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한국의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 재무부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에 참석, 스콧 베센트 미?재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 대표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미국 연방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에 내린 ‘발효 차단’ 명령은 한·미 관세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단 7월8일로 잡았던 양국 협상 시한은 의미가 없어졌다는 평가가 우세한 가운데 협상 내용 면에서는 한국 측 유불리를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자동차·철강 등 품목관세로 협상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신중하게 사태를 예의주시하되 명분을 잃은 트럼프 행정부 처지를 역이용할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8일(현지시간) 미 연방법원인 국제무역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발효 차단 명령을 내림으로써 중국, 유럽연합(EU) 및 18개국과 미국 간 협상도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국가 비상사태’에 해당한다며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의거해 주요 무역상대 국가들에 상호관세를 부과했다가 중국을 제외하고 90일 유예한 바 있다. 현재 중국에는 30%의 관세를, 다른 나라들에는 기본관세 10%를 부과하고 있다. 한국은 25%의 관세(10% 기본관세+15% 상호관세)를 통보받은 후 미국과 한 달째 협상을 이어가는 중이다.
일단 미 연방법원의 이번 결정은 한·미 관세협상의 ‘시한’에 미칠 영향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상호관세가 무효화되면 (상호관세 유예 종료 시점에 맞춘) 7월8일이라는 시한이 의미가 없어진다. 협상을 조금 더 유연하게 할 여지가 생겼다”고 말했다.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또한 “상호관세가 없어지면 ‘7월 패키지’는 구속력 자체가 떨어지게 됐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협상 속도조절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호관세 무효’가 협상 내용 면에서 한국에 득일지 실일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사면초가’에 놓인 트럼프 행정부가 자동차·철강 등 품목관세를 가지고 협상 성과를 내려 압박 강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 원장은 “상호관세가 없어지게 되면 협상 전선이 좁아지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품목관세는 방어하려는 미국 측 의지가 강해질 수 있어 한·미 협상에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잘라 말하기는 애매하다”고 말했다.
미 연방법원 상급심에서 ‘상호관세 무효’가 뒤집어지거나,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방식으로 부활을 시킬 가능성도 있다. 김 부연구위원은 “지금과 상황은 다르지만, 1970년 리처드 닉슨 행정부가 한시적으로 보편관세 10%를 부과했는데 1심에서는 위법 판결이 나왔다가 2심에서 합법으로 판단한 전례가 있다”면서 “설사 상급심에서 법원 결정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해도, 트럼프 행정부는 미 의회에서 상호관세법을 통과시키는 방법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적법성’이란 명분을 잃은 점을 역이용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익명의 통상전문가는 “우리 입장에서는 큰 출혈을 일으키지 않고 최소한의 양보를 하면서 미국의 체면을 세워줄 수 있는, 미국이 과시하기 좋은 것들을 찾는 게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일단 정부는 ‘전략 변경’ 없이 협상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한 통상당국 관계자는 “상호관세가 ‘세모’가 된 것이지 ‘엑스’가 된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는 품목관세 철폐도 중요하게 보고 있는 만큼, 최종심까지의 상황을 지켜보되 협상은 (애초 목표한 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