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오는 9월 3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이른바 전승절(戰勝節) 행사에 이재명 대통령을 초청하기 위해 외교 채널로 참석 의사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중국 전승절에 한국 대통령으로선 유일하게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례와 취임 초기의 대미·대중 관계 설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한 정무적 판단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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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초청 의사 외교 경로로 전달"
1일 복수의 소식통은 중앙일보에 “중국이 외교 채널을 포함한 여러 경로를 통해 오는 9월 3일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反)파시스트전쟁 승리 80주년 대회'와 열병식에 이 대통령을 초청할 경우 응할 것인지 한국 측 의사를 문의하고 있다”며 “올해 들어선 한·중 고위급 접촉 등을 계기로 한국 대통령을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직접 전달했다”고 전했다.
초청장 발송 등이 이뤄진 건 아니지만, 대사관 등 외교 채널로 한국 측 의향을 물은 건 사실상 공식적으로 초청 의사를 전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크다. 정부는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하지 않고 있으며, 고위급 특사 파견 등까지 다양한 방안을 선택지에 넣고 검토하고 있다.
중국은 일본이 항복 문서에 서명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9월 2일의 다음 날인 9월 3일을 항일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절로 삼고 있다. 올해 80주년 전승절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정주년(5·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에 해당한다.
지난달 24일 후허핑(胡和平)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상무부부장은 전승절 개최 소식을 전하면서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 중요한 연설을 한다"며 "국가 지도자, 전직 정부요인, 고위급 관리, 관련 국제기구 주요 책임자, 주중 외교사절, 무관 등을 초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절 열병식을 정상급 행사로 치르겠다는 방침을 밝힌 셈인데, 구체적으로 초청 명단을 밝히지는 않았다.
중국이 이 대통령의 전승절 행사 참석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을 두고 10년 전 박 전 대통령을 천안문 성루에 세웠던 70주년 행사를 재현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 9월 박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정상 중 유일하게 참석해 시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열병식을 지켜봤다. 서방 주요국 정상이 모두 불참한 가운데 6·25 전쟁에 적군으로 참전한 중국의 국방력 과시에 박수를 보내는 행사에 직접 자리한 것이라 외교적 파장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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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북핵 공조 기대하고 참석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외교적 결단을 내린 건 북핵 문제 등에서 중국의 책임 있는 역할과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견인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같은 해 11월 서울에서 4년 5개월 만에 한·일·중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등 중국도 호응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듬해 북한이 4차 핵실험(1월)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2월) 등 고강도 도발에 나섰는데, 중국은 한국의 고위급 협의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한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결정을 내렸고, 중국이 보복에 나서며 양국 관계는 급격히 악화했다.
박 전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은 한·미 동맹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 국무부는 당시 “열병식에 참석한 각국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사실상 불편함을 내비쳤다. 박 전 대통령의 참석을 미국이 만류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도 나왔다. 전통적으로 한·미 동맹을 최우선에 두는 보수 성향의 박근혜 정부에 대해 오바마 미 행정부는 시종 높은 신뢰를 보였는데도 일정 수준의 균열은 피하기 힘들었다.
또 전승절이 열리는 천안문 광장은 1989년 민주화 시위에 대한 유혈 진압이 이뤄진 장소이기도 하다. 인권 변호사 출신이라는 점을 부각한 이 대통령이 천안문 망루에 서는 것 자체가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불필요한 오해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국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은 과거의 전례에서도 보듯이 정치적으로 부담이 크고 인화성이 매우 큰 사안인데도 중국이 초청을 추진하는 것은 한국에 미묘한 압력을 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전승절을 계기로 이재명 정부의 대중정책 기조를 탐색하고, 나아가 미·중 전략적 경쟁 구도에서 한국의 선택을 압박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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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절 한 달 뒤 APEC
특히 이번 전승절은 시기적으로도 예민할 수 있다. 지난달 4일 취임한 이 대통령은 아직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상견례도 하지 못했다. 정부는 최대한 빨리 이 대통령의 방미 등을 통한 한·미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노력한다는 입장이지만, 관세와 국방비 인상 등 현안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일정 조율이 쉽지 않은 분위기다. 트럼프와의 정상회담 성사 전 중국 전승절 참석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경우 정부의 고민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상외교의 순서가 주는 함의를 고려할 때 이런 일정 자체가 정부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9월 중국 전승절 참석에 앞서 6월 방미할 예정이었지만,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대응으로 인해 일정이 연기됐다. 이에 천안문에서 시 주석을 먼저 만났고, 한 달여 뒤에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다. 이에 “방미보다 방중이 먼저 이뤄지면서 순서가 꼬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더해 이번에는 전승절 이후인 10월 말 한국이 주최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다. 시 주석 참석 여부는 흥행 성패를 가르는 중요 요소 중 하나다. 중국이 이를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 성사를 위한 협상력 제고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교도통신은 지난달 29일 "중국이 9월 전승절 행사에 트럼프 대통령을 초대할 방침"이라며 "미국도 같은 달 열리는 창설 80주년 유엔 총회에 시 주석을 초청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다만 현재 정세를 고려할 때 트럼프의 전승절 참석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정부 안팎의 평가다. 시 주석 역시 지난 2015년 유엔 창설 70주년 총회를 제외하고는 직접 참석한 적이 없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새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과 인적 라인이 아직 충분히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의 초청을 성급히 수용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는 불참하면서 중국의 대규모 열병식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면 오해를 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6일 왕이(오른쪽) 중국 외교부장이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제2회 중국·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회담에 참석한 모습. 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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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초청 의사 외교 경로로 전달"
1일 복수의 소식통은 중앙일보에 “중국이 외교 채널을 포함한 여러 경로를 통해 오는 9월 3일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反)파시스트전쟁 승리 80주년 대회'와 열병식에 이 대통령을 초청할 경우 응할 것인지 한국 측 의사를 문의하고 있다”며 “올해 들어선 한·중 고위급 접촉 등을 계기로 한국 대통령을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직접 전달했다”고 전했다.
초청장 발송 등이 이뤄진 건 아니지만, 대사관 등 외교 채널로 한국 측 의향을 물은 건 사실상 공식적으로 초청 의사를 전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크다. 정부는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하지 않고 있으며, 고위급 특사 파견 등까지 다양한 방안을 선택지에 넣고 검토하고 있다.
중국은 일본이 항복 문서에 서명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9월 2일의 다음 날인 9월 3일을 항일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절로 삼고 있다. 올해 80주년 전승절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정주년(5·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에 해당한다.
지난달 24일 후허핑(胡和平)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상무부부장은 전승절 개최 소식을 전하면서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 중요한 연설을 한다"며 "국가 지도자, 전직 정부요인, 고위급 관리, 관련 국제기구 주요 책임자, 주중 외교사절, 무관 등을 초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절 열병식을 정상급 행사로 치르겠다는 방침을 밝힌 셈인데, 구체적으로 초청 명단을 밝히지는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중국이 이 대통령의 전승절 행사 참석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을 두고 10년 전 박 전 대통령을 천안문 성루에 세웠던 70주년 행사를 재현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 9월 박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정상 중 유일하게 참석해 시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열병식을 지켜봤다. 서방 주요국 정상이 모두 불참한 가운데 6·25 전쟁에 적군으로 참전한 중국의 국방력 과시에 박수를 보내는 행사에 직접 자리한 것이라 외교적 파장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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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북핵 공조 기대하고 참석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외교적 결단을 내린 건 북핵 문제 등에서 중국의 책임 있는 역할과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견인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같은 해 11월 서울에서 4년 5개월 만에 한·일·중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등 중국도 호응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듬해 북한이 4차 핵실험(1월)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2월) 등 고강도 도발에 나섰는데, 중국은 한국의 고위급 협의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한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결정을 내렸고, 중국이 보복에 나서며 양국 관계는 급격히 악화했다.
박 전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은 한·미 동맹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 국무부는 당시 “열병식에 참석한 각국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사실상 불편함을 내비쳤다. 박 전 대통령의 참석을 미국이 만류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도 나왔다. 전통적으로 한·미 동맹을 최우선에 두는 보수 성향의 박근혜 정부에 대해 오바마 미 행정부는 시종 높은 신뢰를 보였는데도 일정 수준의 균열은 피하기 힘들었다.
2015년 9월 3일 항일전쟁승리 70주년 기념식에서 천안문 망루에 오른 박근혜 전 대통령, 박 전 대통령 옆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주석이 섰다. 시 주석 왼편에는 장쩌민, 후진타오가 자리했다. 중국 신화망
지금은 당시보다 미·중 간 전략 경쟁이 훨씬 첨예해졌다. 미국 대 중·러를 중심으로 한 진영 간 대결구도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어떤 선택이든 상당한 기회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고차 외교 방정식'이 이재명 정부에 주어진 셈이다.
또 전승절이 열리는 천안문 광장은 1989년 민주화 시위에 대한 유혈 진압이 이뤄진 장소이기도 하다. 인권 변호사 출신이라는 점을 부각한 이 대통령이 천안문 망루에 서는 것 자체가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불필요한 오해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국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은 과거의 전례에서도 보듯이 정치적으로 부담이 크고 인화성이 매우 큰 사안인데도 중국이 초청을 추진하는 것은 한국에 미묘한 압력을 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전승절을 계기로 이재명 정부의 대중정책 기조를 탐색하고, 나아가 미·중 전략적 경쟁 구도에서 한국의 선택을 압박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말했다.
2015년 9월 3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행사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석한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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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절 한 달 뒤 APEC
특히 이번 전승절은 시기적으로도 예민할 수 있다. 지난달 4일 취임한 이 대통령은 아직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상견례도 하지 못했다. 정부는 최대한 빨리 이 대통령의 방미 등을 통한 한·미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노력한다는 입장이지만, 관세와 국방비 인상 등 현안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일정 조율이 쉽지 않은 분위기다. 트럼프와의 정상회담 성사 전 중국 전승절 참석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경우 정부의 고민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상외교의 순서가 주는 함의를 고려할 때 이런 일정 자체가 정부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9월 중국 전승절 참석에 앞서 6월 방미할 예정이었지만,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대응으로 인해 일정이 연기됐다. 이에 천안문에서 시 주석을 먼저 만났고, 한 달여 뒤에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다. 이에 “방미보다 방중이 먼저 이뤄지면서 순서가 꼬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더해 이번에는 전승절 이후인 10월 말 한국이 주최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다. 시 주석 참석 여부는 흥행 성패를 가르는 중요 요소 중 하나다. 중국이 이를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 성사를 위한 협상력 제고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교도통신은 지난달 29일 "중국이 9월 전승절 행사에 트럼프 대통령을 초대할 방침"이라며 "미국도 같은 달 열리는 창설 80주년 유엔 총회에 시 주석을 초청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다만 현재 정세를 고려할 때 트럼프의 전승절 참석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정부 안팎의 평가다. 시 주석 역시 지난 2015년 유엔 창설 70주년 총회를 제외하고는 직접 참석한 적이 없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새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과 인적 라인이 아직 충분히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의 초청을 성급히 수용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는 불참하면서 중국의 대규모 열병식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면 오해를 살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