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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레코닝’ 30년 시리즈의 마침표인가
1960년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은 이념의 시대는 끝났다며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예고했었다. 2025년 현재는 할리우드의 톰 크루즈가 ‘미션 임파서블 : 파이널 레코닝’을 통해 영화의 시대, 흔히들 ‘영화적이라 불리는 대형 영화’의 시대가 끝났다며 커튼을 내리고 있다.
‘미션 임파서블’은 1996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1편을 만든 이후 이번 8편까지 30년간 시리즈로 이어져 왔다. 이 기간은 원전인 TV시리즈가 1966년부터 1973년까지 시즌 7개로 이어진 것과 비교된다. (이 드라마는 국내에서 1975~1988년까지, 군사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에 ‘제5전선’과 ‘돌아온 제5전선’이라는 이름으로 KBS가 방영했다.) 톱스타 한 명이 영화를 히트시키고 수십년 간 같은 제목의 시리즈를 만들어 나가는 시대의 종언은 실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대중들이 생각하는, 이른바 ‘극장용 영화’가 서서히 수명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제 이런 시리즈는 더 이상 나오지 못할 것이며, 나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건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57)란 한편으로 시네마스코프 영화를 대표했던 클라크 게이블의 시대가 끝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스타는 사라진다.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퇴장은 이제 할리우드 영웅주의도, 미국 중심의 세계 패권 구조도 다른 시기로 넘어 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미션 임파서블 : 파이널 레코닝’이 시리즈의 마지막이냐는 점에 있어 이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다소 논쟁이 있다. 톰 크루즈가 죽지 않았으니 끝나지 않았다는 측과 이제 그가 떠났으니 사실상 끝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측이 있다. 제작자이기도 한 톰 크루즈와 감독인 크리스토퍼 맥쿼리도 엔딩을 다소 모호하게 끝내고 있기는 하다.
30년간 시리즈 8편, 5.7조원 수익 올려
지난 17일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영화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이번 8편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최종장이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사진 롯데컬처웍스]
산업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쉽게 멈출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지난 30년간 이 시리즈는 8편 제작을 통해 투자배급사인 파라마운트에 물경 41억3400만 달러(5조6635억8000만원를 벌어 줬다. 이걸 그만한다는 얘기는 할리우드로서는 대어 낚시를 그만두겠다는 셈이 된다. 한국 시장도 다소 눈빛이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지난 30년간 모은 국내 관객 수만 3218만 명이다. 관객 수가 이렇다면 부가 판권 수익도 엄청났다는 얘기이다. 파라마운트는 국내에서 UIP란 직배 형태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롯테엔터테인먼트가 국내 배급을 대행하고 있다. 한국 영화시장을 움직이는데 있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매우 중요한 변수였다.
1996년부터 시작된 미션 임파서블 1~6편. 이 시리즈는 30년간 총 8편이 제작됐고 국내 누적 관객수만 3200만 명이 넘는다. [사진 롯데컬처웍스]
1996년부터 시작된 미션 임파서블 1~6편. 이 시리즈는 30년간 총 8편이 제작됐고 국내 누적 관객수만 3200만 명이 넘는다. [사진 롯데컬처웍스]
1996년부터 시작된 미션 임파서블 1~6편. 이 시리즈는 30년간 총 8편이 제작됐고 국내 누적 관객수만 3200만 명이 넘는다. [사진 롯데컬처웍스]
이번 ‘파이널 레코닝’는 몇 번이고 불굴과 불멸의 대명사인 주인공 이단 헌트(톰 크루즈)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장장 169분의 러닝 타임을 이어 가면서 그를 두번이나 죽이려 한다. 해저에 침몰한 러시아 핵잠수함 세바스토폴호에서의 탈출 신은 거의 해리 후디니가 탈출 마술로 보여줬던 고전적 서스펜스를 오마주하는 듯이 보인다. 이단 헌트는 여기서 일단 한번 숨을 멈추기도 했다. 극 후반부에 가서는 헌트가 악당 가브리엘(에사이 모랄레스)이 모는 경비행기에서 격투를 벌이다가 추락하는 장면이 나온다. 극장 안에서는 아 결국 이단 헌트를 ‘죽이는구나’라는 탄식 아닌 탄식이 터진다. 그러나 이번 ‘파이널 레코닝’의 결론은 헌트가 이끄는 비밀첩보조직 IMF(Impossible Mission Force)를 해체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영화는 주요 멤버들, 곧 벤지(사이먼 페그), 그레이스(헤일리 앳웰)와 파리(폼 클레멘티에프) 등이 마치 연극무대에서 핀 조명 후 암전되면서 배우가 사라지듯 페이드아웃 되는 것으로 연출된다. 이들은 해체된다, 아니 사라진다. 이단 헌트도 사라진다. 아마도 ‘불가능한 임무’를 위해 헤어진 연인이자 아내 줄리아(미셸 모나한)에게 돌아갔을 수도 있을 것처럼 느껴지게 찍었다.
1996년부터 시작된 미션 임파서블 1~6편. 이 시리즈는 30년간 총 8편이 제작됐고 국내 누적 관객수만 3200만 명이 넘는다. [사진 롯데컬처웍스]
1996년부터 시작된 미션 임파서블 1~6편. 이 시리즈는 30년간 총 8편이 제작됐고 국내 누적 관객수만 3200만 명이 넘는다. [사진 롯데컬처웍스]
1996년부터 시작된 미션 임파서블 1~6편. 이 시리즈는 30년간 총 8편이 제작됐고 국내 누적 관객수만 3200만 명이 넘는다. [사진 롯데컬처웍스]
이 영화의 마니아 팬들은 그나마 안도했다. 지난 몇 년간 할리우드는 시리즈의 주인공들을 가차없이 죽게 함으로써 팬들을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60년 가까운 세월 25편이 나오며 극장용 영화의 황금광 시대를 같이 해 온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도 2021년 ‘노 타임 투 다이’에서 본드를 죽이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제 더 이상 제임스 본드는 없다. 물론 007이라는 암호명은 누군가 대체할 것이다. 비교적 현대 시리즈물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존 윅’도 2023년 4편을 끝으로 그를 사망하게 함으로써 서사의 일단락을 끝냈다. 할리우드 영웅은 죽지 않는다지만 언제부턴가 할리우드는 영웅을 죽임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2016년 감독 잭 스나이더가 만든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슈퍼맨(헨리 카빌)도 죽는다. 배트맨(벤 에플렉)은 다이애나 프린스, 곧 원더 우먼(갤 가돗)과 함께 아들 클라크 켄트(슈퍼맨이 가장하고 다녔던 지구인의 이름)의 장례를 치르는 인간 엄마 마사(다이안 레인)와 연인 로이스(에이미 아담스)를 나란히 지켜 본다. 워싱턴DC에서는 조포와 함께 가짜 빈 관의 운구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배트맨은 다이애나에게 “그가 살아서 이루지 못한 것을 죽어서라도 이루게 해 주겠어”라고 말한다. 다이애나가 말한다. “그들(대중들)이 우리를 원할까
주인공 죽음으로 시리즈물들 막 내렸지만
잭 스나이더 감독의 ‘배트맨과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 [사진 각 제작사]
많은 이들이 이번 8편을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마지막이라고 짐작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가장 중요한 것은 톰 크루즈의 외관 때문이다. 톰 크루즈는 1962년생이다. 한국 나이로 예순넷이다. 이번 작품의 전편인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때까지만 해도 몸의 근육을 만들고 얼굴에 이런 저런 성형술을 받았던 데다 스크린 상에서 보정까지 해서 여전히, 그리고 비교적 젊은 모습을 유지했다. 이번에는 자신의 나이 그대로 나온다. 얼굴은 흘러 내렸고 벗은 상체 역시 근육을 찾아보기 어렵다. 죽을 위기의 공중 비행 신에서도 이단 헌트는 진정으로 힘에 부쳐 보인다. 톰 크루즈가 이번 회차를 끝으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의 하차, 첩보액션 영화권에서의 은퇴를 결심했음을 내비친다.
또 다른 이유는 이번 ‘파이널 레코닝’의 오프닝 시퀀스가 전작 7편의 이미지를 조각조각 이어 붙인 일종의 콜라주였다는 점이다. 에리카 슬론 여성 대통령(앤젤라 바셋. 그녀는 ‘미션 임파서블 : 폴 아웃’에서는 CIA 부장, 최고책임자였다)은 이단 헌트에게 은둔에서 벗어나 국가로 돌아오라는 아날로그 방식의 녹화 테이프를 통해 지령을 내린다. 그렇게 그간의 이단 헌트가 보여 줬던, 이 시리즈가 그려 왔던 행적을 되짚는다. 영화든 사람이든 과거를 돌아본다는 건 앞으로 죽을(마지막을 끝낼) 자리를 알아 본다는 뜻이다.
케빈 코스트너가 나온 대하드라마 ‘옐로우스톤’. [사진 각 제작사]
아무리 막대한 수익을 만들어 주는 프로젝트라 해도 할리우드가 생각하기에 이제 극장을 통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하는 게 부담스러워진 시대다. 이번 8편 ‘파이널 레코닝’은 4억 달러(약 6000억원)가 들었다. 지난 14~23일사이에 전 세계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28일 현재 2억2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상황이다. 할리우드의 제작 트렌드를 봐도 더 이상 대작 영화의 시대를 이어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극장 플랫폼의 시대는 끝이 났다. 이제 대작은 6~12부작에 이르는 TV드라마로 대체되고 있다.
케빈 코스트너가 나온 대하드라마 ‘옐로우스톤’이 대표적이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개 시즌의 드라마로 제작돼 시즌 별 에피소드가 9~10개씩 방영된 이 드라마는 몬타나에서 대목장을 운영하는 존 버든 일가의 이야기다. 대목장의 이야기인 척 사실은 미국 사회의 정치역사를 담고 있다. 시대가 바뀌고 주인공의 캐릭터는 좀 더 현실적이고 정치적이 되어 간다. 이 드라마가 바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8개를 만들었던 파라마운트 픽쳐스 작품이다. 영화가 바뀌고 있고 극장 문화도 변해가고 있다. 톰 크루즈가 이끈 한 시대가 가고 있다. 서글픈 일이지만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인걸도 간 데 없고 산천도 더 이상 의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