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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경제는 정치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2014년 펴낸 책의 제목입니다. 경제 정책을 둘러싼 모든 결정의 이면엔 보이든 보이지 않든 이해관계자들의 힘겨루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의 표현입니다. 그의 말대로 경제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숫자와 그래프 이면에는 욕망이 있고, 이해가 있으며, 결국은 권력이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시대 많은 이들이 이 현실을 외면했습니다. 경제는 정치로부터 독립된 질서라며 시장은 스스로 작동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신화였습니다. 이 신화를 단번에 무너뜨린 것은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이었습니다. 그의 정치에서 경제는 도구가 아니라 목적이었고, 경제의 영역 한가운데 정치를 배치했습니다. 자유무역이라는 세계화 시대의 경제적 균형도 파괴됐습니다.

지난 6월 3일 치러진 제21대 대통령선거 역시 경제와 정치가 분리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서울 수도권의 아파트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아파트 평당가가 가장 낮은 도봉, 금천, 강북, 중랑, 노원, 구로 등 6개 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모두 50%를 웃도는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서울 전체 평균 득표율(약 47%)보다도 높았습니다. 성북, 강서, 성동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거나 양극화가 심한 지역에서도 50% 이상 득표했습니다. 반면 평당가가 가장 높은 강남과 서초에서는 각각 33%, 32% 수준을, 송파와 용산에서는 40% 초반에 그쳤습니다.

아파트값과 민주당 지지율은 완벽한 역의 관계를 보였습니다. 계급이 아니라 아파트 가격이 투표 성향을 결정하는 ‘아파트 정치’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집은 말이 없지만 표를 던진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 사회의 아이러니가 다시 고개를 듭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그의 지지율이 낮았던 지역의 아파트값이 급등하고 있습니다. 진보 정부에 따라붙는 ‘아파트값 급등’의 트라우마가 재현될 조짐입니다. 서초·강남·용산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전고점을 돌파했고, 마포에선 매물조차 사라졌다고 합니다.

시장의 관심은 이 정부가 언제 어떤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것인지로 쏠리고 있습니다. 7월말 설, 9월 설이 떠돌고 있습니다. 시장 분위기도 상승을 향하고 있습니다. 기준금리는 인하 기조로 돌아섰고 정부는 경기 회복을 위해 유동성 공급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풀린 돈은 결국 부동산 등 자산 시장을 들썩이게 할 것입니다. 공급은 더 문제입니다. 내년 서울의 아파트 공급 물량은 1만 가구에도 미치지 못할 전망입니다. 여기에 수요자들의 조급한 심리가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부가 급하게 대책을 내놓을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이 대통령은 대선 직전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이 보이는 아파트를 50억, 아니 500억 주고 사겠다는 사람을 어떻게 막느냐. 세금으로도 안 됐다.” 이는 가격 상승을 일정 부분 용인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 파편적 대책이 나올 때마다 시장은 그것을 재료로 더욱 과열됐던 기억이 이 대통령에게는 생생할 것입니다. 부동산 대책이 효과를 내려면 공급, 금리, 세금이 하나의 패키지로 움직이며 시장 전체 흐름을 바꿀 만큼의 충격을 줘야 합니다. 달리는 차를 멈추려 할 경우 속도가 줄어들기를 기다리지 않고 덤볐다가 부상이 더 커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원래 공약대로 정교한 공급 전략과 서민 주거 대책을 우선 정비하는 접근을 하지 않을까 합니다. 또 부동산 시장에 있는 자금을 주식시장으로 돌리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기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 상법 개정 등이 그것입니다.

다만 상법 개정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과거 “가족 회사와 비상장 회사까지 이사의 의무를 강화하는 법을 적용할 필요가 있겠냐”며 자본시장법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야당과 협의해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는 길을 택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겁니다.

기업들의 우려를 일정 부분 잠재우고, 자신이 내걸었던 협치의 그림을 보여줌으로써 정치적 실익도 챙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기업을 경제 회복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개혁이 좌초하는 것은 전선을 너무 넓게 펼친 결과라는 것이 우리 정치사의 교훈입니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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