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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김모 군은 지난 수년간 온라인 게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임 속 세상으로 들어가면 평일 4~5시간, 주말에는 8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나마 게임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스마트폰 속 넘쳐나는 콘텐츠들이 김 군을 유혹합니다. 특히 '유튜브 쇼츠' 콘텐츠들을 보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새벽을 맞을 때가 잦습니다.

김 군 스스로도 그 중독성을 잘 알고 있지만, 한번 빠져들면 멈추기가 어렵다고 호소합니다. 김 군은 현재 스트레스 장애와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 청소년이 '잠'을 빼앗길 때 벌어지는 일
김 군의 어머니는 여러 방법을 동원해 아들을 달래도 보고 다그쳐도 봤지만 허사였습니다. 특히 게임의 경우 중간에 끊고 나오기가 어려워, 식사 시간에도 마치 PC방에서처럼 컴퓨터 앞에 밥을 차려 가져다줘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지역 심리상담센터도 찾아가봤습니다. 상담 직후 일시적으로 달라지긴 했지만 김 군은 금세 중독적인 상태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도 지쳐갔습니다.

게임과 소셜미디어 등 디지털 콘텐츠들이 치명적인 첫째 이유는, 성장기 청소년들의 수면을 손쉽게 빼앗아간다는 데 있습니다. 김 군 역시 수면의 질이 심각하게 망가져 있는 상태로 잠을 잘 못자게 된 이후 집중력이 떨어진 것은 물론 면역력도 약해져 자주 몸살 감기를 앓았습니다.

김 군의 상태를 본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배승민 교수는 "수면 장애가 몇 년 째 누적된 상황이라면 지금 즉시 교정해줘야 한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러면서 "디지털 콘텐츠의 첫번째 문제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수면 관리가 안 되게 만든다는 점"이라고 강조합니다.

"수면의 깊이가 얕아지고, 수면 시간이 짧아지면서 뇌 회복 시간이 줄어들고, 이 때문에 2차적으로 발생하는 스트레스의 누적, 집중력 부족, 그로 인한 우울·불안의 증가 등 여러 결과들이 다 같이 직·간접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배 교수의 걱정 어린 지적입니다.

■ '중독 상태'가 청소년에게 더 치명적인 이유
소셜미디어, 동영상 스트리밍, 온라인 게임 등 디지털 콘텐츠들 다수가 심각한 중독성 콘텐츠라는 점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것이 청소년의 우울과 불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최근 유명 과학저널「네이처」는 영국 청소년 3,3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 연구에서 '우울·불안 증상이 있는 청소년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소셜 미디어를 하루 50분 이상 더 시청했고, 이용 후 기분은 더 나빴다'는 결과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과학저널 ‘네이처’ 캡처 화면. 우울과 불안증이 있는 10대의 경우 소셜 미디어를 하루 50분 이상 더 사용했다.

중독 상태의 뇌는 계속해서 자극적인 것만 찾게 되고, 이로 인해 집중력·실행 능력·자기 효능감을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무기력증·불안·우울감을 키우는 겁니다.

이 같은 악영향이 성인보다 청소년에게 더 치명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계획을 정하고, 윤리적 판단을 내리고, 시간을 배분해 활용하고, 어떤 행위를 참아야 할 때를 알고 통제하는 뇌 회로는 주로 10세 이후부터 20대 초반에 발달하고 성장합니다. 게임 등 중독성 콘텐츠들은 우리 뇌에 즉각적인 보상을 경험하게 하면서 계속 빠져들게 만듭니다. 계획과 통제를 주관하는 뇌 회로가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잘못된 길로 접어든 채 뇌가 자라는 겁니다.

배승민 교수는 "전전두엽과 같은 인간의 고차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뇌 영역은 적절한 수면을 취할 때 성장하는데, 중독성 콘텐츠들이 이를 가로막게 되고 이처럼 문제가 있는 상태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성장기 뇌가 발달하게 되면 나이가 들수록 교정이 어려워진다"고 지적합니다.

■청소년 마음건강 질환 '급증세'
청소년의 마음건강을 해치는 요소로는 대표적으로 '중독적인 디지털 콘텐츠', '공부 스트레스', '가족 문제', '친구 관계' 등이 꼽힙니다. 대부분의 경우 여러가지 요소가 겹치면서 문제가 발생하지만, 범람하는 디지털 콘텐츠와 학업 스트레스는 청소년들을 상시적인 스트레스 상태에 노출시김으로써 마음건강 관련 질환을 부추깁니다.

실제로 취재진이 지난 10년간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분석학 결과, 청소년들이 겪는 만성질환 1위는 우울증이었습니다. 6위까지가 마음건강과 직결되거나 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질환이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우울증, 불안 장애, 스트레스 장애 등 3개 마음건강 질환의 증가세를 보면, 10~19세 인구 1만 명당 환자 수가 가파르게 늘어 10년 전에 비해 약 3.5배로 증가했습니다.


■크면서 다들 겪는 일?…늦기 전에 '신호' 포착해야
전문가들은 문제 발생 초기에 대부분 '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를 포착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평소 성격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거나, 수면 패턴에 큰 변화가 있다거나, 식사량이 갑자기 줄거나 혹은 늘어나거나, 과제를 미루거나 하는 등 양상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부모·보호자들이 '사춘기에 그럴 수도 있지', '자라면서 괜찮아지겠지', '잠깐 그러다 말겠지' 하는 마음으로 '골든타임'을 놓쳐버릴 때가 많습니다. 이럴 경우 청소년의 뇌는 원치 않는 방향으로 성장하는 나무처럼 돌이키기 어려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늦기 전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배승민 교수는 이와 더불어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다양한 미래 가능성을 꿈꾸지 못하게 되는 것 또한 청소년들의 마음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긍정적인 가치를 스스로 발견해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어른들이 희망적인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습니다. 수많은 청소년들이 입시 경쟁에만 내몰린 채 자신의 개성에 맞는 적성과 미래를 찾아보기도 전에 자극적·중독적인 콘텐츠에 노출되는 환경은, 미래 세대의 마음건강에 도움되는 사회가 아니라는 뜻일 겁니다.

자료분석:이지연 윤지희/그래픽:최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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