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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크뉴스 › [단독] 기관사 전직했는데 9년 후 혈액암 진단... 17년간 벤젠 노출 영향?

랭크뉴스 | 2025.06.19 10:30:03 |
95년 입사자, 17년 간 전동차 정비
2012년 기관사 전직, 21년 '림프종' 진단
전문가 "잠복기 길어 뒤늦게 발병해
직업병인지 모르거나 본인 탓하기도"
"공사, 보건안전·핵심 장비 투자 인색"
지난 4월 29일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시민이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찍고 있다. 뉴시스


서울지하철 1~8호선 운영기관 서울교통공사에서 전동차 정비 업무를 맡았던 노동자 5명이 추가로 혈액암에 걸린 사실이 실태조사(6월 19일자 12면 보도)로 드러났는데, 그중에는 다른 업무로 직무를 바꾸고 한참 후 발병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기관사로 근무하고 있는 C(56)씨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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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811140005966)

19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1995년 입사한 C씨는 수서차량사업소로 임용돼 17년간 경정비 업무를 맡다 2012년 전동차를 운행하는 기관사로 직종을 전환했다. 그 후 9년이 지난 2021년에야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흔히 '검수'라 불리는 경정비 업무는 운행을 마친 후 차량기지로 들어온 전동차의 출입문 상태, 전자제어 등 주로 외관을 점검하고, 이상이 있는 기계설비나 부품을 수리하는 업무다. 수년간 운행한 전동차를 분해해 주요 기관과 부품을 깨끗히 세척하고, 수선(용접·연삭 등)해 페인트칠(도장)까지 마치는 '중정비' 업무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근무 방식도 중정비 노동자들은 통상 근무(오전 9시~오후 6시)하고, 매일 모든 전동차를 밤낮없이 점검수리하는 경정비 노동자들은 4조(주간 야간 비번 휴무) 2교대로 근무한다.

"공사, 노동자 보건안전 소홀 지적"



다만 실태조사를 실시한 한국방송통신대 산학협력단이 혈액암 발병 주요 인자로 추정한 벤젠에 노출된 환경은 마찬가지다. 경정비 노동자도 기름기가 있는 부품·장치를 매끄럽게 하는 윤활제, 철재에 녹이 스는 것을 방지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방청(防靑)도료 등 벤젠이 함유된 화학물질을 다뤄서다. C씨처럼 더 이상 유해 화학물질을 다루지 않더라도 과거 장기간 노출됐다면 인체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혈액암은 종류에 따라 1년 이내(백혈병)에 발병할 수도, 10년 이상(림프종) 지난 뒤 증상이 나타날 정도로 잠복기가 달라 주의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혈액암 실태조사 연구책임자인 박동욱 방송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노동자 중에서는 뒤늦게 진단 받은 질병이 직업병인지 모르거나 개인적인 탓으로 돌린 사람도 적지 않다"며 "수십 년 일했던 환경과 연관지어 발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의외로 적다"고 말했다. 이어 "추적 관찰이 중요하나 퇴직자는 추적이 어렵다"며 "65세 이상 암 발병률이 높아지는 것도 크고 작게 직업과 연관돼 있다"고 덧붙였다. 종합대책을 마련 중인 공사는 벤젠에 노출된 노동자들을 6개월마다 검진받도록 할 방침이나 공사가 노동자 보건안전에 소홀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도봉차량기지 세척 장비 67% 사용 연한 넘겨



정비 노동자들이 전동차 주요 기관 및 부품을 분해해 세척할 때 사용하는 각종 세척기 중 3분의 1이 노후한 사실도 드러났다. 실태조사 연구진이 비교적 규모가 큰 주요 차량기지 5곳(군자·신정·지축·고덕·도봉)을 점검한 결과, 보유 세척기 53대 중 사용 연한을 초과한 세척기가 34%(18대)나 됐다.

특히 도봉차량기지는 9대의 세척기 중 6대(66.7%)가 사용 연한을 넘길 정도로 노후화가 심각했고, 고덕차량기지도 사용 연한 초과 비율이 40%(15대 중 6대)에 달했다. 나머지 차량기지에서 사용 연한을 초과한 세척기는 지축 3대(총 15대, 초과비율 20%), 군자 2대(총 6대, 초과비율 33%), 신정 1대(총 8대, 초과비율 12.5%)였다.

세척 성능이 유지된다면 세척기 유지보수를 철저히 해 더 오래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사용 연한 초과 비율이 70%에 육박한 차량기지가 있을 정도로 공사가 노동자 보건안전과 직결된 핵심 장비 투자에 인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사 관계자는 "보통 세척기 사용 연한은 20년이고, 상태에 따라 30년가량 사용하는 장비도 있어 고장나면 수리비가 더 많이 들어가기도 한다"면서도 "지난해 고덕에 부품세척기 2대를 새로 설치했고, 올해는 도봉에 부품세척기 2대를 추가 설치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문제는 예산이다. 사용 연한을 초과한 세척기를 새로 마련하려 해도 차량기지당 수십억 원이 소요될 수도 있다. 그러나 누적적자가 7조 원에 달할 정도로 만성 경영난이 심각한 공사 입장에서는 언감생심이다. 국민의힘 소속 이경숙 서울시의회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요금을 올려도 무임승차·기후동행카드·15분 재승차 등의 영향으로 공사의 올해 운수수입 손실은 5,328억 원으로 추산된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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