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부발전 감사에서 하청업무는 대상에서 ‘제외’
“권한이 없어 하청업무 감사 못해”
전문가 “원하청 교섭 법적 근거 마련해 위험성 제거해야”
“권한이 없어 하청업무 감사 못해”
전문가 “원하청 교섭 법적 근거 마련해 위험성 제거해야”
한국서부발전 전경. 강정의 기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고 김용균씨(2018년 12월), 고 김충현씨(2025년 5월) 등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가 잇달아 안전사고로 사망했다. 수년의 시차를 두고 판박이처럼 닮은 사망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 감사에서는 경미한 안전문제만 적발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원·하청이 안전과 처우 등 근로여건을 직접 협의할 수 있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11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한국서부발전의 ‘2024년 태안발전본부(태안화력발전소) 종합감사결과’를 보면 총 23건의 미흡사항이 확인됐다. 종합감사의 대상이 된 업무기간은 2022년 11월1일부터 2024년 9월30일까지로, 고 김충현씨가 근무하던 시기다.
확인된 미흡사항 중 대부분은 발전본부의 운영·유지·재무 관련 내용들이었다. 안전문제로 볼 수 있는 사항은 ‘승강기 위탁관리 대행 관리·감독 미흡’의 한건 뿐이었다. 이마저도 김충현씨 등 사망사고가 발생한 하청업무와는 무관한 내용이다.
서부발전은 특정감사를 통해 안전분야 관리실태도 점검한다. 본사와 지역본부를 대상으로 한 지난해 안전분야 특정감사에서는 6건의 지적사항이 나왔다. 6건 모두 소방·재난관리 등 관련 내용으로, 이 역시 하청업무와는 관련이 없었다.
종합하면 사망사고는 하청업무에서 발생하는데도 막상 사측이 실시하는 종합·안전감사에서는 하청업무가 감사 대상에서 빠져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고 김용균씨 사망 사고 직후인 2018년 12월17일부터 2019년 1월11일까지 태안발전본부에 대해 특별감독을 진행했을 당시에는 166건의 법 위반 정황이 쏟아진 바있다.
‘태안화력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소속 노동자들 과 유족이 3일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본사 앞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2025.06.03 /서성일 선임기자
서부발전은 “권한의 한계”라는 입장이다. 서부발전 관계자는 “제도적으로 하청에 대해선 감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사망사고 등이 발생하게 되면 경찰이나 고용노동청 등의 조사 결과에 따라 개선 조치가 나오면 이를 이행해야 하는 의무는 있다”고 밝혔다.
권영국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는 “고 김충현씨 사고는 하청 노동자들의 처우와 안전이 하청 1·2차 등 다단계 구조가 됐을 때 결국에는 부재하게 되거나 매우 형식적으로만 이뤄져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원청에 대한 감사도 물론 중요하지만, 원청의 책임감이 부재하고 사고 책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하청 노동자들의 안전이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이라고 했다.
발전업계의 경우 워낙 많은 업무를 하청주다보니 원청에서 일일이 감사를 실시하는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이에 전문가들은 원·하청간 안전, 처우 등 근로여건과 관련한 협의가 가능하도록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원·하청 교섭의무를 부여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이두규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하청 노동자들의 안전과 고용 안정, 임금 등 처우를 현실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제도가 교섭”이라며 “결국 하청 노동자들이 안전하지 않다고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점들을 직접 원청에 시정 요구를 할 수 없다면 위험성은 영원히 제거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 대표는 “현재 하청 노동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기업별 단위 교섭만이 허용되고 있어 하청 노동자에 대한 안전 대책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노란봉투법 제정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