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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의 대물림, 활자로 끊다
‘수용자 자녀’ 10명의 수기집 ‘기억함의 용기’ 출간
권선징악·가족주의 신봉하는 사회선 자녀도 ‘죄인’
절친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그시절 텍스트로 녹여
수용자 자녀 10명이 함께 쓴 에세이 ‘기억함의 용기’에 수록된 일러스트. 집필에 참여한 ‘다원’이 직접 그렸다. 막 한글을 뗀 어린 동생이 ‘교도소’라는 글자를 읽을까 눈을 가리고 면회를 갔던 친구의 일화를 표현했다.

그날은 여동생의 생일이었다. 스무살 연주(필명)는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자식 생일에도 어김없이 이어지던 부모의 다툼 소리를 피하고 싶었다. 꽤 근사한 일식당에 앉았다. 얼마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아버님이 사람을 때렸어요.”

부랴부랴 달려간 경찰서. “어머니는 어떻게 되셨나요?” “사망하셨습니다.” 연주는 아버지가 흉기로 어머니와, 범행을 말리던 친척까지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게 여동생의 생일은 엄마와 친척의 기일이자, 아버지의 수감일, 연주와 여동생이 ‘수용자의 자녀’가 된 날이 되었다.

“그날을 상자에 넣어두고만 있었는데 사건에 관해 얘기하면서 내가 모르고 있던 감정을 다시 알아가고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카페. 연주는 낮은 목소리로 책을 낸 소회를 밝혔다. 연주처럼 어느 날 갑자기 ‘수용자 자녀’라는 정체성을 받아 든 청년 10명이 공동 집필한 책 ‘기억함의 용기’(비비투) 출간 기념 북토크 자리였다.

연주는 책에서 그날을 “나침반이 뒤틀린” 날이라고 표현했다. 방향성과 시간성의 완전한 상실. “그때 경찰서가 아니라 병원으로 달려갔더라면 어머니를 한번이라도 더 만나 볼 수 있었을까?” 연주의 시간은 과거를 맴돌았지만 세상의 시간은 무심히 흘렀다. 장례, 상속, 동생 양육까지 연주가 책임져야 할 일들이 줄줄이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기댈 수 없었다. (…) 울지 못했다. 내가 우는 순간 억누르고 있는 그 많은 감정이 나를 붙잡아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연주는 “나를 짓누른 것도, 일으킨 것도 ‘책임감’이었다”고 썼다. “뭐든 끝까지 해야만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평범하고 일상적인 하루를 내가 진심으로 보고 느끼고 맛봤다면 나는 이것 또한 치열하고 책임감 있게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때는 “부모님이 용돈만 주고 신경 쓰지 않기를” 바랐던 철없는 소년은 어느덧 ‘책임감’을 자신의 언어로 재정의할 정도로 깊고 단단해졌다. 그는 여동생 돌보며 물리치료사를 준비하고 있다.

‘기억함의 용기’ 출간 기념 북토크. 집필 과정에 함께 했던 이지선 이화여대 교수(가운데)가 저자들에게 소회를 묻고 있다. ⓒ이요셉 작가

이 책은 아동복지실천회 ‘세움’의 아이디어로 기획됐다. 세움은 수용자 자녀를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국내 유일 비영리 단체다. 2015년 설립돼 올해 만 10년을 맞았다. 2021년부터는 ‘청년 당사자 자문단’을 구성해 수용자 자녀의 이야기를 책(에세이), 웹툰, 미술,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전하고 있다. “글쓰기는 유독 어려워요. ‘언어화’한다는 것은 그때의 기억과 감정을 끌어내야 하는 과정이거든요. 많은 아이들이 처음에 글로 써보라고 하면 ‘기억 안 나요’라고 해요. 기억나지 않는 게 아니라 너무 깊이 묻어둔 거예요. 일단 생존해야 하니까요. 글을 쓰면서 왜 이 기억을 직면하고, 재해석해야 하는지 스스로 느끼도록 안내해요. 처음엔 팩트만 줄줄이 나열하는데요, 결국 글을 쓰려면 팩트가 아니라 그때의 나를 직면해야 한다는 걸 이해하고 봉인했던 상자를 스스로 열어요.” 이 사업 담당자인 최윤주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이 프로젝트에 지원한 청년들은 출판사 편집자, 글쓰기 강사로부터 책 쓰기에 대한 기본 사항을 안내받은 다음, 2박 3일 동안의 연수에서 초고 작성, 집단 퇴고를 한 뒤 출간 직전까지 ‘n(엔)차 퇴고’를 거듭했다. “작성자가 초고를 소리 내 읽어요. ‘이 표현의 명확한 의미는 뭐야?’ ‘이때는 어떤 감정이 들었어?’ 동료로부터 조심스러운 질문을 받으면서 그 시절을 더듬어 가요.” 이 과정에서 과호흡이 와 주저앉거나, 몸이 아파 응급실을 다녀온 이도 있다. 실제 이날 북토크에서 ‘작가’ 10인은 당시를 회고하며 “토할 것 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과정에 함께했던 이지선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지선아 사랑해’, ‘꽤 괜찮은 해피엔딩’ 지은이)는 북토크에서 “내가 이렇게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봐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내면 깊숙한 이야기를 끌어올려서 공유하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기억함의 용기 l 성민 외 9인 지음, 비비투, 1만8500원

이렇게 탄생한 책에는 부모의 갑작스러운 수감으로 생겨난 ‘수용자 자녀’라는 정체성을 소화시키려 애썼던 10인의 분투가 담겼다. 여느 나라보다 가족주의가 강고한 사회. 부모의 죄는 아이의 일상에도 사슬을 채웠다. 한국인이 신봉하는 ‘권선징악’과 ‘가족주의’의 조합은 수용자 자녀도 일말의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암묵적 편견으로 작동했다. 그래서인지 10인의 글 어디에도 친한 친구에게 털어놓고 위로받았다는 내용이 없다. 그 시절은 그저 침묵이었다. 글쓰기는 그렇게 급속냉동했던 시절에 온수를 흘리는 일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수감된 지온(필명)은 우등생이라는 정체성으로 수용자 자녀라는 정체성을 덮으려 했다. “성적은 명확한 수치를 보여 주는 만큼 나의 가치를 높이는 데 유용한 수단”이었기에 “아득바득 공부했다”. “성적표를 볼 때마다 나는 부모와 전혀 다른 사람임을, 결코 부모로부터 정의될 수 없는 존재임을 스스로 되새겼다. (…) 하지만 아빠와의 면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계속 말해 줬다. ‘맞다, 우리 아빠 감옥에 있지. 나 그런 사람의 딸이지.’ 지온은 아빠의 수감을 “현재완료 시점”에 빗대 표현한다. 과거의 사건이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시제. “‘수용자 자녀’라는 점은 내가 찍은 점이 아니었고, 그래서 대차게 구석에 박아 두고 외면했다.”

아빠가 찍은 검은 점을 방치하던 그가 이 점을 직면한 건 세움에서 걸려 온 전화 때문이었다. 지온은 이날 북토크 이후 이어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고등학생 때 세움에서 책과 노트가 담긴 선물 꾸러미를 받았던 기억이 산뜻하게 남아 있었는데, 어느 날 청년 당사자 자문단에 합류하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다”며 “처음엔 아빠의 꼬리표가 아직도 나를 괴롭히는구나 싶어 불쾌했는데, 생각해 보니 일종의 커리어가 될 수도 있겠다, 억지로 외부 활동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겠다 싶어서 응했다”고 했다.

순수하지만은 않은 의도로 시작한 글쓰기. 그렇게 마주한 검은 점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지온은 아빠의 출소 이후 오히려 더 황폐해졌던 마음에 수없이 물음표를 던졌다. “사실 수감 이전에도 가까운 부녀 사이는 아니어서, 아빠가 수감됐을 때도 ‘아빠 인생이지 뭐’ 하며 아빠를 부정하는 방법으로 그 시절을 버텼어요. 출소 이후에도 ‘겉치레식으로 인사나 잘해드리자’는 마음으로 대했고요. 하지만 자문단에 참여하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인생에 한번은 아빠를, 아빠와의 관계를 대면하고 해석하려는 시도를 해봐야 한다는 걸요.”

글을 쓰며 유아기부터 아빠와 나를 훑었다. 우월감과 자기연민을 널뛰던 자아 인식이 아빠와의 관계에서 영향받았음을 확인했다. 부모의 수감을 겪고도 누구보다 바르고 단단하게 성장한 다른 수용자 자녀들을 만나면서 “나는 그 자체로 귀한 존재”임을 받아들였다.

부녀 관계는 여전히 등락을 거듭하지만, 지온은 더는 이를 외면하지 않는다. “저 책 썼는데, 주면 보실래요?” “응.” “집 우편함에 있으니까 보세요.” 둘의 대화는 영혼 없는 친절에서 영혼 담은 딱딱함으로 변했다. 아빠의 수감 사실을 가까운 지인들에게 털어놓은 것도 큰 변화다. 지난해 세움에서 개최한 전시회에 참여한 지온은 처음으로 친구에게 자신이 수용자 자녀라는 사실을 말했다. 이날 북토크에서 지온은 또박또박 말했다. “수용자와 수용자 자녀는 다릅니다. 아버지가 대학교수라고 해서 내가 대학교수는 아니잖아요.”

‘기억함의 용기’ 출간에 참여한 청년이 북토크를 찾은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이요셉 작가

다원(필명)은 중학교 3학년 때 아빠의 수감을 짐작했다. 엄마 화장대 위 놓인 흰 편지봉투. 겉면에는 ‘서울구치소’라고 적혀 있었다. 아빠의 수감은 여러 변화를 동반했다. 아빠의 부재, 국제학교에서 일반 학교로의 전학, 생애 첫 아르바이트, 밀려가는 학원비….

그 시절은 기억이 없다. 표현되지 못하면 기억은 사라지는 법이다. “살기 위해 일부러 무감각해졌던 것 같아요. 글을 쓰기 위해 마치 추리하는 것처럼 특정 현장에 저를 다시 대입하고, 역사를 해석하듯이 제 감정을 재해석했어요. 쓰고 나니까요? ‘이래서 사람들이 일기를 쓰나’ 싶더라고요. 활자화된 그 시절을 되풀이해 읽다 보면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미술을 전공한 다원은 이 책의 일러스트를 모두 그리기도 했다. “수용자 자녀가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어떻게 버텼는지, ‘수용자 자녀’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다원의 말처럼, 수용자 자녀는 부모의 부재와 이로 인한 별거·이혼, 가정 경제 악화, 내적 고립 등을 연쇄적으로 겪는다. 하나만 겪어도 휘청거릴 사건을, 마음이 말랑한 청소년기에 복합적으로 겪어내는 것이다. 실제 이 책에는 엄마가 경찰에 연행되는 모습을 목격한 이후 문 두드리는 소리만 들리면 불안감에 손가락을 빨았던 경험, 막 글자를 읽기 시작한 막냇동생이 ‘교도소’라는 표지판을 읽을 수 없도록 눈을 가리고 아빠를 면회 간 일화, 아빠의 수감을 소화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끝내 자신도 소년분류심사원에 수감됐던 일 등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교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같은 진로를 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착실히 일상을 살아낸다. 자신의 정체성을 수없이 검토하며 끝내 온당치 않은 수식(‘범죄자의 자식’)을 발라낸다. ‘수용자 자녀’라는 낙인과 배제는 이 훌륭한 청년들이 그 시간을 통과하며 키운 마음의 힘을 무참히 지워버린다. 이들의 이야기가 사회적 자원이 될 기회를 차단해버린다.

지난해 기준 미성년 수용자 자녀는 1만2천여명에 이른다. “전체적으로 아동 인구가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수용자 자녀의 수는 큰 변화가 없다, 주목할 점은 6살 미만과 초등학교 재학 중인 아동의 비중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 생애 초기 부모의 부재로 인한 아동들의 어려움이 커질 수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수용자 자녀 지원체계 마련을 위한 법제 연구’, 이지선·배영미·전민경·전규해, 2025) 이 보고서는 이렇게 끝맺는다. “수용자 자녀는 사회적 낙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회적 지원을 요청하기에 두려움을 갖고 있으며, 공적 지원체계에 의해 발굴 내지 의뢰되는 비율 또한 매우 낮았고, 지역사회 보호 체계 내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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