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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노출·핵폐기물 처리 과제
완전 해체까지 12년 걸릴 듯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기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수명을 다해 멈춰 있던 국내 첫 원전 고리 1호기의 ‘해체’가 결정됐다. 원전 해체는 국내에선 처음, 상업 원전으론 미국에 이어 세계적으로 두 번째다. 국외 원전 시장에 진출할 기회라는 기대가 있지만, 방사능 유출 위험과 폐기물 처리 등 해소해야 할 과제가 많다.

국무총리 산하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26일 전체회의에서 부산 기장군 ‘고리 1호기 해체 승인’ 안건을 통과시켰다. 국내 첫 상업 원전인 고리 1호기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사가 설계 시공을 맡아 1978년 가동을 시작했고, 40년 수명을 다한 뒤 2017년 6월 운영이 영구 중단됐다. 원안위법은 원전 운영이 중단된 뒤 5년 안에 해체를 결정하도록 하는데, 원자로 보전 방식에 대한 논의와 오염 처리 계획 보완 등으로 해체 결정은 3년 더 지연됐다.

고리 1호기의 해체 작업은 전체 1조713억원(해체 작업 8088억원, 폐기물 처분 2625억원)을 들여 12년 이상 걸릴 전망이다. 현재 원전 내 수조에 저장 중인 사용후핵연료를 반출하기 위해선 고리 원전 부지 안에 보관 시설을 따로 건설해야 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공사는 5년 뒤에야 시작된다.

사용후핵연료 반출과 비오염 시설의 해체가 끝나면, 해체 작업의 핵심인 원자로 등 오염 시설의 해체가 4년가량 진행된다. 원자로 뚜껑을 열어 열교환기, 증기발생기 같은 원전 주요 기기를 잘게 쪼개 드럼통에 밀폐하는데, 이 과정에 방사능 유출과 작업자 피폭 위험이 뒤따른다. 이후 부지 복원 작업까지 거치면, 한수원은 빠르면 2037년 6월께 해체 공사가 완료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549조 원전 해체 시장 기대


이번에 원안위가 고리 1호기의 해체를 승인한 배경에는 앞으로 전세계적으로 원전 해체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도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대형 원전을 해체해본 경험을 가진 나라가 적은 상황에서, 고리 1호기 해체 경험이 전세계 원전 해체 시장으로 나아갈 교두보가 될 것이란 기대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등은 지난해 말 원전 해체 시장에 대응한다며 ‘한국원자력환경복원연구원’을 설립했는데, 이 기관은 전세계 원전 해체 시장이 549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전세계 가동 중 원전이 417기, 건설 중 원전이 61기란 걸 고려하고, 이들의 운영이 모두 종료될 2110년 시점으로 계산한 결과다.

한수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원전 해체와 관련한 상용화 기술을 96개 확보했다고 밝혔다. 한수원 관계자는 “원전 해체 기술 수준으로 선진국인 미국의 70% 이상까지 따라왔다“며 “4족형 자율보행 지상로봇과 자율비행 로봇을 활용해 작업자 피폭을 최소화하는 기술도 완성 단계”라고 말했다. 정지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연구원은 “미국이 먼저 고리 1호기와 비슷한 가압경수로인 케와니 원전을 해체하고 있어서 참고 사례가 있고, 한수원도 제염·해체 및 엔지니어링, 방사선 관리 등 자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쟁력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전 해체 전문가인 김종도 한국해양대 교수(기관공학부)는 한겨레에 “전세계적으로 원전을 해체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나라는 미국, 독일, 영국, 일본 정도고, 실제 기술력이 검증된 기업은 10개도 안 될 정도”라며 “고리 1호기 해체를 ‘시범사업화’해 지역 중소기업 중심으로 폐기물 처리 및 해체 기술을 육성하는 전략을 세우면 원전 생태계뿐 아니라 지역 경제도 살리는 선순환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반면 원전 해체 시장의 규모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전을 운영하는 나라 대부분이 이번 고리 1호기처럼 ‘즉시 해체’를 결정하기보단 20년 이상 방사선 반감기를 거친 뒤 해체하는 ‘지연 해체’를 택하고 있고, 그렇기에 당장 국외에서의 수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방사선 반감기가 지난 폐쇄 원전은 피폭 위험이 줄어들기에 큰 기술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 같이 땅이 넓은 나라들은 오랜 시간 뒤 원전을 해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는 모두 26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고 4기가 건설 중이다. 이 중 수명을 다한 4기 중 월성 1호기가 이번 고리 1호기에 이어 해체 심사를 앞두고 있다. 고리 2·3호기는 수명 연장 절차를 밟고 있다. 2030년까지 고리 4호기 등 추가로 8기가 수명을 다해, 수명 연장이냐 해체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26일 서울 중구 원자력안전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216회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에서 최원호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위원들과 안건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폐기물통 8만개… ‘지연 해체’ 주장도

고리 원전 주변 주민과 환경단체들은 ‘핵폐기물 처리장’을 건설하지도 않고 원전을 해체하는 것에 불안과 우려를 내보이고 있다. 가뜩이나 고준위방사선폐기물(사용후핵연료)을 저장하는 시설이 없어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에 보관하는 실정인데, 해체 과정에서 잔뜩 나올 폐기물을 과연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국원자력환경복원연구소는 고리 1호기 해체 과정에서 200리터짜리 드럼통 8만개 이상의 폐기물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리 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의 포화도는 이미 90%를 넘은 상황이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등은 이런 이유로 ‘고리 1~4호기 동시 해체’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국내 원전은 대체로 두 기씩 짝지어져 있는데, 가동 중인 원전 옆에서 해체 작업이 진행되면 사고 발생 위험이 있으니 한 쌍씩 묶어 해체하자는 것이다. 실제 이날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에서도 제무성 원안위원이 “고리 2호기의 수명 연장 여부가 심사 중인 상황에서 1호기의 해체 여부를 정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고, 이에 대해 한수원 쪽이 “해체 과정은 인접 호기에 영향이 없고 늦어질수록 비용이 늘 수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원전 해체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수렴할 제도가 없다는 것도 불안 요소다. 원자력안전법상 한국수력원자력이 해체 계획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주민공청회를 열게 돼 있지만, 해체 작업이 시작되면 별도의 주민 의견을 수렴할 절차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앞서 공청회도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단 지적이 나왔다. 박상현 부산환경운동연합 협동사무처장은 “2020년 말에 진행된 공청회는 계획서 초안을 읽는 수준으로 진행됐고, 이후 보완된 자료를 공개해달라는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10년 내 10기 이상 원전의 수명이 종료되는 상황에서 ‘즉시 해체’뿐 아니라 ‘지연 해체’ 방식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동을 중지한 상태에서 10~20년 이상 시간을 보낸 뒤 원전을 해체할 경우 방사선 유출 등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전세계 22개 국가에서 영구 정지된 215기 원전 중, 실제 해체를 진행한 건 25기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대부분의 나라가 이처럼 ‘지연 해체’를 결정한 이유는 “별도 처분 시설을 짓지 않고도 원자로 내부에 핵폐기물을 보존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나 방사능 수치가 떨어질 경우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해체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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