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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 뒤끝 백태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지금 용산 사무실로 왔는데 꼭 무덤 같다. 아무도 없다. 필기도구 제공해줄 직원도 없다. 컴퓨터도 없고 프린터도 없고, 황당무계하다.”

취임 첫날이던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업무를 시작한 이재명 대통령이 난처하다는 듯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실에서) 직업공무원들을 복귀시킨 모양인데 곧바로 원대복귀를 명령해야겠다”고 말했다. 보궐 선거인 탓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임기를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지만, 대통령실을 싹 비우는 ‘청야 작전’ 수준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인수위 없이 즉각 가동돼야 할 새 정부의 출범을 명백하게 방해하는 행위다. 이런 지시를 내린 자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전임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은 발끈했다. “대통령실 인수·인계는 과거 정부 관례와 관련 규정에 따라 이루어졌다. 방마다 컴퓨터와 프린터기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파견 공무원을 모두 복귀시킨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다. 각 부처로 돌아갔던 공무원 189명 가운데 177명이 이재명 대통령 명령에 따라 5일 대통령실로 복귀했다.

부시 대통령 이름 입력 못 하게 키보드 훼손

2000년 11월 재검표 논란 끝에 민주당 앨 고어를 누르고 대선에서 승리한 미국 공화당 조지 더블유(W.) 부시 대통령과 참모들이 이듬해 1월20일 백악관에 입성했다. 대통령 관련 행정업무 대부분은 백악관 웨스트윙과 아이젠하워 행정동(EEOB) 빌딩에서 이뤄진다. 전임 대통령인 민주당 소속 빌 클린턴의 참모들이 8년간 쓰다 비우고 간 웨스트윙과 행정동에 들어선 부시 참모들이 맞닥뜨린 건, 자판에서 더블유(W) 키가 눌리지 않도록 접착제를 발라놓은 컴퓨터 키보드였다. 조지 더블유(W.) 부시 대통령의 이름을 입력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논란이 커지자 미 회계감사원(GAO)이 조사에 들어갔다. 이듬해 6월 220쪽에 달하는 조사보고서가 나왔다. ‘백악관 훼손 의혹 : 2001년 대통령직 인수·인계 시기’(THE WHITE HOUSE Allegations of Damage During the 2001 Presidential Transition)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모두 62개의 키보드에서 더블유 키가 제거됐거나 접착제 등으로 훼손됐다고 밝혔다. 전화기 100여대는 전화번호 표시가 사라져 몇 번인지 알 수 없게 돼 있었고, 직경 12인치짜리 대통령 인장이 사라졌다는 내용도 담겼다. 일부 사무실에는 쓰레기가 방치돼 있었고, 책상 서랍과 캐비닛 속 파일들이 바닥에 쏟아져 있기도 했다. 어떤 서랍은 열리지 않도록 접착제가 발라져 있었다고 한다.

부시 대통령을 조롱하려는 의도로 보이는 낙서 등도 발견됐다. 웨스트 윙 프린터기에서는 부시 대통령을 침팬지에 비유하는 그림이, 복사기에서는 ‘4년 후에 보자, 앨 고어’(see you in four, Al Gore)라는 문구가 인쇄된 종이가 발견됐다. 책상에는 ‘도둑은 감옥으로’(jail to the thief) 스티커가 붙어 있기도 했다. 일부 남자 화장실 벽에는 ‘W가 민주주의에 한 짓을, 당신은 여기서 하려 한다’(What W did to democracy, you are about to do in here) ‘공화당아, 마음 놓지 마라, 우리는 4년 안에 돌아온다’(Republicans, don’t get comfortable, we’ll be back) 등의 낙서가 발견됐다.

클린턴 행정부 직원들은 더블유 키 제거 등의 ‘장난’은 인정했으나 가구 파손이나 절도 의혹은 부인했다. 원래부터 낡은 집기 등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8년 만의 이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흔한 혼란이라고 했다. 또 부시 대통령 당선자 쪽 참모들이 ‘입주’ 전부터 백악관 행정동 사무실 등을 둘러보고 브리핑을 받는 등 정권 이양 계획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1993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클린턴 대통령에게 백악관을 넘겨줄 때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거나 하드 드라이브가 제거돼 있었고, 전화기는 선이 뽑힌 채 바닥에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가구가 복도에 나와 있거나 아예 가구가 없는 사무실도 있었다고 했다. 일부 직원은 ‘백악관에서 근무를 시작할 때 사무용품이 전혀 없었다’고 진술했다.

미 회계감사국은 키보드 훼손 등 일부 행위는 명백한 고의가 있었다고 했지만, 상당수 의혹은 증거가 부족하거나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21대 이재명 대통령 임기가 시작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봉황기가 게양돼 있다. 연합뉴스

여→여 때도 잡음, 여→야 때는 전쟁

대통령제 국가에서 정권이 교체될 때, 특히 여야가 정권을 주고받을 때 국정 운영의 계속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취임 준비위원회 설치령(1988),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설치령(1992, 1997, 2002)에 이어 2003년부터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을 두고 있다. 다만 전임 정부가 넘겨주는 ‘인계’ 절차가 아닌 새 정부의 ‘인수’에 방점이 있다.

같은 당끼리 정권을 넘겨줄 때도 ‘부실 인계’ ‘점령군 인수’ 잡음이 생기는데, 여야가 바뀔 때는 그 정도가 특히 심하다. 같은 보수정당인 이명박→박근혜 정권 교체 때도 ‘청와대에 아무런 자료가 없었다’는 불만이 나왔고, 박근혜 청와대가 탄핵 뒤 남기고 간 컴퓨터를 넘겨받은 문재인 청와대도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나마 이 법은 전임 대통령이 제대로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정상적 상황을 전제로 한다. 대통령 탄핵 등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인수·인계 기간 없이 곧바로 새 대통령이 일을 시작해야 한다. 이 때문에 미국처럼 대통령 선거 후보자 신분일 때도 대통령직 인수 조직을 미리 꾸릴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대통령직 인수 관련 주요 내용과 개선과제’, 국회입법조사처)

미국은 1963년 대통령직 인수·인계법(Presidential Transition Act)을 만들었다. 전임·후임 대통령 참모진의 핵심 인사가 참여해 대선 후 전임 정권의 레임덕을 최소화하면서 차기 행정부로의 성공적인 정권 이양을 목표로 한다.(‘미국 대통령직 인수 절차 강화법 주요 내용과 시사점, 국회입법조사처)

이 법은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됐다. 특히 2000년 10월 개정 때는 대통령 당선자가 반대당으로 교체되는 경우에 대비해 이전 정부가 보유했던 정보·기술·경험 이전, 새 정부 공무원 내정자에게 해당 직책 당면 과제 브리핑 등 집권 예비인력 훈련과 정부 업무 연계를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위상과 발전 과정 연구:국정과제 제시 역할로 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박지숙) 이 법은 대선 전 대통령직 인수·인계법(2010), 대통령직 인수·인계 개선법(2015) 형태로 개정됐고, 2020년에는 대통령직 인수·인계 절차 강화법이 제정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한국과 미국 법제를 비교하며 “국내법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법률에 따라 설립되는 공적인 기관이지만, 미국법의 대통령직인수팀은 대통령 후보자 및 당선자가 개별적으로 설치하는 민간 조직이다. 미국의 경우 현직 대통령과 후임 대통령 인수팀과의 관계 등이 일종의 계약 관계 성격을 가지며, 양해각서(MOU) 체결을 통해 세부 사항을 합의해 정하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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