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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정 국제부장
성장률 0%대···경제외교 등 '퍼펙트스톰'
DJ·루스벨트, 위기때 통합리더십 발휘
李대통령도 반대편에 먼저 손 내밀고
정치 복원과 협치, 국력 결집 나서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이재명 정부가 닻을 올린다. 8년 전 대선 다음 날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와 닮은꼴이다. 국내외 제반 환경은 그때보다 훨씬 나쁘다. 무엇보다 경제가 문제다. 최근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8%로 낮췄다. 올 2월 1.5% 성장 전망치를 두고 한은 총재가 “이게 우리 실력”이라고 단언해 화제가 됐는데 3개월 만에 절반 수준으로 추락한 셈이다. 1950년 이후 한국 경제가 1% 미만 성장했던 때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코로나19 팬데믹을 포함해 다섯 번에 불과하다. 저출생·고령화에 신산업 성장 동력마저 약해지며 저성장 고착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고용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건설업 불황과 자영업 줄폐업 여파다. 문제는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내수 부진 속에 그나마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 전선에 적신호가 켜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관세정책 탓이다.

미국 역사상 대표적인 경제위기는 대공황 때였다. 당시 1700만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200만여 명이 길거리에서 노숙을 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933년 취임 연설에서 “두려움 말고는 두려워할 게 없다”며 국민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임기 내내 ‘난롯가 대화’라는 이름의 라디오 연설로 민심을 다독였다. 훗날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다른 대통령은 로마 시대 원로가 원로원에서 연설하듯 국민을 가르치려 들었지만 루스벨트는 집에 찾아온 다정한 삼촌처럼 말을 걸었다”면서 ‘설득과 통합의 리더십’을 평가했다.

6·25전쟁 이후 대한민국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는 IMF 사태였다. 직장을 잃은 아버지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자식들이 평일 낮에 하릴없이 거리를 배회했다. 당시 30대 그룹 절반 이상이 도산하고 실업자는 181만 명(국제노동기구 집계)에 달했다. ‘사실상 백수’는 300만~400만 명 수준이었다. 엄혹했던 1998년 2월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올 한 해 동안 물가는 오르고 실업자는 늘어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땀과 눈물과 고통을 요구받고 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국민의 고통에 눈물 흘리며 힘 모아 극복하자고 제안했다. 지도자의 호소는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고, 금 모으기 운동이라는 전무후무한 나라 살리기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공화당 출신을 총리에 앉히고 비서실장에는 민정계를 쓰면서 ‘통합의 리더십’을 실천했다.

지금은 경제는 물론 정치·외교안보에 ‘퍼펙트 스톰’이 닥치며 IMF 사태 못지않은 총체적 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으로 불확실성의 늪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주한미군 감축설이 나오는 등 외교안보 리스크도 증폭하고 있다. ‘정신적 내전 상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내부 갈등까지 심각하다. 12·3 비상계엄과 탄핵을 거치며 국론이 분열됐고 상대편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극에 달했다.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총 8명의 대통령이 자신을 찍지 않은 반대편과 지난한 싸움을 했지만 이번에는 그 간극과 상처가 더욱 깊고 쓰릴 것이다.

국정 최고 지도자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나머지 절반의 국민이 승복해야 국정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선거 유세 기간 빨강과 파랑이 섞인 넥타이를 맸던 이유일 것이다. 그는 TV 토론에서 “지지한 사람이든 아니든, 똑같이 존중하고 동일한 기회를 부여하겠다. 반(半)통령이 아니라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도 정치 복원과 협치, 국민 통합과 국력 결집이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적과 손잡는 것이며 승리한 순간 겸손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상대와 손잡지 않고 세상을 바꿀 방법은 없다. 대화와 타협이 민주주의 원리이자 정치의 요체인 이유다.

부디 과거의 문을 굳게 닫고 미래를 향해 내딛기를 바란다. ‘이재명만큼은 절대 안 된다’며, 핏대를 세우고 반대했던 이들이 오해했다며 후회하는 날이 온다면 대통령에게도, 대한민국에도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일각에서 우려하듯 입법과 행정·사법까지 삼권을 움켜쥔 ‘독재 정권’으로 전락할지, 국민 통합을 발판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지 운명의 시험대에 섰다. 정확히 1년 뒤 첫 심판인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정민정 국제부장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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