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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송조합선 수익 악화에 “환승체계 탈퇴” 초강수 선언
서울시 “요금 인상하고 예산 지원”…근본 해법 찾아야
지난 5월 22일 서울 은평공영차고지에 마을버스가 대기해 있다. 연합뉴스


[주간경향] 지난 5월 27일 오전, 서울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5번 출구로 나와 370m를 걸었다. 주유소를 돌아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자 저 멀리 높은 고개 위로 아파트가 보였다. 서울 관악구 행운동 까치산 언덕에 있는 관악파크푸르지오 아파트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쭉 이어졌다. 25도의 더운 날씨에 급경사 길을 걸어오르자 땀이 흐르고 숨이 찼다.

경사 길을 하나 지나니 또 다른 경사 길이 나왔다. 등산하는 것처럼 530m가량을 걸어오른 끝에 아파트단지에 도착했다. 이곳 아파트에선 가까운 지하철역인 낙성대역과 서울대입구역,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는 대로변까지 운행하는 마을버스가 없다. 주민들은 매번 이렇게 걸어서 왔다 갔다 해야 한다.

지하철과 시내버스가 닿지 않는 고지대나 골목을 다니며 시민들의 발이 돼주는 서울 마을버스가 최근 진통을 겪고 있다. 서울시 마을버스 운영사들의 모임인 서울시마을버스운송사업조합이 지난 5월 22일 총회에서 서울시에 재정지원금 증액을 요구하며 환승체계(서울시와 맺은 대중교통 환승합의서) 탈퇴를 선언했다. 마을버스 업체들과 서울시가 갈등을 겪는 한편 마을버스가 없어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도 있다. 전문가들은 예산 늘리기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근본적이고 장기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후 승객 수 감소, 수익에 직격탄

서울엔 252개 노선, 1630대의 마을버스가 다닌다. 시내버스는 적자가 났을 때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준공영제다. 반면 마을버스는 이익과 손실 모두 업체가 책임지는 민영제다. 다만 마을버스가 환승체계에 포함되면서 환승에 따른 손실을 보전해주는 차원에서 서울시가 마을버스 업체들에도 일정액의 재정지원금을 준다. 대중교통의 공공성을 고려한 지원이다. 지난해 361억원, 올해 412억원의 재정지원금이 지급됐다.

운송조합은 이 재정지원금이 너무 적어 운영이 힘들다고 주장한다. 마을버스 기본요금이 현재 1200원인데 환승 승객의 경우 최저 439원까지 떨어진다는 것이다. 운송조합 관계자는 통화에서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서울시는 운송원가를 제대로 반영해주지 않는다”며 “서울시가 환승제도를 시행하면서 기본요금을 다 못 받고 마을버스에 손해가 발생한 것인데 100% 지원해주지 않으니 화가 나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서울시는 마을버스 1대당 하루 수익이 48만원 아래일 때 23만원 한도 내에서 지원한다. 수익이 25만원 아래면 마이너스 운영인 셈이다.

지난 5월 27일 서울시 관악구 서울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에서 행운동 관악파크푸르지오 아파트로 가는 길목. 마을버스가 없어 가파른 오르막을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이혜리 기자


마을버스 업체들의 사정은 승객 수 감소와도 맞물려 있다. 코로나19 이전 하루 110만명대이던 마을버스 승객 수가 코로나19 이후 80만명대로 떨어졌다. 개인용 이동장치(PM) 이용이 확산하고 경전철이 들어서면서 승객 수가 회복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승객 수 감소는 수익 감소로 이어진다. 마을버스 업체들이 ‘운전기사 구하기도 힘들 정도로 운영이 어렵다’고 호소하다 보니 각 자치구는 개별적으로 운전기사에게 30만원을 지급하거나 마을버스 업체 손실을 보전해주고, 아예 자치구 차원에서 공공버스를 운영하는 사례도 생겼다. 서울시 쪽에선 2023년 이미 마을버스 기본요금을 900원에서 1200원으로 올렸고, 재정지원금 규모도 늘렸다는 입장이다.

다른 한편에선 마을버스를 만들어달라고 아우성친다. 행운동 관악파크푸르지오 아파트 경로당에서 만난 고귀만씨(76)는 2015년부터 지금까지 10년째 구청에 마을버스 노선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경로당 회장인 고씨는 노인들로부터 마을버스가 없어서 힘들다는 하소연을 들었다. 이곳에 사는 노인들은 주로 서울대입구역 쪽 중부시장에서 장을 보거나 그 인근 병원을 이용한다. 무거운 짐을 든 채 언덕길을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환경은 노인들에게 더 치명적이다. 임시방편으로 아파트 주민들이 각자 돈을 부담하며 셔틀버스를 운영하지만 낮시간대만 다니고 배차시간이 길다.

고씨가 마을버스 추진위원장을 맡아 구청, 마을버스 업체 등을 찾아다니며 마을버스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수차례 설전을 벌인 끝에 문제의 핵심이 ‘수익성’인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주민들이 교통의 어려움을 이야기해도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무도 나서지 않은 것이다. 고씨는 “아파트가 363세대이기 때문에 수익성이 안 맞는다는 것”이라며 “구청장이 몇 번 바뀌는 동안 어떻게 수익이 나게 할지 머리를 싸매고 같이 연구했다. 마을 총회를 수도 없이 열고 노선도 수십 번 그렸다”고 했다. 마을버스 노선 신설은 거의 해결됐다가 인근 초등학교 협의 문제가 남아 아직 진행 중이다.

고씨는 “마을버스가 우리에겐 생존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중간에 몇 번씩 쉬면서 올라와도 힘이 든다.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면 다치는 것이고, 급경사 계단은 죽음”이라며 “마을버스는 서민의 발이기 때문에 필요한 동네는 꼭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지역에 산 지 40여년 된 유상훈씨(75)도 “아내가 다리가 아픈데 꼭대기 살아서 그런다고 한다. 무거운 것을 들고 올라오느라 고생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 5월 22일 서울의 한 대학교 앞에서 학생들이 마을버스 탑승을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마을버스는 서민의 발, 생존의 문제”

이런 상황에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마을버스 공영제·준공영제 도입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훈배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은 “승객 수가 감소하고 운전기사 구하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마을버스 운행 횟수가 줄었다. 배차시간이 길면 승객들이 더 타지 않는다”며 “마을버스 업체들의 잘못도 분명히 있고, 서울시도 책임이 있는데 서로 회피하면서 갈등하는 양상처럼 비치고 있다”고 했다.

김 정책위원은 “마을버스는 돈을 푸는 방법으로는 해결되지 않고, 결국 공적 운영이 필요하다”며 “이미 한국에서 버스를 지방자치단체나 산하 공기업이 직영으로 운영하는 지역이 있고, 서울도 시행할 수 있는 토대가 있다”고 했다.

마을버스 업체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시내버스에 비해 마을버스 운영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지난 2월 서울시 자료를 보면, 133개 마을버스 회사의 영업손익 분석 결과 흑자회사가 69개, 적자회사가 64개였다. 절반 이상이 흑자를 냈다. 또 감사 결과 비적정 의견이 41개였다. 회계 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장재민 한국도시정책연구소 소장은 “(현재 마을버스 운영에서) 민영제의 장점이 많이 사라졌지만, 준공영제는 업자들도 원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수익이 많이 떨어진 데는 서울시가 틈새마다 재정지원금으로 보전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장 소장은 “장기적으로 지하철과 보완될 수 있는 수단으로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예산 늘려주는 것밖엔 안 된다”며 “무조건 돈을 많이 달라는 방식보다는 산악지역에 거주하는 고령자들에게 마을버스를 무료화하고 이를 시가 지원하게끔 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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