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연금 가입 기간이 짧은 것은 청년 세대의 늦은 사회 진출도 큰 이유 중 하나이다.
| 2025년 대한민국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고령화와 저출산, 저성장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연금 개혁 방안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시리즈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다시 연금 개혁] 청년과 노인이 함께 신나는 국민연금 ① 국고 GDP 1% 쓰면 기금 고갈 없이 45% 소득대체율 가능 ② 청년이 더 유리하다! 사각지대 없애는 416 개혁안 ③ 국민연금 원가는 얼마? 국고 투입 반대하는 정부의 '모럴 해저드' ④ 대한민국의 '대왕고래'는 동해가 아닌 국민연금에 있다? ⑤ MBK식 '돈 넣고 돈 먹기'가 국민연금의 투자 원칙인가 ⑥ 1,200조 원 기금 '셀프 감독'…2년째 공석인 기금 위원 ⑦ '꿀 빤 세대'는 누구?…구조개혁,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망한다’ ⑧ '사각지대' 이대로 놔두면 '국민연금 개혁' 도루묵 |
■ 대선 이후 국민연금 구조개혁이 중요한 이유
그동안 연금 개혁은 인구 고령화에 따른 기금 고갈 위기와 미래 세대의 부담, 노인 빈곤 등이 핵심적인 과제였다.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 연금 개혁은 좌초되는 수순을 밟고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계엄과 그로 인한 탄핵, 그 과정에서 여야 합의로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는 모수개혁을 성사시키는 일련의 과정은 매우 기적적인 일이었다. 국민연금 개혁의 역사에서 매우 큰 의미로 길이 기억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수개혁은 국민연금 제도 내부와 가입자에게 영향을 미칠 뿐, 국민연금의 아킬레스건인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4%p 오른 보험료 부담으로 직장 가입자가 아닌 서민들은 연금 가입이나 유지에 오히려 부담을 느낄 가능성도 있다.
연금 개혁과 관련한 뜨거운 논쟁거리는 미래세대의 부담 문제였다. 즉 고령화로 기금이 고갈되면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할 노인 부양비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진다는 논리이다. 그러니까 보험료를 빨리 올리거나 연금 급여를 깎지 않으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국민연금 무용론 등 불신감을 누그러트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험료를 올리는 모수개혁에 성공했으니 미래 세대의 부담은 줄어들까?
기초연금을 도입한 이유는 국민연금 제도 밖에 있는 노인들의 생활비를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
■ 국민연금 밖에 있는 1천만 명...미래세대 부담은 그대로
국민연금 사각지대는 두 종류다. 하나는 급여 사각지대(이미 노인이 된 사람 중에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짧아 수급권이 없거나, 있더라도 기초연금보다도 적은 저연금 상태에 있는 사람들)고, 또 하나는 적용 사각지대(18~59세 경제활동 인구에 속하지만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할 의무가 없거나 납부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다.
은퇴한 노인이 연금이 없어 빈곤 상태에 빠져들면 결국 정부가 이들을 구제해야 한다. 물론 국민 세금으로. 1988년 시작된 국민연금은 역사가 짧아 급여 사각지대가 넓다. 대부분은 자식 세대가 연금이 없는 노인들의 생활비를 책임지고 있고, 정부는 기초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과거 기초연금을 도입한 이유가 국민연금 제도 도입 이전에 노인이 된 이들의 빈곤 문제를 덜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정부는 국민연금 제도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아서 사각지대가 넓게 형성됐고, 제도가 성숙해지면 이런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처럼 얘기해 왔지만, 이 말은 틀렸다. IMF 사태 이후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고용과 늘어난 영세 자영업자 등 한국의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국민연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있는 인구가 상당하다.
현재 한국은 전체 18~59세 인구가 약 3천만 명 정도인데 이 가운데 약 1/3인 1천만 명 정도가 국민연금 제도에 완전하게 편입되지 못한 '적용 사각지대'에 있다. 적용 사각지대가 감소하지 않는 한 이들은 노인이 돼 '급여 사각지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럴 경우 결국 국가가 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고, 이는 미래 세대의 또 다른 부담으로 연결되는 문제이다. 연금개혁에 성공해도 미래세대의 노인 부양 부담이 줄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이다.
■ 적용 사각지대 가장 넓은 세대는 18~26세 청년
그렇다면 적용 사각지대가 가장 넓은 연령대는 어딜까? 바로 18~26세 청년층이다. 이 세대 인구 가운데 약 70%가 연금제도 밖에 있다. 물론 이 시기에 국민연금에 가입 안 되어 있다고 해서 이들이 끝까지 사각지대로 남는 것은 아니다. 이후 취직하면 연금제에 편입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년기의 높은 실업률과 대학 진학률, 병역 의무 등은 한국인이 충분한 연금을 확보하는 데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유럽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곧바로 연금에 가입하는 사람이 많고, 젊은이들에게 정부가 다양한 경로로 보험료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급격한 고령화와 저출생으로 국민연금에 불만이 큰 젊은 세대에 대해 정부가 보험료(국고) 지원을 강화하면 '청년세대 부담 완화와 사각지대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또 국민연금이 남성 위주로 설계된 탓에 가정주부 등 여성의 연금 확보가 취약한 것도 문제다. 결국 정부가 구조개혁과 국고 지원이라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 말로만 '전 국민 연금시대'...사각지대 방치한 정부의 실패
보건복지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사각지대 해소에 대한 주문이 나왔지만, 정부는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은 적이 없다. 국민연금 제도는 1999년 도시지역 자영업자를 가입 대상에 포함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전 국민연금 시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 연금 수급을 위한 최소 가입 기간도 15년에서 10년으로 줄여 연금제도 수혜 대상자 기준을 크게 늘렸다.
과거 정부는 국민의 노후를 국가가 책임지겠다며 국민연금 가입을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그러나 '전 국민 연금시대'라는 약속을 국민들의 자발적인 가입과 보험료 납부에만 기댔던 것인가? 그동안 정부는 비정규직이나 청년,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이 국민연금을 통해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적 지원과 배려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특히 IMF 이후 노동 환경은 급변했고 이에 따라 미래 노후 빈곤을 예약해 놓은 '적용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 소홀했다. 노인 빈곤 문제가 심각해지자 기초연금을 도입한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정작 부실해지고 있는 국민연금에 대한 지원 대책은 없었다. 국민연금 도입 초기 '연금을 통한 든든한 노후'라는 약속은 이미 퇴색된 지 오래다.
■ 국고 투입해 사각지대 해소해야...재원 마련 어떻게?
대선 이후 본격적으로 펼쳐질 국민연금의 구조 개혁에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겠지만 결국은 돈 문제로 귀결될 것이 분명하다. 과연 무슨 돈으로 복지 재정을 만들 것이냐 또 미래세대에게 예고된 엄청난 부담을 어떻게 줄일 것이냐의 문제다. 그래서 아직 인구와 재정의 여유가 있는 지금부터 국고를 조금씩 투입해서 미래 세대에게 세금 폭탄을 던지지 말자는 논의가 나오는 것이다.
그럼 국고를 어떤 명분으로 지원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는데, 그중에 가장 유력한 것이 청년, 여성,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악자에 대한 보험료 지원으로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원종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전문위원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적극적으로 국고를 투입해야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이 확보된다고 말한다.
원종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전문위원(수탁자책임위원회 위원장)
원종현 전문위원은 <국민연금 사각지대와 지속가능성 확보 방안>이란 보고서를 통해 선제적 국고 투입을 통해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면서, 특히 정부가 국민연금 초기 가입자인 18~26세 젊은이들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원종현 위원은 "OECD 국가 가운데 국고 투입이 가장 적은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에 대한 국고 투입을 넓히는 게 우선 중요하고, 재정 투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기초연금 재원도 점진적으로 국민연금을 지원하는 용도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기초연금에 드는 정부 재정은 2023년 기준 이미 연간 22조 원(GDP 약 1%)을 넘어섰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기초연금을 물가와 임금상승률을 고려해 현재 기준을 맞추려면 2040년에 57.2조 원(GDP 1.9%)이 필요하고, 2080년엔 111조 원(GDP 2.8%)에 필요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원종현 전문위원은 GDP의 1% 수준의 국고를 국민연금에 사용하면 약 20년 동안은 정부안보다 재정 부담이 커지지만 이후 모든 세대에 걸쳐 비슷한 부담을 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재정을 아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현재 세대가 발생시킨 미적립부채를 해소하고 세대간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선제적 국고 투입이 필요하다는 카이스트 김우창 교수의 416개혁안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아직 국민연금을 전혀 받지 못하는 노인들이 많기 때문에 당장 기초연금을 줄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만 18세가 됐을 때 이미 국민연금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던 1970년대생이 노인이 되는 시점부터는 정부 재정을 그대로 쓰는 기초연금보다 국민연금을 지원해 노후 소득을 높여주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정부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험료를 미리미리 지원해 줘서, 이들이 은퇴 이후 기초연금액 이상의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미래 재정 부담을 줄이는 길이라고 조언한다.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은 경제활동인구가 꾸준히 늘어나고 한국 경제도 꾸준히 성장했다. 언제든지 현재보다 미래가 더 풍요로울 것이라고 믿었던 시대를 살았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대는 지금과는 사뭇 다를 게 뻔하다. 인구는 줄고 경제는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 경제활동인구가 충분히 있을 때 구조개혁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연금 재정이 파탄 나든, 아니면 미래세대가 세금 폭탄을 맞든 대한민국의 노인과 미래세대가 모두 암울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국민연금 구조개혁도 빠를수록 모두에게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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