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함 속의 민심은 우리가 꿈꾸던 모습과 한치도 다르지 않으리라 믿는다. 지난 6개월의 고통과 마음 졸임을 상쇄하고도 남을 기대감이 선거일 아침 가슴을 휘감는 이유다.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정상적인 국가의 복원과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그 꿈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새 정부의 첫 선택과 첫걸음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2일,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 서문광장을 찾은 시민들이 후보 이름을 연호하며 선거 유세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꼭 6개월이 걸렸다. 지난해 12월3일 밤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대혼란과 국정 마비를 끝낼 새 대통령이 오늘 선출된다. 지난주에 이미 전체 유권자 4400만명 중 1542만명(34.7%)이 사전 투표를 했다. 오늘 저녁 8시 나타날 투표함 속의 민심은 우리가 꿈꾸던 모습과 한치도 다르지 않으리라 믿는다. 지난 6개월의 고통과 마음 졸임을 상쇄하고도 남을 기대감이 선거일 아침 가슴을 휘감는 이유다.
대선 때 언론이 많이 던지는 질문 중 하나가 ‘이번 선거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였다. 국가 명운을 결정짓는 선거에서 시대정신은 새 정부가 나아갈 방향과 가치를 응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김대중 후보가 당선된 1997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평화적 정권교체’였다. 조직도 돈도 없던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밀어 올린 2002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시민 참여의 새로운 정치’였다. 이번 대선에선 시대정신을 찾는 게 사치스러울 정도로 ‘내란 극복’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어 버렸다. 선거를 사흘 앞둔 5월31일, 윤석열·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이 김문수 후보 지지에 발 벗고 나선 것은 대표적 사례다.
10년이 채 못 돼서 두 명의 보수 대통령이 탄핵당했다. 국회와 헌법재판소 결정이었지만, 본질은 국민의 심판이었다. 그중 한 사람은 서울 광화문 광장의 극우 집회에 김문수 후보를 지지하는 공개 메시지를 보냈다. 또 한 사람은 국민의힘 국회의원들과 함께 대구 서문시장을 돌며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데 대한 부끄러움이나 반성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오직 국민의힘 재집권에만 몰두하는 두 ‘탄핵 대통령’의 행동은 이번 대선의 본질, 그리고 선거 이후에도 이어질 분열과 증오, 음모의 그림자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는 이런 현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걸 넘어설 수 있는 능력과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 어제치 한겨레 1면에 실린 예측 득표율은 이재명 48.5~50.1%, 김문수 39.1~39.7%, 이준석 9.3~10.3%였다. 이 예측치가 맞을지, 좀 더 격차가 벌어질 수 있을지 우리는 오늘 밤 숨죽이며, 때론 환호하며 지켜볼 것이다.
한국리서치가 최근 공개한 ‘한국 사회 극우의 현주소’에 관한 여론조사 분석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21%가 극우 성향을 가진 것으로 분류됐다. 국민 다섯명 중 한명꼴이다. 예상대로 극우 성향 비율은 70대 이상 고령층(29%)과 20대 청년층(28%)에서 가장 높았다. 특히 ‘극좌’로 분류된 응답자가 0.2%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요 몇년 사이 우리 사회에서 극우의 팽창 속도는 가히 놀라울 정도다. 윤석열은 실재하지도 않는 ‘극좌 반국가세력’과 싸우다 비상계엄을 일으켜 오늘의 선거를 있게 한 셈이다.
이런 정치 지형은 새 정부가 출발부터 쉽지 않은 도전과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예고한다. 극단적 정치 대립을 해소하고 국민 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당위론과 달리, 현실은 세력을 확장하는 극우에 대응하는 게 몹시 까다롭고 힘든 과제가 되리라는 걸 보여준다. 정통 보수는 그래도 선거라는 제도와 국민의 선택을 존중했다. 새 정부의 노선이 자신의 가치와 명백히 다르다는 게 정책으로 확인될 때까지는 유보하는 태도를 취하곤 했다. ‘극단적 우익’은 다르다. 당장 내일부터 부정선거를 이유로 승복을 거부하고, 서울서부지법 난동처럼 폭력으로 질서를 해치고,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오늘 밤 새 대통령이 선출돼 내일 정식 취임을 하면, 아마도 관심은 첫 국무총리로 누구를 지명할지에 쏠릴 것이다. 공교롭게도 전임 세 정부의 국무총리가 모두 이번 대선에서 조연으로 활약하며 국민에게 분노를 안겼다. 박근혜 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황교안은 대선 포스터에 이름을 올리고 부정선거를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의 국무총리(한덕수)는 한밤중에 국민의힘 후보 자리를 꿰차려다 실패하고, 앞으로 내란죄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문재인 정부에서 최장수 총리를 지낸 이낙연은 내란 세력과 손을 잡는 변절의 끝판을 보여줬다.
최소한의 양식과 책임감, 소명의식이 없는 이들로 점철된 대한민국 국무총리란 자리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국민의 실망감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이를 새 정부의 국무총리로 기용했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정상적인 국가의 복원과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그 꿈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새 정부의 첫 선택과 첫걸음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