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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농장일 하고, 보상은 쌀밥 한그릇이었다"
"시계 훔쳤다는 누명 쓰고 2박3일간 폭행 당하기도"
"고아들은 국가폭력 피해자"…고아출신 송준영씨 <피해 증언>


편집자 주
= 보육원 출신 송준영 씨 인터뷰 기사는 두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이번이 두 번째 기사입니다. 첫 번째 기사는 5월31일 [삶] "난 4살 때부터 3년간 고아원 여교사한테 성폭행 당했다"라는 제목으로 송고됐습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송준영 씨
[고아권익연대 촬영]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나는 전자 손목시계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2박 3일간 부당하게 폭행당했습니다. 보육원에서 폭력은 일상이었습니다. 50대, 100대는 평범한 수준이고 150대를 맞은 적도 있습니다. 주말과 방학 때는 원장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농사 일을 하고는 그 대가로 쌀밥 한 그릇을 얻어먹었습니다."

"나는 보육원에서 죽은 듯한 한 아이를 봤습니다. 당시 보육원에서는 아이가 죽어도 사망으로 처리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보육원이 정부의 지원금과 후원자의 후원금을 계속 받아내기 위해서입니다."

서울의 A 보육원 출신 송준영(55) 씨는 지난 5월 1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인터뷰는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송 씨의 증언과 관련, "내가 고아원에서 자랐던 시절에 내 옆에서 6살 고아 후배가 죽는 것을 봤다"면서 "하지만 보육원은 조용히 암매장하고 정부와 지자체에 사망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조 대표는 "국가폭력을 당한 고아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보상과 배상을 해야 한다"면서 "보육원을 비롯한 시설들에 대한 신뢰할만한 전수조사, 범죄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표창장"
송준영 씨는 2025년 2월 뺑소니 차량 운전자 검거에 대한 공로로 양천경찰서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본인 제공]


<송준영 씨 인터뷰 1차 기사 요약>

[삶] "난 4살 때부터 3년간 고아원 여교사한테 성폭행 당했다"(2025년 5월31일 송고)

나는 4살 때인 1974년 놀이터에서 혼자 울고 있었는데, 순경이 파출소로 데려갔다. 그 파출소에서 1∼2시간 정도 있다가 서울시 아동임시보호소를 거쳐 A보육원으로 갔고, 그곳에서 자랐다.

당시 경찰은 내 부모를 적극적으로 찾아주지 않은 것 같다. 경찰이 보육원에 아이를 넘기면 '수당'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보육원에 들어간 지 이틀 만에 성폭행당하기 시작했다. 30세 전후의 미혼 여성 보육교사가 자기에게 유사 성행위를 하라고 했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폭행당하니 나는 필사적으로 해야 했다. 이런 고통은 3년간 지속됐다.

7살 때는 그 여교사로부터 벗어났으나 곧바로 보육원 형들한테 성폭행당하기 시작했다. 2명의 형이 동시에 나를 성폭행하기도 했다. 처음에 거절했더니 그 형은 나의 머리를 각목으로 내리쳤다. 그때 나는 그들의 요구를 거부하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나의 성폭행 피해는 11살 때까지 지속됐다.

나는 원장이나 경찰에 성폭력 피해 사실을 신고하지 못했다. 신고하는 순간 초주검을 당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당시 보육원은 성폭력이든, 일반 폭력이든 누구한테 말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한국은 세계에서 보육 시설이 가장 많은 나라다. 이제는 한국에서 고아 산업, 고아 사업이 중단돼야 한다.

송준영 씨가 자랐던 보육원에서 아이들이 오리 사육하는 방법을 배우는 모습
[조윤환 고아권억연대 대표 제공]


<다음은 송준영 씨 인터뷰 2차 기사 질문-답변>

-- 보육원에서 나온 것은 언제인가.

▲ 14살 때였다. 매를 못 이기고 나왔다. 야구 방망이로 엉덩이를 100대 정도 맞는 것은 견딜 수 있다. 그렇지만 주먹과 발로 무자비하게 맞으면 견디기 어렵다. 내 치아가 지금 정상적이지 않은데, 이건 폭행당했기 때문이다.

-- 100대씩 때린단 말인가.

▲ 50대, 100대 정도는 평범한 수준이다. 나는 150대까지 맞기도 했다. 형 1명이 150대를 때리는 것은 아니다. 여러 형들이 돌아가면서 때린다. 그 도구는 쇠 파이프, 야구방망이, 각목 등 다양했다.

-- 보육교사가 때리는 일도 있었나.

▲ 주로 선배들이 때리는데, 보육교사가 폭행하기도 한다. 원감(원장 바로 아래 직위)과 교사들은 보육원 내의 이런 폭력을 알고도 묵인했다. 방안에 아이들이 무릎 꿇고 앉아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누가 봐도 폭행 현장이다. 그렇지만 원감과 교사들은 문을 열었다가 이걸 보고도 그냥 문 닫고 나갔다.

-- 원감과 교사들은 왜 묵인하나.

▲ 아이들에 대한 기강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폭행에는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 이유가 없었다. 그냥 때렸다. 신발 정리가 안 돼 있다고 때리기도 했는데, 그건 핑계일 뿐이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무렵에 구구단을 잘 못 외운다는 이유로 보육원 형한테 많이 맞았다. 당시 고아들은 보육원 큰 식당에 모여서 공부했는데, 그 형이 "이거 읽어봐"라고 하기도 하고, "2 곱하기 8은 뭐야?"라고 묻기도 했다. 제대로 읽지 못하고, 구구단 정답을 맞히지 못하면 나는 보육원 내 놀이터로 끌려 나갔다. 거기서 몽둥이로 맞았다. 맞으면서 졸기도 했을 정도로 폭력은 평범한 일상이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송준영 씨
[고아권익연대 촬영]


-- 구구단을 못 외운다는 이유로 때린다는 것인가.

▲ 나를 때린 그 형도 피해자다, 내가 한글을 못 읽고 구구단을 못 외우면 그 형도 그 위의 형들한테 맞았기 때문이다. 그 형 덕분에 내가 한글을 읽고, 구구단을 외웠으니 지금은 고맙게 생각한다. 내가 정말로 미워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 그 사람은 누구인가.

▲ 내가 9살 또는 10살 정도였을 때 보육원 내에서 운동회가 열렸다. 그때 한 여자아이가 자신의 전자 손목시계가 없어졌다고 했다. 그 아이는 보육원생이 아니고, 외부에서 참관하러 왔던 아이였다. 아마도 부모님과 함께 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나를 도둑으로 지목했다. 내가 자기 옆에 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보육원 형들과 교사들이 나에게 손목시계를 내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번갈아 가면서 나를 때렸다. 나는 2박 3일간 맞았다.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다. 모든 사람이 잠자는 밤에도 보육교사 문 앞에서 손든 채 무릎 꿇고 있어야 했다

-- 그래서 어떻게 됐나.

▲ 나는 손목시계를 내놓을 수 없었다. 내가 가져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매에는 장사가 없었다. 나는 10분간 무자비하게 맞고 나서는 거짓말을 했다. 나는 "살려주세요. 저기 톱밥 창고 그 밑에 있습니다"라고 했다. 잠깐이라도 매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면 그들은 현장검증 하듯이 나를 앞세우고 톱밥 창고로 갔다. 전체 원생들도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만난 듯이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런데 그곳에 손목시계가 있을 리 없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또 폭행당했다. 이번에도 매질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다른 곳에 뒀다고 또 거짓말을 했다. 그러면 또다시 떼 지어 그곳에 몰려갔고, 그곳에도 손목시계가 없으니 또 맞았다.

-- 손목시계는 결국 나오지 않았나.

▲ 그 아이가 손목시계를 찾았다. 자기 집에 있는 책꽂이의 책들 사이에 있었다고 했다. 내가 누명을 쓴 것이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나는 당시 시계를 볼지도 몰랐는데, 너무 억울한 일을 당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형제복지원 원생 수용시설
강제노역에 동원된 형제복지원 원생들이 생활했던 울산 수용시설의 2014년 모습
[연합뉴스 사진]


-- 보육원에 다른 형태의 폭력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 '광대'라는 것이 있었다. 4∼5살의 아이를 들었다가 방바닥에 그냥 놓는 것을 말한다. 고양이는 이런 광대를 당하면 안전하게 착지한다. 사람은 머리가 먼저 떨어져서 충격을 받는다. 나는 팔의 뼈에 금이 가서 깁스한 것이 두 번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광대를 당했을 때였다. 다른 한 번은 나한테 날아오는 야구방망이를 팔로 막다가 팔뼈에 금이 간 경우였다. 깁스를 풀었을 때 나는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깁스하고 있을 때는 맞지 않았는데, 이제 또다시 맞아야 했기 때문이다.

-- 1주일에 몇 번 정도 폭행당했나.

▲ 1주일에 6일 정도다. 그러니 거의 매일 맞은 셈이다. 왜 맞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 주로 엉덩이를 맞았나.

▲ 형들은 쇠 파이프에 테이프를 감은 뒤 그걸로 허벅지를 때렸다. 그러면 바지에 핏물이 들어서 딱딱하게 굳었다. 엉덩이는 살이 많으니 덜 아프다고 해서 살이 적은 허벅지를 때렸다. 다음날 학교에 가면 아파서 자리에 앉을 수도 없었다.

-- 신체검사 과정에서 폭행이 드러날 듯한데.

▲ 그런 신체검사는 없다. 다만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가 방문할 때는 아이들을 불러서 창고에 있는 새 옷을 입혔다. 행사가 끝나면 그 옷을 벗으라고 해서 다시 창고에 집어넣었다.

-- 그 창고는 무슨 창고인가.

▲ 한번은 창고 문이 열려 있어서 몰래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사과, 배 등 먹을 것이 백화점 수준이었다. 그런데 배를 하나 집어들어 한입 물었더니 푸석푸석했다. 오래돼서 수분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 왜 빨리 아이들한테 주지 않고, 창고에 보관했을까.

▲ 창고 관리하는 분이 있었다. 우리는 '사랑방 아줌마'라고 불렀다. 그분의 집은 고아원 바로 옆이었다. 창고를 자물쇠로 잠가 놓고는 창고에 있는 것을 수시로 자기 집에 가져갔다. 그 아주머니는 아이들을 수시로 때리기도 했다. 무슨 연유였는지 모르지만, 그분한테 많이 맞았던 기억이 있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가 자랐던 보육원(왼쪽)과 원장 사택(오른쪽)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 제공


-- 언어적 폭력, 정서적 폭력도 있었나.

▲ 당시 보육원에서 언어적 폭력은 폭력이 아니었다. 그냥 기본이었다. 남자한테 "0새끼야", 여자한테 '00년아" 등의 욕을 해댔다. 교사들도 그렇게 욕을 했다. 당시 보육교사는 지금처럼 사회복지사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유치원생도 그런 욕을 들어야 했다.

-- 보육원에서 청결 상태는 어떤가.

▲ 자신의 빨래는 스스로 해야 했다. 빨래하는 시간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알아서 해야 했다. 세탁기는 자주 고장이 나서 사용할 수 없으니 손빨래해야 했다. 목욕탕은 1년에 1번, 신정 때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가 가면 목욕탕 물이 시커먼 색깔로 변해서 목욕탕 주인이 싫어했다.

-- 국회의원 등이 보육원에 많이 왔나.

▲ 내 기억에는 당시 유명 정치인도 방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문자들이 돈 봉투를 건네면서 사진을 찍는 것을 나는 수백번은 본 듯하다. 그런데 그렇게 봉투로 오는 돈은 원장의 주머니에 들어간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최근 국회 간담회에서 증언을 하다 눈물을 흘리는 송준영 씨
[배진시 몽테뉴해이입양연대 대표 촬영]


-- 보육원에서 아이들이 죽는 경우도 있나.

▲ 내가 있던 보육원에서 그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보육원 선생님들은 우리들이 큰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아궁이처럼 불 때는 곳의 어떤 통로를 통해 그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마대자루로 덮여 있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그 아이가 누구였는지는 지금 잘 생각나지 않는다.

-- 그 아이는 죽은 것인가.

▲ 정확하지 않지만 숨을 안 쉬니 죽은 상태였을 것이다. 그 당시 보육원에서는 아이가 죽어도 여러 사람이 목격하지 않았으면 그냥 야산에 몰래 묻는 일이 있었다. 실종신고나 가출 신고도 하지 않았다. 정부가 제공하는 보조금, 외국인이 보내주는 개인 후원금을 계속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개인 후원자가 보육원을 찾아오면 아이가 가출했다고 했다. 아니면 금방까지 있었는데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고 둘러댔다.

-- 아이가 사고로 다치거나 죽어도 보상금은 모두 원장한테 가게 되나,

▲ 이런 일도 있었다. 보육원의 한 아이가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 그 보상금 또는 위로금은 원장의 주머니에 들어갔을 것으로 우리는 판단했다. 당시 그건 너무 당연해 보였다.

-- 그 보상금이 왜 원장 개인 주머니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나.

▲ 그 돈이 보육원생들을 위해 쓰였다면 우리가 그런 허접한 옷을 입고, 그렇게 안 좋은 음식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한 동료 보육원생의 배가 볼록 나온 적이 있었다. 왜 그런지 처음에 나는 몰랐다. 알고 보니 영양실조라고 했다. 보육원 측은 이 아이에게만 집중적으로 계란 등을 먹였다. 그랬더니 그 아이의 배가 쑥 들어갔다.

-- 보육원 아이들이 강제노역을 하기도 했나.

▲ 내가 자랐던 보육원 원장이 목장도 운영했었다. 우리는 사료용 옥수수밭에 가서 옥수수를 베는 일을 했다. 아이들은 그 일을 하고 돌아오면 풀독이 올라 온몸이 빨개졌다. 모내기 철에는 원장 논에 가서 일을 해야 했다. 방학 때나 일요일 등에 그런 농사일을 했다. 그렇게 일하는 날은 쌀밥을 먹는 날이었다. 강제노역에 대한 대가였다.

송준영 씨가 자랐던 보육원의 원생들이 원장 농장에서 모내기 하는 모습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 제공]


-- 고아들은 학교에서도 푸대접받았나.

▲ 허벅지를 많이 맞으면 피도 나고, 아파서 학교 교실의 의자에 앉을 수도 없었다. 그러면 당연히 선생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야 했는데, 모르는 체했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다. 거리 퍼레이드를 마치고 60명가량의 우리 반 아이들은 선생님 인솔하에 갈비탕집에 갔다. 반 아이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나만 식당 안으로 못 들어가게 했다. 나는 문밖에서 그냥 서 있어야 했다. 그런데 갈비탕집 아들인 반 아이가 나와서는 나를 안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갈비탕이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 14살에 보육원에서 나온 뒤 생활은 어떠했나.

▲ 4일을 굶은 적이 있었다. 어떤 집의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갔더니 부엌의 냄비에 밥이 있었다. 허겁지겁 손으로 그 밥을 먹었다. 반찬으로는 장아찌가 있었다. 얼마 후 주인아저씨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경악했고, 나는 경찰에 끌려갔다. 형사들은 자기들의 미제사건도 모두 내가 한 것이라고 서류를 조작했다. 형사들은 "너는 어차피 소년원에 가야 하는데, 이런 사건을 추가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고 했다.

-- 성인이 된 후에 생업으로 무엇을 했나.

▲ 퀵서비스도 했고, 택시 기사도 했다. 지금은 밤에 대리기사 일을 하고 있다.

-- 보육원 출신은 취직하기 어려운가,

▲ 나는 직장에 가면 일을 열심히 했다. 그렇게 해야 계속 고용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젊은 시절에 선반 밀링을 하는 업체, 카메라 부품을 만드는 기업 등에 취업한 적이 있었다. 입사한 지 얼마 후에 회사 측은 주민등록 등본을 떼어오라고 했다. 그런데 당시 내 주민등록 등본에는 가족이 150명이나 됐다. 사장님은 그걸 보고 내가 고아라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내가 다녔던 보육원의 아이들은 당시 150명가량이었다.

-- 그다음에는 어떻게 됐나.

▲ 사장님은 왜 속였느냐고 했다. 고아라는 것을 왜 미리 알리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바로 쫓겨났다. 이러니 고아들은 어떤 기술을 배우기가 어려웠다. 고아가 직업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부산 광안대교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씨
[덕성원피해자생존자협의회 제공]


-- 부모님이 많이 생각날 때는 언제인가.

▲ 명절 때다. 부모가 있다면 나는 명절 때 부모님 집에 가서 떡국을 먹거나 명절 음식을 먹었을 것이다. 명절 때 나는 밖에서 밥을 사 먹든가, 편의점 도시락을 먹곤 했다. 어린 시절 나는 "전생에 나는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내 삶은 이렇게 고통스러운가?"라고 울기도 했다.

-- 정부와 국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내가 만 4살 무렵, 내가 놀이터에서 울고 있었을 때 경찰은 나의 부모를 찾고자 했다면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경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정부와 경찰, 보육원은 한통속이었다고 생각한다.

-- 고아 피해자들은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 당연히 국가와 지자체는 고아들에 대한 합당한 배상과 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5월 11일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 씨가 부산의 광안대교에 올라가 시위를 벌였다. 법원은 2심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과 보상을 하라고 판결했는데, 정부와 부산시가 상고한 것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정부와 지자체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오히려 정부가 적극 나서서 보상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송영준 씨 2차 기사 끝)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
[연합뉴스 사진]


편집자 주
= 연합뉴스는 공정하고 객관적 보도를 위해 송준영 씨가 자랐던 해당 보육원, 보육원들 단체인 한국아동복지협회, 고아 당사자들의 단체인 고아권익연대, 주무당국인 보건복지부에 송준영 씨의 증언과 관련한 의견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지금까지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만이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나머지 의견도 도착하면 다소 늦게라도 반영할 예정입니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


--당시 보육원에서는 이렇게 심하게 폭행당하는 일이 많았나.

▲ 폭행은 집단수용시설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문화다. 부모나 법적 보호자가 있는 집단수용시설에서도 끔찍한 폭행이 있다. 하물며 부모도, 법적 보호자도 없다면 더욱 폭력은 심하게 일어난다. 더 무서운 것은 보육원이 외부로부터 단절돼 있어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무마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엔은 인간을 집단 수용하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라고 명시했다.

-- 당시 보육원에 또 다른 폭력 양상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 집단수용시설에서 폭력은 서서히 진화하고 심화한다. 처음에는 가해자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한 대 때린다. 그런데 혼나는 일이 없다. 더욱이 피해자가 반항도 하지 않는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매를 맞고 복종하는 것을 보고는 황제가 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결국 농기구로 머리를 때리고, 인분을 먹이는 일도 생긴다. 나는 이를 직접 목격했고 경험한 사람이다.

-- 지금은 보육원에 폭력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아니면 다른 방식의 폭력 유사행위(정신과약 처방 등)가 있는 것인가.

▲ 누가 폭력이 사라졌다고 하는가? 보육원에 한 번 들어가 본 적이 있는가? 누가 폭력이 없어졌다고 장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송준영 님 시대에 보육원들을 운영했던 사람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 가족들이 그대로 보육원을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도, 아동보호 시스템도 달라진 게 없다. 불과 몇 년 전에 부천과 충북에 있는 유명 보육원에서 폭력과 성폭력으로 시설 자체가 폐쇄된 일이 있다. 정신병원은 폭력이 합법적으로 가능한 곳인데, 정신병원 입원 처분은 폭력이 진화되면서 탄생한 끝판왕이다. 지난 5월 아동복지학회에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내용을 보니 정부는 보육원에 아동 정신병원 기능을 추가하려 하고 있다.

-- 당시 보육원 아이들이 강제적으로 노동하는 일이 종종 있었나.

▲ 보육원에서 아이들은 자식이 아니라 이익 창출자들이다. 혈연 중심의 경제공동체인 집에서 심부름이나 잔일을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보육원 법인이 소유하는 산과 농지는 세금 면제 혜택을 받았고, 그 넓은 땅의 농사일을 위해 아이들이 강제 동원되는 것은 다반사였다. 나도 보육원 시절에 논농사, 뽕나무 농사, 산에서 나무 자르기 등을 많이 했다. 노동을 했다고 반찬이 달라지거나 좋은 옷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성인이 돼서 보육원에서 나올 때 정착금을 더 주는 일도 없다. 아이들의 강제노동으로 인한 모든 이익은 보육원 원장의 주머니에 들어갔다.

-- 아이가 죽어도 야산에 암매장하고는 신고하지 않은 채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보육원도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 과거에는 정부·지자체의 보육원 주무 부서 공무원들이 은퇴하고 보육원 원장으로 가는 경우가 있었다. 관리·감독하는 정부·지자체와 보육원이 밀착됐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나는 어린 시절에 6살짜리 고아 후배가 내 옆에서 죽는 것을 직접 봤다. 하지만 보육원은 조용히 암매장하고 정부와 지자체에는 사망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최근에 강원도 보육시설에서 폭행을 못 견디고 15세에 탈출한 분이 고아권익연대에 회원으로 등록했다. 퇴소 증명서를 보니 18세에 만기 퇴소했다고 돼 있었다. 그 시설은 3년간 그분의 지원금을 계속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 고아들 피해에 대한 보상을 추진할 생각인가. 그 보상액은 어느 정도여야 한다고 생각하나,

▲ 최근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의 배상 판결문에는 아동 시기일수록 피해는 더 크다는 내용이 있다. 어린 시절 수년간 지속적으로 국가폭력을 당한 분들에 대한 배상은 성인 이상이어야 한다.

-- 과거 보육원들의 불법행위, 범죄행위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아동 집단수용시설에서의 국가 폭력은 과거뿐 아니라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지금도 피해자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더 이상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신뢰할만한 전수 조사와 함께 사법당국의 수사가 필요하다.

[email protected]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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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78 "관상용 연못? 개 수영장?" 한남동 관저 사진 논란 일파만파 랭크뉴스 2025.06.09
49577 집회 진압에 주방위군 300명 LA 집결…트럼프 “강력한 법과 질서 있을 것” 랭크뉴스 2025.06.09
49576 올 들어 주가 59% 폭등한 증권株…빚투 금액도 폭증[이런국장 저런주식] 랭크뉴스 2025.06.09
49575 ‘60년 만의 연방軍 투입’... 美 LA 이민시위 대치 격화 랭크뉴스 2025.06.09
49574 “협상 물꼬”·“윈윈 전략”…李 대통령 외교 데뷔전에 전문가 ‘한목소리’ 랭크뉴스 2025.06.09
49573 오늘 흐리다 낮 최고 33도까지...초여름 더위 계속 랭크뉴스 2025.06.09
49572 15년 전엔 한나라당 "대법관 증원" 외치자 민주 "사법독립 훼손" 랭크뉴스 2025.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