위를 기록했다. 보수당이 집권했던 박근혜(21%)·윤석열(1%)·이명박(-10%) 정부에선 상승률이 저조했다. 이재명 정부에서도 이 같은 경향이 반복될지 아닐지는 후속 대책에 달렸다. 부동산 문제는 방향성이 가장 중요하다.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정책을 추진해야 시장이 안정된다. 특정 이슈나 여론에 따라 정책을 바꾸면 반드시 역풍이 불기 마련이다."
한국일보
장재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