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내란 세력 종식시켜야 하는데
이런 논평 내면 어떡하냐고 하지만
자기 삶 살려 분투한 여성들 생각나 슬퍼”
“내란 세력 종식시켜야 하는데
이런 논평 내면 어떡하냐고 하지만
자기 삶 살려 분투한 여성들 생각나 슬퍼”
지난 28일 유시민 작가(오른쪽)가 출연한 김어준씨의 유튜브 방송 ‘다스뵈이다’ 갈무리
한국여성의전화는 29일 논평을 내어 전날 공개한 유튜브 영상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유시민 작가가 한 발언에 대해 “여성은 대학생 출신 노동자 남성에 의해 고양되는 수동적 존재인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 배우자가 될 수 없는가, 기혼 여성의 지위와 주관은 남편에 의해 결정되는 부속품에 불과한가”라고 비판했다. 이 영상에서 유 작가는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배우자 설난영씨의 행보에 대해 설명하며 “균형이 안 맞을 정도로 대단한 남자와 혼인을 통해 고양됐다고 느낄 수 있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 배우자라는 자리가 설씨 인생에서는 갈 수 없는 자리다” 등의 발언을 했다.
하루 전날인 27일 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대통령 선거 3차 티브이(TV) 토론회에서 질의를 빙자해 여성 신체에 대한 폭력 행위를 언급하자, 한국여성의전화는 긴급 성명을 내어 “당장 대통령 후보에서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이 후보가 29일에도 “(인터넷 게시글이) 워낙 심한 음담패설이라 정제해도 한계가 있었다”고 항변하자 다시 한 번 성명을 통해 “여성 신체에 대한 폭력을 ‘음담패설’이라 할 만큼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며 후보직 사퇴를 재차 촉구했다. 그런데도 유 작가 발언을 비판하는 입장을 낸 데 대해 ‘왜 이준석, 국민의힘 편을 드는 것이냐’, ‘설난영씨가 노동 운동하는 여성들을 폄훼했는데 그런 인물을 존중하는 것이냐’ 같은 항의를 받고 있다. 한겨레는 30일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에게 유 작가 발언에 대한 비판 논평을 낸 이유를 물었다. 그는 해당 발언을 접하고 “그간 단체에서 상담해 온 지금은 50~60대가 된, 폭력적 구조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분투해 온 여성들이 생각나 눈물이 날 만큼 너무나 슬펐다”고 말했다.
―유시민 작가 발언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데 대해 항의하는 이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사무실로 항의 전화도 많이 오고, 내란 세력을 종식시켜야 하는데 이런 논평을 내면 어떻게 하느냐는 얘기도 있고요. 한편으론, 피해자 지원 단체가 왜 이런 입장을 내느냐, 왜 선택적으로 비판하느냐 그런 이야기도 있어요. 우선 한국여성의전화는, 40년 넘게 진보적 여성단체로 명맥을 이어오며 현대사를 함께 한 단체입니다. 1983년 전화기 한 대 놓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성폭력 상담을 시작했고요. 저희가 지원해 온 피해자들이 누구인지 중요한데, 주로 가정폭력·성폭력·교제폭력 사건 당사자들이에요. 이런 젠더 폭력은 상대와의 권력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인데요. 여기에는 성별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요인과 정체성이 같이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니까 해당 발언에서 문제가 된, 상대보다 학력이 낮고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이들이 더 취약한 피해자가 됩니다. 그래서 유 작가 발언을 접하곤 눈물이 날 만큼 슬펐어요. 우리 단체가 상담해 온 피해자들이 이런 발언을 듣게 된다는 점이요. 그 시대의 여성들이 살아온 모습 또한 생각나게 했어요. 가난하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자기의 것을 가질 수 없고, 폭력 속에서도 자식 키우겠다고 버텨온, 학교도 보내주지 않아 혼자 책 사서 공부하던 그런 여성들이 정말 너무 생각났습니다. 그런 여성들 덕에 발전할 수 있었던 우리 사회가 이들을 그렇게 표현해서는 안 되죠. 실제로 유 작가 발언을 듣고 사무실로 전화해 분노를 토로하는 중년 여성분들도 있었습니다.”
―설난영씨 개인에 대한 비판을 과하게 해석하는 거 아니냐는 반응도 있는데요.
“우리가 설난영씨 삶에 대해 얼마나 잘 알겠어요? 유 작가는 너무나 구체적으로 노동자 여성이 대학을 졸업한 남성과 결혼으로 신분이 상승해 갈 수 없는 자리에 있다 보니 고양돼 있다는 식으로 말을 하셨는데요. 우리는 이번 광장에서 나와 다른 상대의 차이를 가지고 차별하거나 비난하지 말자고 약속했잖아요. 2016~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하는 과정에서도, 박 전 대통령이 물론 잘못했지만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차별적 발언을 하거나 여성 비하 표현을 쓰지 말자고 한 맥락도 있었고요. 그게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모습이라고 광장에서 이야기를 해왔던 거고요. 그 와중에 시작된 대선인데 (거대 양당후보 누구도) 성평등 정책을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지도 않았어요. 그 긴 세월 동안 많은 사람이 차별금지법을 만들어 차별에 대응하자 촉구했는데 안했어요. 그래서 등장한 정치인이 이준석 후보 아닌가요?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조심스러운 시기일 수도 있지만 이럴 때 (잘못된 차별 발언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언제 또 이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저희는 40여년 내내 해온 이야기를 어제도, 그제도 해왔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