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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근 칼럼니스트

국민의힘은 대선 뒤 당을 재건해서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집중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이재명을 선택하지 않은 시민 절반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이재명 정부에 상당한 긴장감을 주었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그러지 않았고, 세상은 더 이상 이 ‘길 잃은 야당’이 하는 일에 주목하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발언권을 잃었다.

이재명에게 적절한 자극을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여당도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하나의 덩어리로 움직이는 통일체다. 외부 충격에 일정한 물리적 반응만 할 줄 아는, 내부 구조 없는 당구공이다. 원내대표 경선을 통해 확인됐듯이 민주당은 스스로를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구현하는 도구로 인식한다. 도구는 하나의 의지, 하나의 방향만 갖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재명뿐이다. 믿을 사람은 오직 그 하나뿐이다. 그가 잘하면 우리 모두 잘되지만, 그가 잘못하면 우리 모두 망한다. 그가 하려는 모든 일이 옳고, 다 잘 풀려나가야 한다. 이건 도박이다.

다행히 그에게는 문제를 처리할 줄 아는 행정가적인 면모가 있다. 신속한 대북방송 중단 결정으로 접경지 주민의 삶을 정상화한 것처럼 현안을 잘 해결해나갈 것 같다는 기대감을 준다. 능력주의 인사 방침, 실용주의도 그 실체가 무엇이든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의 행정가적 자질과 실용주의도 이재명 정부에 드리워진 불안의 그림자를 지우지는 못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제임스 매디슨이 야망을 야망으로 억제하는 상호 견제의 원리를 민주주의 국가의 기초로 삼은 것도 그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통치자 1인의 능력과 선의에 기반하지 않는다.

탄핵당한 박근혜·윤석열이라고 왜 능력과 선의가 없었겠는가? 권력을 갖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자신의 능력과 선의로 존중받는 인물이었다. 그들을 망친 것은 그 능력과 선의다. 권력을 쥔 그들은 자신의 능력이 아무런 장애 없이 펼쳐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선의는 의심받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다. 결국, 두 사람이 견제와 감시망을 찢어버렸을 때 어떻게 됐는지 우리는 잘 안다.

이제 이재명 차례다. 이재명이 만에 하나 실수할 경우 충격을 흡수할 어떤 장치도 보이지 않는다. 위험 신호가 켜졌다는 뜻이다. 새 정부가 막 출범한 마당이고 이재명이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내디디고 있어 신호가 감지되지 않을 뿐이다. 이재명에게도 자신감이 차오르고, 스스로 확신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실패의 구덩이는 그때 커다란 입을 벌린다.

자동차 가속기를 밟을 수 있는 것은 브레이크가 확실히 작동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브레이크를 신뢰할 수 없다면 가속기를 밟을 수 없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원한다면 본격 출발하기 전에 제동, 안전, 복원 장치에 이상이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그런 준비 없는 출발은 둘 중 하나로 귀결된다. 너무 조심스러워진 나머지 개혁을 포기한 채 관료 조직의 소극적, 수세적 국정에 끌려다니다 무능한 정부로 끝나거나, 섣부른 개혁으로 또 하나의 실패한 정부로 기록되는 것이다.

유기체는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장기가 손상돼도 다른 장기가 그 기능을 대신하는 보상 작용을 한다. 정부도 흥망성쇠 하는 유기체다. 지금 보이지 않는 견제·균형 기능, 되찾아야 한다. 바람직하기로는 민주당이 그런 조직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전당대회 때 충성파 지도부가 아닌, 정부를 견인하는 지도부를 선출해야 한다. 그게 안 된다면 정부 내 중립적 기관들을 활성화하는 방법이 있다. 대통령실 특별감찰관을 공약대로 임명하고 법무부, 감사원, 방송통신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검찰, 경찰에 충성파 아닌 중립 정신을 지킬 인물을 임명하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쉬웠으면 역대 대통령이 못했을 리 없다. 박근혜는 특별감찰관 때문에 적잖은 타격을 받았고 그걸 지켜본 문재인·윤석열 모두 임명하지 않았다. 감시는 그만큼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그만한 보상을 해준다. 충성파 배치로 위험 신호를 발신하지 못해 정권이 붕괴하는 비용보다 사전 경보로 얻는 예방 효과가 더 크다. 실용주의는 문제 해결에 쓸모 있는 것을 진리로 여긴다.

한 예로 감사원은 과거 정부 캐기를 통해 현직 정부의 자기 교정 기회를 박탈해온 대표적인 문제 조직이다. 이재명이 자기 신상과 관련한 법안 처리의 자제를 민주당에 당부했듯이, 감사원이 본연의 기능으로 돌아와 현 정부 감시에 집중할 것을 호소하면 어떨까? 좋은 출발이 될 것이다.

이대근 칼럼니스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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