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부 인력 81명 감축, 회담본부도 통폐합
조직 비전 못 느끼고 떠난 직원들도 많아
이재명 '남북대화' 강조해 기대감도 커져
'대화' 당장 없어도 통일부 고유의 역할 필요
정권 떠나 지지받으려면 국민 신뢰 선행되어야
조직 비전 못 느끼고 떠난 직원들도 많아
이재명 '남북대화' 강조해 기대감도 커져
'대화' 당장 없어도 통일부 고유의 역할 필요
정권 떠나 지지받으려면 국민 신뢰 선행되어야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정부서울청사 내 통일부 사무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가장 큰 피해자는 통일부였습니다.” 통일부 당국자
통일부 당국자 A씨는 새 정부가 출범한 직후 본보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정부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지만 실제로 조직과 인력이 가장 많이 감축된 부처는 '통일부'였다는 것입니다.
총 인원 600명 중 81명이 감축됐고 '남북대화'의 상징인 '남북회담본부' 역시 통폐합됐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통일부를 두고 "대북지원부 같다"고 비난한 이후 남북 교류에 대한 기능은 사라지고 '북한 인권'만 외치는 부처가 됐습니다. 조직의 비전이 사라지다 보니 직원들도 하나둘 떠났습니다.
특히 젊은 사무관들, 현장을 부지런히 뛰어다녔던 '주무관'들도 통일부를 떠났습니다.
서울에 있는 부처가 아니었다면 아무도 오지 않았을 것이란 자조적 목소리가 나올 정도입니다. 그동안 수차례 남북회담을 진행할 때마다 실무를 맡으며 반세기 넘는 분단의 역사 속에서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졌던 A씨도 무력감에 빠진 날도 많았다고 합니다.1969년 국토통일원으로 시작한 통일부는 노태우 정부 당시에는 통일원 장관이 부총리 직함을 갖는 등 전성기를 보냈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도 통일부 장관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그 사이 남북정상회담이 두 차례 열렸고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으며 개성공단이 만들어졌습니다. 냉전이 끝난 후 남북관계도 해빙기에 접어들며 통일부의 역할은 커졌고 통일부 장관 역시 정권의 실세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통일부의 운명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정부론'에 집착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통일부를 폐지하거나 외교통상부 산하로 두려고 했습니다. 금강산 피격 사건과 북한 핵개발 등으로 남북관계가 급격히 얼어붙으며 통일부 무용론은 더욱 커졌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통일부의 기능이 일정 부분 회복되긴 했지만 국가안보실이 신설되며 '대화' 기능을 청와대가 가져갔습니다. 남북관계가 좋아져도 통일부는 과거의 위상을 회복하진 못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세 차례나 열렸던 문재인 정부에서는 통일부의 업무는 늘었지만 남북대화는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이 주도했고 통일부는 이를 지원해 주는 역할에 그쳤습니다. 유엔 대북제재로 인해 남북 간 경협 등은 준비 작업만 했고 진척되지 못했습니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후 남북관계는 다시 악화됐고 '통일부 무용론'을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져 갔습니다. 과거에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처럼 대부분 국민들은 통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통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도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자 통일부 내에서는 기대감이 엿보입니다.
특히 대북전단과 같은 문제를 '표현의 자유'라며 방치해오던 통일부는 정권이 바뀌자마자 대북 단체들에 전단 살포 중지를 요청했습니다.
바뀐 기류에 통일부가 가장 먼저 올라탄 것도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익명을 요청한 당국자는 "이재명 대통령 공약에도 '남북 교류'에 대한 내용이 많았고 유엔 제재로 경제 분야 협력은 어렵지만 이산가족 상봉이나 사회 문화 영역에서의 교류가 재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면서 "특히 북미대화가 시작된다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출범 초부터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는 등 북한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고 있습니다. 미국 역시 북한과의 친서 교류를 재개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우리가 대북 방송을 중단하자 북한도 대남 소음 방송을 중단하는 등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남북대화나 북미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한이 대남 방송을 중단한 것은 자신들 정권에 민감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대북 방송을 계속 중단시키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상황은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없는 상태로 차갑게 공존하는 것"
이라면서 "뜨겁게 대화할 필요도 없고 적대하듯 도발적인 행동을 할 필요도 없는 상태에서 러시아와 협력도 하고 무기도 개발하고 움직일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2국가'로 선언한 이상 대화가 쉽사리 재개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남한을 활용해 북미 협상을 만들려고 했던 2018년과 달리 미국과 대화하려고 한다면 언제든 직접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남북대화를 통한 실익도 없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남북대화가 성사되지 않는다면 또다시 통일부 무용론이 나올 가능성도 큽니다.
그러나 대북 전문가들은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고 북한이 통일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일수록 '통일부'가 존속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통일부'란 이름도 상징성을 생각하면 쉽게 바꿔서는 안 된다고도 합니다.
우리의 헌법 제3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적혀 있고 헌법 제4조에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통일부의 존재는 한국은 여전히 통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의지를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명분뿐 아니라 실용적으로도 통일부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통일부는 '한반도의 미래'를 준비하는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대내외 매체 등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파악하고 우리 민족 간 이질화를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회담이 없을 시기에는 '남북회담' 모의연습을 하며 북한과 대화가 급작스럽게 재개돼도 최선의 협상안, 방식 등을 준비해오고 있습니다. 과거 냉전 시기 서독 역시 동독과의 협상과 대화는 총리실이 주도했으나 '내독 관계부'가 민간 교류와 장기적 통일 정책을 집행했습니다.
통일 정책만큼은 정권과 상관없이 연속성을 가져야 합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국민들의 신뢰'입니다.
통일부는 정권의 입맛에 맞게 입장을 표변하는 모습을 보이며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북한 인권에는 눈을 감고 남북 협력에 대한 이야기만 했고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남북대화는 입에도 올리지 않고 '북한인권부'로 전락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정권이 바뀌어도 통일부가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으려면 제발
복합적인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면서
"남북대화, 북한 인권 중 경중을 따질 수는 있지만 완전히 배제해왔기 때문에 신뢰가 하락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통일부가 한반도 평화통일의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설득하는 역할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통일 비용만큼이나 분담 비용이 얼마나 큰 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사라지고 통일이 가까워지면 얻게 되는 모습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줬으면 합니다. 민족 정체성이 옅어지는 지금, 통일의 청사진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은 결국 통일부밖에 없습니다.
문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