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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이기평 소방청 주임. 소방청 제공

소방관 7년차인 이기평(39) 소방청 주임은 지난 13일 오후 10시50분쯤 다른 소방대원들 4명과 미국 덴버 인근 I-76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미국 콜로라도에서 급류구조 훈련과정을 마친 뒤 저녁을 먹고 숙소로 귀가하던 길이었다.

운전자이던 이 주임 시야에 150m 앞에서 회색 차량 한 대와 빨간색 픽업 트럭이 서로 충돌하는 모습이 보였다. 회색 차량이 가드레일쪽으로 미끄러지고, 빨간색 픽업트럭이 공중에서 1.5m가량 붕 뜨더니 이 주임과 소방대원들을 태운 렌터카로 굴러오기 시작했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량은 계속 미끄러졌다. 사고를 피할 수는 없겠구나 생각하던 순간 기적처럼 빨간색 픽업트럭이 소방대원들을 태운 차량 약 20㎝ 앞에서 멈췄다. 안도의 한숨을 쉼과 동시에 소방대원 5명은 일사분란하게 차량 밖으로 뛰쳐나갔다. 소방청 중앙119구조본부 소속인 이 주임과 편영범·조인성 소방장, 김영진 소방교, 그리고 전남소방본부 소속 김구현 소방위였다.

사고차량의 모습. 소방청 제공

이들의 대처는 빠르고 정확했다. 왕복 6차선의 고속도로에서는 2차 사고 위험이 컸다. 대원 중 2명은 후방에서 오는 차량을 통제했다. 경광봉 같은 기본적인 도구조차 없던 상황에서 이들은 스마트폰 조명을 흔들면서 서행을 요청했다. 911 신고도 잊지 않았다.

남은 대원 3명은 차량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무도 없어요?(Is anybody here?)”라고 외치자 차량 안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국인 여성이 힘겹게 차 안에는 2명이 있다고 답했다. 사고의 여파로 문은 열리지 않았지만 차량 후방 유리창이 모두 깨져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출혈이 심한 한 미국인 남성이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대원들은 바로 환자를 빼내야한다고 판단했지만, 다른 미국인 목격자가 이들을 저지했다. 교통사고의 경우 경추 손상 등의 우려가 있어서 환자를 건들면 안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소방대원들은 “우리는 한국에서 온 소방구조대원들이다. 지금 중요한 건 경추 손상보다 심폐소생술(CPR)”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교통사고에서 소방대원들은 넥카라 같은 기구로 환자를 고정한 뒤 사고차량에서 빼낸다. 장비가 없던 대원들은 손으로 직접 경추와 머리 등을 고정했다. 한 명은 어깨와 팔을, 다른 한 명은 벨트를 잡는 식으로 아주 천천히 환자를 차량에서 꺼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다발성 골절이 심각했다. 호흡이나 맥박도 약했다. CPR을 하던 이 주임은 다른 대원에게 기도 확보를 부탁했다. 이 주임의 귀로는 “조금 더 할 수 있어! 힘을 내!”라는 미국인 목격자들의 응원 소리가 들렸다. 약 15분 뒤 911이 도착했고 대원들은 목격자 진술과 연락처 등을 전달한 뒤 현장을 떠났다.

이 주임은 1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그 현장에 닥치면 어느 나라 어떤 제복공무원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우리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런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움직였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아담스 소방서 페이스북에 올라온 한국 소방대원들의 대처에 대한 글. 페이스북 캡처

소방 대원들의 모습. 페이스북 캡처

이들의 사연은 미국 아담스소방서가 페이스북에 대원들의 사연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아담스소방서 관계자는 “대원들은 우리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번갈아 가면서 가슴 압박을 계속했다”며 “환자의 생명은 구하지 못했지만, 이 소방대원들의 신속한 대응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썼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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