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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의 초상 l 물류창고 출고팀 사원
김의경 작가가 생성형 인공지능(AI)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에 “물류창고에서 카트에 바구니 서너개를 가지고 다니면서 주문 제품을 담는 40대 아시아 사원을 유화풍으로 그려줘”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이다.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이명훈(가명)씨를 만나기로 한 곳은 모란역 인근 순댓국집이었다. 저녁 일곱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하나둘 직장인들이 모여들더니 어느새 매장에는 사람들이 가득 찼다. 홀로 소주잔을 기울이며 순대국밥을 먹는 중년 남성들이 제법 보였다. 곧이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가 보였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조금 전 통근버스에서 내려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키도 크고 손도 큰 명훈씨는 내 앞으로 수저를 놓아주며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순대국밥은 주문한 지 3분도 안 되어 나왔다. 그가 순댓국에 후추를 뿌리며 말했다.

“사실 순댓국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물류창고에 다니면서 좋아하게 되었어요. 통근버스에서 내리면 허기져서 집까지 걸어갈 엄두가 안 나거든요. 이곳에 들러서 밥을 먹고 들어가다 보니 단골이 되었네요.”

나는 어서 먹으라고, 본격적인 인터뷰는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 가서 하자고 했다. 그는 순댓국에 밥을 말아 금세 그릇을 비우더니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면서 앞장섰다. 뜻밖에도 내부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카페였다.

“여기 커피 맛 끝내줘요. 제 생각엔 이 동네 베스트예요.”

순댓국을 먹은 뒤라서인지 입가심으로 마신 커피는 맛이 훌륭했다. 명훈씨는 쉬는 날에는 이 카페에서 책도 보고 음악도 듣는다고 했다.

“몸을 써서 일하다 보니 취미를 갖고 싶더라고요. 퇴근하면 아이랑 놀아주고 넷플릭스 보다가 잠드는 날이 많지만 쉬는 날에는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요. 도서관에서 판타지 소설을 빌려 봐요.”

그때 그의 딸아이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고, 그는 일이 있어서 조금 늦는다고, 집에 금방 갈 거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는 내게 책과 영화를 몇편 추천해 주었다. 신이 나서 한참 동안 영화와 책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인터뷰했다.

아침 7시반 모란역에서 통근버스 타고 창고로
상품 포장하고 바구니를 나르며 하루 2만보
“8시간씩 같은 일…지겨움과 권태 가장 힘들어”
작은 실수도 곧 손실, 남들 앞 경고는 ‘마음의 상처’

사십대 후반인 명훈씨는 물류창고에서 일한 지 6년 되었다고 했다. 적성에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6년이나 하다 보니 익숙해진 것 같다고 했다. 물류창고에서 일하기 전에는 공장, 백화점, 마트 등 다양한 장소에서 일했지만 정착할 곳을 찾지 못했다. 물류창고에서 평생 일할 생각은 없지만 현재는 큰 불만 없이 하고 있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했고 한창 젊을 때는 지금보다 돈을 더 벌었는데 요즘은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 거라고 했다. 몸도 조금씩 삐거덕거리고 병원에 가는 횟수도 늘어났다. 그래서 가급적 한곳에서 오래 일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매일 아침 7시 반 모란역에서 통근버스를 타고 경기도 광주에 있는 물류창고로 간다. 광주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한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려 걸으면 일을 시작하는 시간보다 20분에서 40분 전에 센터에 도착한다.(교통 상황에 따라 매일 다르다.) 사물함에 소지품을 넣은 다음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휴대전화를 보면서 업무 시간이 될 때까지 자유롭게 휴식을 취한다. 9시 10분 전에 작업장에 들어가 관리자에게 업무를 배정받는다. 업무는 입고와 출고, 허브로 나뉘는데 명훈씨는 출고팀이므로 출고 대기열에 가서 업무를 배정받는다.

출고는 상품을 집품해 포장해서 내보내는 것이다. 업무 배정은 주로 집품과 포장으로 주어지는데 남자는 ‘워터’라고 해서 간접 업무로 빠지기도 한다. 워터는 집품과 포장의 중간에서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돕는 업무인데, 집품 업무를 맡은 사원들이 가져오는 제품과 레일을 타고 내려오는 바구니를 모아 포장 파트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집품은 말 그대로 카트에 바구니를 서너개 가지고 다니면서 주문 제품을 담는 일이다. 처음에는 선반 번호 찾는 요령도 익혀야 하고, 선반 안에 있는 여러 물건 중 정확한 제품을 찾는 것이 헷갈리고 어렵지만 한 시간 정도 하면 익숙해진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에 익숙해지면 하루에 2만보는 걷게 된다. 힘들지 않냐고 묻자 그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글쎄요. 저는 육체노동에 익숙해져서 일이 힘들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단순 작업이 다 그렇듯이 제일 큰 어려움은 ‘지겨움’이에요. 끝없이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언제 끝나나, 생각하면서 일해요.”

힘들다는 답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이었다. 하다 보면 일은 익숙해지지만 지루한 반복 노동에는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포장은 오토백과 매뉴얼 포장으로 나뉜다. 오토백은 자동포장으로 포장 비닐에 사람이 판매 상품을 넣으면 자동으로 실링이 되고 컨베이어로 이동한다. 매뉴얼 포장은 오토백에 들어가지 않는 상품이나 파손 위험 상품을 박스로 포장하는 작업으로 에어캡(뽁뽁이)을 싸는 등의 수작업이 많다. 일하는 내내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므로 지겨움은 덜하지만 실수하면 곧바로 손해가 발생하므로 상당한 숙련도를 필요로 한다. 특히 오토백은 실수로 다른 물건을 집어넣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집중해야 한다. 매뉴얼 포장은 손이 빨라야 한다.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므로 물건이 바뀔 위험은 적지만 일에 서툴고 요령이 없으면 포장을 몇개 하지 못한다. 간접 업무는 무거운 바구니를 옮기는 등 활동량이 많으므로 남자 사원을 선호한다. 이 세가지 일 중 하나의 업무를 배정받고 일을 시작한다. 낮 12시에 점심을 먹고 두 시간 일한 뒤 15분 휴식을 취한다. 오후 6시면 퇴근이다.

명훈씨의 안전화. 잭(무거운 것을 들어 올릴 때 쓰는 기구)에 발이 낄 수도 있고 무거운 것이 발에 떨어질 수 있으므로 앞코가 단단하고 두꺼운 안전화를 신어야 한다. 이명훈씨 제공

주 5일 근무지만 명훈씨는 요즘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할 때도 있다고 했다. 특근을 하루 하고 나머지 하루는 다른 물류창고에 가서 아르바이트하기 때문이다. 과로하는 거 아니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이가 어려서 어쩔 수 없어요. 아내가 나가서 일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일주일에 이틀 쉬었는데 아이 키울 돈을 벌어야 하니 어쩔 수 없죠. 2년 전에 석달 동안 밤에 일한 적이 있는데 신체 리듬이 깨져서 다시 낮시간으로 돌렸어요. 엄청나게 피곤하더라고요. 돈을 더 주니까 밤에 일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래도 한달에 이틀은 쉬려고 합니다.”

일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다 보니 실수를 하게 되거든요. 집품 업무에서는 오집품, 과집품, 누락 같은 실수를, 포장에서도 오포장, 과포장, 누락 등의 실수를 하게 돼요. 이런 실수는 곧바로 손실로 연결되니까 경고와 교육을 받게 돼요. 아무리 조용히 경고를 받고, 교육을 받아도 남들 눈에 띄게 되니까 마음에 상처가 되죠. 그 외에 똑같은 일을 하루 여덟 시간씩 매일 반복하니까 지겨움과 권태가 가장 힘들다고 할 수 있어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지겨울 때가 있는데 힘들고 반복되는 업무를 6년이나 했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그가 웃으며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똑같은 일을 매일 하면 더 쉽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힘들고 반복적인 노동은 너무 지겨워요. 벌을 받는 기분이 들거든요.”

노하우를 익히면 힘든 일도 덜 힘들게 할 수 있지만 지루함을 이기는 노하우 같은 건 없는 모양이었다.

“저는 익숙해져서 잘 못 느끼지만 여자나 나이 드신 분들이 하기엔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일하다가 다치는 경우도 있고요. 큰누나뻘 되는 분이 속도가 느려서 그만둔 적이 있는데 안타까웠어요. 본인은 계속 일하고 싶어 했는데 눈치가 보여서 버티기 힘들었을 거예요. 또 여름에는 온몸에 땀이 흐르는데 나이 드신 분들의 경우 탈수 증상이라도 보이면 어쩌나 걱정이 돼요. 6년 전에 비하면 좋아졌지만 여전히 근무 환경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달라고 하자 그가 말했다.

“다양한 연령층이 일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여성의 비율이 높아요. 남녀 비율은 반반인 것 같아요. 이삼십대 여성도 있지만 사오십대 여성이 많아요. 남성은 이십대에서 사십대가 많고 오십대도 있습니다. 계약직도 있고 아르바이트로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오랫동안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솔직히 없어요. 자꾸 사람이 바뀌기도 하고 어차피 각자 일하는 거라서 말을 섞을 일이 많지도 않거든요. 여기서 일하면서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모두들 일하는 동안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일하다가 다치는 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거든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물류창고에서 그는 밥벌이의 고단함과 지겨움을 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리고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이었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지겹고 권태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그는 뭐 그런 것을 묻느냐는 듯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그야 월급날이죠.”

어찌 보면 하나 마나 한 질문이었다. 그가 힘들고 지루한 노동을 감내하는 건 먹고살기 위해서, 그리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는 내가 건넨 취재비를 한사코 거절했다. 그는 순대국밥과 커피로 충분하다고 말한 다음 뒤돌아서더니 아내와 아이가 기다리는 집을 향해 성큼성큼 빠르게 걸어갔다.

김의경 작가

김의경 작가

김의경 l ‘월급사실주의’ 동인. 2014년 장편소설 ‘청춘 파산’으로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쇼룸’ ‘두리안의 맛’, 장편소설 ‘콜센터’ ‘헬로 베이비’가 있다. 수림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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