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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대전 함께하는교회 사진전 ‘재, 건’
경북 산불 현장 네 차례 찾은 목사의 기록
지난 19일 대전시 유성구 함께하는교회(김요한 목사) 지하 2층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재(災), 건(建)’ 사진전 전경의 모습. 함께하는교회 제공


30일 대전시 유성구 함께하는교회(김요한 목사) 지하 2층 갤러리. ‘재(災), 건(建)’ 사진전 마지막 날. 전시장에 들어서자 잔잔한 찬양 소리 위로 불길과 뉴스 보도음이 겹쳐지며 묵직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가운데 놓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탄 가스통, 한켠에 쌓인 불에 그을린 십자가들, 그리고 마지막 코너를 가득 채운 관람객들의 엽서들이 전시장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소중한 삶의 터전이 무너진 그곳에 다시 아름다운 일상이 펼쳐지길 기도합니다.”
“이제라도 기도와 직접적인 도움에 동참합니다.”
“어려움을 당한 이들과 함께하며 주님의 뜻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이 엽서들은 관람객들이 남긴 기도와 위로의 메시지들로 전시 기간 모인 기부금과 함께 산불 피해 교회에 전달될 예정이다.

관람객들이 지난 19일 대전시 유성구 함께하는교회(김요한 목사) 지하 2층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재(災), 건(建)’ 사진전을 감상하고 있다. 함께하는교회 제공


전시 제목 ‘재, 건’은 타버린 잿더미(재, 災) 위에 희망과 믿음의 공동체가 다시 세워지길(건, 建) 바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함께하는교회에서 노숙인과 이주민 사역을 맡고 있는 김기중 목사가 직접 기획하고 촬영했다. 김 목사는 지난 4월 한 달 동안 네 차례 경북 산불 현장을 찾아 1000장 넘는 사진을 찍었고, 이 중 40장을 선별해 전시로 구성했다.

전시는 총 다섯 개의 파트로 나뉘었다. △1부 ‘재(災)’는 피해의 전모를, △2부 ‘재앙(再殃)’은 일상의 붕괴를, △3부 ‘재회(再會)’는 교회의 흔적을, △4부 ‘재연(再燃)’은 회복의 조짐을, △5부 ‘재건(再建)’은 다시 세워지는 공동체의 꿈을 담았다.

산불로 사라진 ‘빛과소금교회’ 지하실에서 살아남은 나무 십자가. 최병진 목사가 손수 만든 것이다. 함께하는교회 제공


2부에서는 불에 녹아내린 싱크대, 납작해진 가스통, 흔적만 남은 변기의 모습이, 3부에서는 전소된 빛과소금교회의 부엌, 3·1운동에 앞장섰던 매정교회의 무너진 지붕, 간판만 남기고 모두 사라진 석봉교회의 전경이 눈에 띄었다. 잿더미 속에서도 끝내 남은 것은 나무로 된 십자가였다. 관람객들의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인 것도 이 십자가였다. 목공을 배우던 최병진 목사가 직접 만든 이 나무 십자가는 지하실에 보관돼 있던 덕분에 2000도가 넘는 화염에도 공기가 차단돼 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이 십자가들은 실제 오브제로 전시장에 전시됐다.

4부는 ‘사람’에 초점을 맞췄다. 생계를 위해 가스 배달을 하던 김헌영 집사 빛과소금교회에서 사역하던 최 목사의 이야기다. 이들은 불길 속에서 일터와 교회를 모두 잃었지만 사진 속 얼굴은 환한 웃음으로 빛나고 있었다.

30일 대전시 유성구 함께하는교회(김요한 목사) 지하 2층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재(災), 건(建)’ 사진전 파트 4에 있는 사진들.


김 목사는 “불길이 지나간 자리는 전쟁터 같았다”며 “잿빛 세상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려 애쓴 이들의 얼굴에서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이어 “재난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폐허 위에 다시 일어서야 하는 이들에게 말없이 손을 내밀어야 할 때”라며 “말이 끊긴 자리에서 이어져야 할 것은 서로를 위한 진실한 마음뿐이며 그 마음이 바로 ‘재건’의 유일한 초석”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두 가정의 이야기만 담았지만,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누군가의 품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봄의 새싹처럼 움트고 있다”며 “혼돈과 슬픔, 공허와 무기력의 심연 속에서 이들은 잿빛을 이겨낼 세상의 빛이며 우리가 모두 그 빛이 되어 세상을 밝혀가길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관람객들이 지난 19일 대전시 유성구 함께하는교회(김요한 목사) 지하 2층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재(災), 건(建)’ 사진전을 감상하는 모습. 함께하는교회 제공


사진전은 지난 15일 개막 이후 약 1000여 명이 찾았다. 함께하는교회 성도는 물론 대전 지역 아동쉼터 직원과 학생, 한밭대 이주민 유학생, 노숙인 청년 등 다양한 이들이 전시장을 찾았고, 단순한 관람을 넘어 손편지와 기도, 기부로 마음을 전했다. 교회 성도 최영선(53)씨는 “잿더미가 된 집 앞에서 환하게 웃는 피해 가족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며 “침체된 분위기일 줄 알았지만 오히려 희망이 있었다. 실제로 이들 두 가정이 자주 만나 식사하며 연대하고 있다는 사실도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청년문화기획사 ‘문화공작소’와 협업해 진행됐다. 디자인과 음향, 기획에 참여한 이들 중 절반은 교회 성도, 나머지는 외부 신앙 청년들로 모두 자원봉사자였다. 디자인은 신혜수 씨, 영상과 음악은 이승연·정명환 씨, 공간 구성은 이성주·최영선·신혜수·이승연 씨가 맡았다.

김기중 목사와 유명한 목사(오른쪽)가 30일 대전시 유성구 함께하는교회(김요한 목사) 지하 2층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재(災), 건(建)’ 사진전 한 가운데 서 있다.


전시 큐레이팅을 맡은 문화공작소 이사이자 함께하는교회 문화사역 콘텐츠 책임자인 유명한 목사(37)는 “전시가 단순한 감상의 자리가 아니라 ‘참여의 공간’이 되길 바랐다”며 “관람객이 잠시 멈춰 생각하고 그 감정이 기도와 예배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참여자 중에는 20대 노숙인 출신 청년도 있었다. 김 목사는 “3년 전 대전역 밤한끼 사역 중 만난 청년과 함께 사진을 공부했는데 이번 전시에 촬영자로 함께하게 됐다”고 말했다. 해당 청년은 현재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립을 준비 중이다. 김 목사는 “이러한 참여 자체가 교회 공동체가 함께하는 치유의 과정이자 새로운 가능성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전시 이후에도 함께하는교회의 연대는 계속되고 있다. 김 목사를 비롯한 일부 성도는 여름휴가를 영덕에서 보내며 지역 상권을 돕고 있고, 교회의 이주민 공동체 수련회와 소그룹 모임도 영덕에서 열릴 예정이다. 피해 주민을 위한 식사 지원, 고용 연계 등 실질적인 연대도 시작됐다. 지난 25일 주일예배 후에는 최 목사 부부와 김 집사 부부를 초청해 특별한 대담도 열렸다. 참석자들은 손을 맞잡고 눈물로 이재민을 위해 기도했다.

함께하는교회 성도들이 지난 15일 대전시 유성구 함께하는교회(김요한 목사) 지하 2층 갤러리에서 빛과소금교회의 최병진 목사와 김헌영 집사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모습. 함께하는교회 제공


김 목사는 이날 들은 두 사람의 근황도 전했다. 교회와 집, 생계 기반이 모두 사라진 그들은 여전히 친척집이나 민박집 등 임시 거처에 머물고 있다. 빛과소금교회는 인근 기도원의 공간을 빌려 예배를 드리는 중이다. 김 목사는 “최 목사가 ‘아직 간장이나 양념을 사는 것도 두렵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며 “그게 바로 ‘일상 회복’이라는 걸 알기에 차마 시작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숨’입니다. 화재 당시 숨 한번 쉴 수 없던 현실, 그리고 지금도 숨조차 가쁘게 이어가는 현실. 그 숨을 다시 쉴 수 있도록 사람들의 관심이 계속 이어졌으면 합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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