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거래 때 업비트·빗썸 대신 바이낸스를 이용하는 강모(40)씨는 선물 투자를 주로 한다.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한 이후 해외 암호화폐 거래소로 돈을 더 보냈다. 강씨는 “주로 10배 레버리지를 걸어 투자하는데 지난달 비트코인 하락에 베팅하는 ‘숏’ 포지션을 잡았다가 2000만원을 그대로 청산당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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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에 스테이블코인 유출↑
15일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이 5대 암호화폐 거래소(업비트·빗썸·코빗·코인원·고팍스)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4월까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유출된 자금이 85조원에 달한다. 암호화폐 업계에선 대부분이 해외 암호화폐 거래소를 이용하기 위한 수요로 보고 있다. 암호화폐 선물 거래를 위해 국내에서 원화로 구매한 스테이블코인을 해외 거래소로 옮겨 사용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가격이 빠르게 오르면서 스테이블코인 유출도 급격히 늘었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3조4165억원에 그쳤던 스테이블코인 월간 유출액은 11월(7조4919억원)과 12월(12조964억원) 2배 이상 급증한 뒤 올해도 4월까지 매달 6조원 이상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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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급등에도 순유입은 미미
그러나 암호화폐 가격 급등세를 이용해 돈을 벌고자 했던 투자자가 막상 수익은 제대로 내지 못 했다.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는 해외로 나간 스테이블코인 액수보다 국내로 들어온 액수가 많긴 했지만, 순유입액(유입액-유출액)은 각각 563억원, 235억원에 그쳤다. 유출액과 비교한 순유입액은 지난해 4분기 0.002%, 올 1분기 0.0008%에 불과하다. 올 4월엔 유출액이 유입액보다 134억원(순유출액) 많았다.
해외 암호화폐 거래소에선 원화로 환전이 불가능하다. 현지 은행계좌가 있지 않은 한 출금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익을 실현하려면 국내 거래소로 다시 암호화폐를 옮겨야 한다. 이 때문에 스테이블코인 순유출은 투자자 손실, 순유입은 투자자 이익을 보통 의미한다.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는 “수익을 현금화하려면 결국 국내 거래소로 다시 유입이 이뤄져야 하므로 시차가 있긴 하더라도 순유입액이 해외에서의 투자 수익과 거의 일치한다”이라며 “지난해 10월 말 개당 7만2000달러였던 비트코인이 연말·연초 10만 달러를 넘을 정도로 급등하는 상황에서도 투자를 통한 이익이 거의 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신재민 기자
국내에선 암호화폐 선물 거래가 막혀 있는 만큼 선물 거래를 목적으로 해외로 이전하는 수요를 무작정 막긴 어렵다. 이 때문에 암호화폐에 대한 파생거래 일부 허용을 통한 제도권 편입도 검토할 때가 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합법적 틀 내에서 거래를 열어주면 투자자 보호도 가능하고, 스테이블코인 유출도 막을 수 있다는 취지다. 김재섭 의원은 “스테이블코인 유출은 단순한 투자 흐름이 아니라, 제도 부재와 규제 공백이 만든 현상”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정진호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