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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경영자 일론 머스크와(왼쪽),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오른쪽)

10년 전 영국 잉글랜드 중북부의 사우스요크셔에 있는 한적한 도시, '로더럼'(Rotherham) 이라는 지역에서 충격적인 보고서가 하나 등장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정부의 수석 사회복지 자문관이던 렉시스 제이 박사가 로더럼 시의회의 의뢰를 받아 만든 '제이 보고서'로, 1997년부터 2013년까지 약 16년간 로더럼에서 발생한 대규모 아동 성착취의 실태가 담겼습니다

■ 영국을 뒤흔든 '아동 성착취 스캔들'

주로 파키스탄 남성들로 구성된 '그루밍 갱'은 로더럼의 미성년자 소녀들에게 접근해 마약과 술, 폭력을 이용해 길들이고 조직적인 성착취와 성매매로 내몰았습니다. 피해 규모는 1,400명으로 추산됩니다.

범죄의 규모나 끔찍함을 넘어, 지역 사회가 침묵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피해 아동들은 수시로 수사 당국에 신고하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묵살당했습니다. 경찰과 지자체가 이를 인지하고도 이를 덮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 수사 당국, 국민적 비난 피하기 위해 '사건 묵인'…유사 범죄 사례 급증

왜 경찰과 당국이 이를 덮으려 했는지는 그다음 해 나온 후속 보고서에서 밝혀졌습니다.

▲먼저 아시아계 남성들로 이뤄진 범죄인만큼, 이들을 검거하면 영국 내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비난을 피하려던 게 가장 컸습니다. ▲동시에 아동 학대 전문가들이 당시 '그루밍'의 미묘한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피해 여아들이 가해자들을 두둔하는 것처럼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아동 보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데 비해, 관련 기관의 협업과 공급은 현저히 적었다는 것도 함께 지적됐습니다. ▲수사 당국은 다른 범죄부터 수사해야 한다고 외면했고, 의회는 더 시급한 현안부터 처리해야 한다고 묵살했습니다.

로더럼 스캔들은 불씨가 되어 영국 전역에 숨겨져 있던 유사 사건들을 터뜨렸습니다. 로치데일, 텔퍼드, 더비, 콘월 등 영국 곳곳에서 로더럼과 똑같은 '그루밍 갱'에 의한 아동 성착취 사례와 함께, 경찰과 사회 복지 서비스 등 공공 기관의 총체적인 직무유기와 은폐가 드러났습니다. 영국 정부는 이 사건들이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국 아동 보호 시스템 전반에 걸친 구조적 실패의 결과임을 확인했습니다.

이 사건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드러난 건 올해 초입니다. 테슬라 경영자로 알려진 일론 머스크가 불법 이민자 문제에 보수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영국의 '그루밍 갱' 수사가 진전이 없다고 영국 정부를 압박했기 때문입니다.

■ 영국, 올해 들어서야 대대적 수사…"늦었지만 물 샐 틈 없는 조치"

그리고 지난 14일, 키어 스타머 총리는 대대적인 '아동 성착취'와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 '그루밍 갱' 태스크포스에 인력과 지원을 강화하고 ▲ 인공지능을 이용한 온라인 성범죄를 처벌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이미 성인이 된 피해자를 위한 지원 기금을 2배로 늘렸습니다. ▲등록된 성범죄자가 이름을 바꾸는 걸 제한하고 ▲독립 아동 인신매매 보호자 제도를 만들고 ▲ 아동과 함께 일하는 모든 개인에게 아동 성학대 인지 시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부과하고 ▲ 피해자 아동이 민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3년 간의 소멸 시효를 폐지했습니다.

늦었지만, 물 샐 틈 없는 후속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 "아동성범죄 가해자 70%는 친밀한 지인"

비단 영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유니세프와 유럽 의회에 따르면, 유럽 아동 5명 중 1명은 '어떤 형태로든' 성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 가운데 70%~85%는 친밀한 가해자로부터 발생했습니다. 친족과 이웃, 지인 등이 범인으로 검거됐습니다. 인신매매 피해자는 한 해 만 명이 넘고, 이 가운데 아동은 60%를 차지했습니다.

온라인 성착취도 급증했습니다. 2023년, 유럽연합에서는 130만 건 이상의 아동 성 학대 보고서와 340만 개 이상의 착취 이미지와 비디오가 확인됐습니다. 인공지능이 등장한 이후로는, 인공지능이 생성한 성 학대 이미지가 380% 늘었습니다.

■ "한국은 아동성범죄에 어떤 조치?"

유럽의 성범죄를 비판하고 취재하기 위해 유럽의 아동 전문가에게 질의를 넣자, 흥미로운 답을 보내왔습니다. 아동성범죄와 디지털 성범죄의 '선두주자'인 한국에선, 정부가 어떻게 후속 조치를 하고 있느냐고 반문한 겁니다. 속상한 마음에 주요 유럽 외신들을 찾아보았더니, 한국은 'N번방' 등 아동 성 착취물 제작과 유포의 주요 허브라는 비판 기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가해자의 형량이 턱없이 낮고,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낮은 인권 의식이 동시에 지적됐습니다.

전문가는 "성범죄에 대한 구조적인 침묵을 깬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오히려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리곤 "낙담 말라"며,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노력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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