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이 새로운 핵시설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핵 능력 증강을 위해 영변을 중심으로 ‘핵시설 콤플렉스(복합단지)’를 만드는 것으로 보이는데, 북한이 핵 개발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 새 정부의 북핵 해법 역시 난관에 맞닥뜨리게 될 전망이다.
IAEA에 따르면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9일(현지시간) 이사회에 “IAEA는 영변에서 북한이 새로 건설하고 있는 건물을 주시하고 있으며, 이는 크기와 특징 면에서 강선 농축시설과 유사하다”고 보고했다.
강선은 영변 핵시설 다음으로 큰 북한의 핵 개발 거점이다. 북한이 보유한 핵시설은 영변과 강선 외에는 위치나 구조 등이 공식적으로 정확히 확인된 적이 없다.
그로시 총장이 이날 언급한 새로운 건물이 가동된다면 실체가 파악되는 세 번째 핵시설이 되는 셈이다. 앞서 2019년 2월 북·미 정상 간 ‘하노이 노 딜’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의 핵시설을 5곳으로 언급했다.
특히 강선에는 핵탄두를 만드는 데 쓰이는 고농축우라늄(HEU) 제조시설이 있다. ‘강선급’이라는 새로운 핵시설 역시 상당한 양의 HEU를 농축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로시 총장은 또 “영변의 5메가와트(㎿e) 원자로가 현재 일곱 번째 주기에서 계속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 1월 이후 재처리 정황이 일관되게 포착됐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이런 IAEA의 분석에 사실상 힘을 실었다. 외교부는 “정부는 미국 등 우방국과의 긴밀한 공조하에 북한 핵시설 및 핵 활동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북한은 일체의 핵 활동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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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핵탄두 늘리기…이재명 정부 대북정책 첫 시험대
지난 1월 핵물질 생산기지 및 핵무기연구소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핵무력 강화 노선을 재차 천명했다 . [뉴스1]
KBS가 확보한 위성 사진에 따르면 영변의 새 핵시설은 기존 50㎿e급 원자로와 방사화학실험실 사이에 위치한 파란 지붕 건물로 추정된다. 건물은 가로 120m, 세로 45m가량으로 강선의 핵시설(115m·50m)과 유사한 크기다.
북한은 영변 이외 핵시설의 존재를 부정해왔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당시에도 북한은 민생 분야 제재 완화를 대가로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겠다고 제안하면서도 강선 등 여타 핵시설에 대해선 은폐하려 했다.
트럼프는 이후 같은 해 5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북한 내 핵시설 5곳 중 1~2곳만 폐기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언급한 시설의 위치를 영변과 강선, 평안북도 태천, 자강도 희천, 양강도 영저리 등으로 추정했다.
앞서 IAEA는 북한이 영변과 강선에서 핵시설을 확장하는 정황을 지속적으로 포착했다. 그러나 IAEA가 이번에 공개한 핵시설은 별개의 새로운 시설이다.
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그간 핵 능력 증강 계획을 충실하게 진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북한은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 김정은이 핵물질 생산 시설과 핵무기연구소를 시찰했다며 내부 사진도 공개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저위력 핵무기를 대량 생산하겠다고 선언하고 미사일도 다량화한 만큼 이를 뒷받침할 핵탄두 물량 확보가 필수적”이라며 “이에 따라 고농축우라늄 생산 시설을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핵 능력 고도화를 지속하며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남북관계 복원 구상도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는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중단을 강력히 요청하는 등 대북 유화정책을 내놨지만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한편 우크라이나 군 당국이 북한군 파병 대가로 러시아가 북한의 자폭 드론 생산을 지원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키릴로 부다노우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장은 지난 7일 미 군사전문매체 더워존(TWZ)과의 인터뷰에서 “샤헤드 계열 드론은 우크라이나에 수년간 가장 위협적인 장거리 공중 공격 수단이었다”며 “(러시아가) 북한에 이 드론의 생산 능력을 이전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양측은 북한 내 생산 조직을 만들기로 이제 막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가 드론 생산량을 매달 2000기 규모에서 5000기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는데, 북한이 러시아의 군수 하청공장을 자처한 셈이다. 김정은이 최근 자폭 드론 대량생산을 독려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중앙일보
정영교·이근평·박현주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