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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살롱] 해로운 '남성성'을 넘어서
인사청문회서 '아버지 폭력' 말한 정계선 재판관
성차별 사회일수록 남성들 '남자다움' 집착 현상
연구 결과 '남성성' 위협받으면 전쟁 지지 높아져
남성들 옥죄던 족쇄에서, 더 다양한 '남성성'으로
"개인들 변화, 사회 제도 뒷받침 없인 한계 있어"

편집자주

젠더살롱이 개편됐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직접 여러 사회 문제와 주변의 이야기를 젠더적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젠더, 공간, 권력' 등을 쓴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의 글도 기고로 계속 함께합니다.
정계선 헌법재판관이 4월 1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해 대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탄핵) 이후,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과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보여줬던 소신과 청렴함이 회자되며 크게 화제가 됐지요.

그러면 혹시 정계선 헌법재판관의 인사청문회(지난해 12월 23일)는 보셨나요. 정 재판관이 들려줬던 그의 경험담도 우리 사회에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아버지는 유머러스하고 교육열이 강하셨고, 어머니는 부지런하고 헌신적인 분이셨습니다. 가난했지만 화목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실직하신 후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어머니가 한복 바느질로 생계를 책임지고, 아버지는 생전 해보시지 않던 가사 일을 일부 하시게 됐지만 그 역할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하셨습니다.
가장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무력감이 때로 폭력성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정 재판관은 "가부장제, 정상 가족,
고정된 성 역할 이데올로
기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을 얼마나 억압하고,
화목한 가정을 망가뜨리는지
보았다"면서 이 경험으로 양성평등,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사회적 수용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정계선 당시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지난해 12월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 선서를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위험의 뿌리가 되는 '남자다움' 사회



정 재판관의 고백은 '남자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남성성'이 무엇이길래 그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남성은 폭력을 쓰기도 하는 것일까요. 연구를 찾아보면
'남성성'이 '여성성'보다 우월하다고 평가받는 차별적인 사회
에서는 남성에게
'남자다움'
무기
이자
갑옷
이지만,
족쇄
가 되기도 합니다.

생계부양자로서 역할이 흔들리자, 애꿎은 폭력으로 '남성성'을 확인하려 든 아버지. '남자답지 못하다'라는 열패감과 불안감이 남성 자신을 괴롭힐 뿐 아니라 외부를 향한 폭력으로도 이어지는 것이죠. 실체 없는 '남성성'에 대한 강한 집착이 무고한 여성이나 약자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위험의 뿌리
가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지난해 한국여성의전화는 15년간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사망에 이른 여성과 그 주변인 피해자가 1,672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사진은 아내를 둔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은 남성 피의자. 뉴시스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심리학자
롭 윌러 교수
등이 실시한 '과도한 젠더 수행'(2013) 연구 결과를 볼까요. 연구진은 남성 참가자들에게 성 정체성 설문을 준 뒤, 실제 결과와 무관하게 한 집단에는 '남성성이 높다', 다른 집단에는 '여성성이 높다'는 피드백을 줬습니다. 그 후에 전쟁에 대한 지지, 동성애에 대한 견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대한 관심 정도를 물었는데요.

그 결과
'당신은 여성성이 높게 나왔다'는 말을 들은 남성일수록 전쟁을 지지하고, 동성애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SUV 구매에 대한 더 큰 관심
을 보였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자신의 '남자다움'에 위협을 느끼자 무의식적으로 '센 척'을 했다
는 것이지요. '여성성이 높다'는 말을 들은 남성 집단은, 대조군보다 SUV 구입에
7,320달러(약 1,000만 원)
를 더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연구진은 '남성성'에 대한 개념이 협소하고
'남성성'이 '여성성'보다 우월하게 여겨지는 성차별적 사회일수록 이런 현상이 더 강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봤어요.

게티이미지뱅크


변화의 움직임···'에겐남'을 긍정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과거에 비해 한국 사회에서도 점차 성별 고정관념이 약해지고, 남성성 개념도 유연해지고 있다
는 점입니다.

'2021년 양성평등 실태조사'에서 '가족의 생계는 주로 남성이 책임져야 한다'는 응답은 2016년 42.1%에서 2021년
29.9%
, '맞벌이를 해도 자녀에 대한 주된 책임은 여성에게 있다'는 응답은 53.8%에서
17.4%
로 줄었습니다.
물론 현실과 제도는 인식에 비해 뒤처져서, 맞벌이라도 아직 여성의 돌봄·가사노동 시간이 더 길지만 말이죠.


시대와 세대가 바뀌면서 '남성성'의 개념과 모습도 다양해졌습니다.
요리하는 남자, 아이 돌보는 아빠가 당연해졌고, 길거리에서는 귀여운 인형 열쇠고리를 가방에 매단 10대, 20대 남성을 자주 볼 수 있고요. 최근에는
'에겐남'
(에스트로겐과 남성의 합성어)과
'테토남'(테스토스테론과 남성의 합성어)이라는 단어도 유행인데요.


게티이미지뱅크


흥미로운 점은 다정하고 공감능력이 높은 '에겐남'과 고전적 의미의 '남자다움'에 가까운 '테토남' 사이에 우열을 두기보다는,
개개인의 취향과 선호 문제로 보고 '다양한 남성성'을 긍정하는 시류가 읽힌다
는 점입니다. 물론 호르몬 기반의 생물학적 이분법을 그대로 따르는 한계는 있지만 '남자라면 모름지기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생각은 점점 옅어지는 듯합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떨까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의 저자 이한 작가는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남성 성소수자를 조롱하거나 '알파메일'을 강조하는 문화도 여전히 강하지만, 동시에 대학 강의를 가보면 화장하고 꾸민 남자 학생도 적잖다"면서 "우리 사회에서 더 다양한 남성성 대안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엘리 서강대 여성학 교수는 '2030 남성들의 하이브리드 남성성'(2020) 연구에서 젊은 남성들 중에도 소수지만 점점 가부장, 허세, 터프함 등으로 상징되는 근대적인 '남성성'을 거부하고
요리, 청소 같은 생활력을 갖춘 '좀 다른 남성 되기'를 실천하는 이들
이 나타난다고 분석했어요.

김 교수는 개인들의 노력만으로 둬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지요. "성별 고정관념이 많이 약해졌지만 그것이 곧 성평등 실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죠. 육아에 참여하고 아이가 성장하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남성이 늘고 있지만 충분한 육아휴직 급여 보장 같은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한계
가 있습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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