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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에 ‘비핵화’ 미명과 엇갈린 신호
전후 규범 붕괴·비확산 체제 동요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 미군의 이란 핵 시설 공격 이후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뒤는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시에 의해 21일(현지시간) 전격적으로 실행된 미군의 이란 핵 시설 직접 타격이 국제사회에 위험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대국이 약소국에 대한 무력 침공을 ‘예방적 선제공격’으로 포장할 수 있는 길을 터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의도와 반대로 “생존을 위해서는 빠른 핵무기 개발만이 답”이라는 미국 적대국들의 오판을 부추길 가능성도 있다.

악마화



유엔 헌장은 선제공격을 금지하고 있다. 반격일 때만 국제사회에서 안전하게 자위권 행사로 인정받을 수 있다. 예외가 없지는 않다. 예상되는 상대의 공격이 자국 존립을 위태롭게 만들 때다. 선제공격은 더러 ‘예방적’이라는 수사로 정당화된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특수 관계다. 조약으로 묶인 정식 동맹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인지 동맹’으로 통한다. 13, 21일 잇달아 이란을 때린 양국이 이슬람 국가를 대하는 태도는 비슷하다. 악마화다. 2002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뉴욕타임스(NYT) 특파원 출신 작가 크리스 헤지스는 19일 “이란의 ‘핵무기 프로그램’은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가) 아무 증거 없이 사담 후세인의 신화적 대량살상무기(WMD) 및 알카에다(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와의 동맹을 주장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며 “
순수 악을 구현하는 어떤 나라가 WMD를 획득하기 직전이고 그게 우리의 존재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대(對)이라크 전쟁 당시 클리셰(상투 어구)가 대이란 전쟁을 부추기기 위해 부활한 셈
”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규칙의 붕괴로 이어진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질서와 규칙을 세우고 수호해 온 나라가 미국이다. 영토 침범이나 선제공격 등의 차단 역시 미국이 주도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70년 넘게 유지돼 온 국제 규범이 무력화되며 푸틴 대통령에게도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할 명분이 생겼을 수 있다. 미국의 대이란 공격 토대가 된 이란 핵 보유 임박 가설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동진하며 자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러시아의 가설과 뭐가 다르냐는 반박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더불어 미국의 이란 타격으로 자칫 중국의 대만 침공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북한처럼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21일 워싱턴 백악관 상황실에서 대이란 공격 등을 논의하는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은 JD 밴스 미국 부통령. 백악관이 공개한 사진이다. EPA 연합뉴스


미국은 국제 핵무기 통제 체제인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핵심 국가이기도 하다. 이란 비핵화는 미국이 내세운 이날 공습의 유일한 목표였다. 하지만 미국의 이번 공격이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란은 2015년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당시 체결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란 핵합의)을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탈퇴한 2018년 이후에도 나름대로 준수하느라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지 않았다. 이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최근까지 인정해 온 바였다. 체제 붕괴 방어 용도의 핵 개발 추진을 이란이 의심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미국과의 핵 협상에서 이란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게 ‘우라늄 농축 권리’였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최근 미국 NBC방송 인터뷰에서 “(우라늄) 농축권 포기는 불가능하다”며 “그것은 우리 과학자들이 일군 업적인 데다 국가적 자존심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1일 사설에서 “(미국의) 이번 공격을 계기로 이란 정부는 핵무기 보유가 정권에 제공하는 안보를 이전보다 더 은밀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의지는 설령 미국에 의해 이란 정권이 바뀌더라도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게 전문가들 예상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 때 미국 국무부 부차관보를 지낸 앤드루 밀러 미국진보센터(CAP) 선임연구원은 21일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이란에 친서방 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핵 농축 권리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을 취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며 “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정부(리비아나 이라크)는 무너지고 포기하지 않는 정부(북한)는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이란 지도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
”이라고 짚었다.

실제 북한의 경우 미국의 제재와 방해 속에서도 핵탄두를 60기 넘게 확보한 상태이며, 이 때문에 미국이 선제 타격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고 NYT는 전했다. 북한은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사거리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10기 가까이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미국의 이란 공격을 본 약소국들이 앞으로 비핵화 협상에 나서기보다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더 매진하리라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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