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출신 신경과 의사가 만든 뉴냅스
뇌졸중 시야장애 치료 위한 ‘비비드 브레인’ 개발
국내 병원 처방 이어 유럽 시장도 진출 모색
201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 의료계에서 ‘디지털 치료제’라는 단어는 생소했다. 약도, 수술도 아닌 소프트웨어로 환자를 치료한다는 개념은 생경했고, 의료 현장에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신경계 질환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환자를 만난 신경과 의사가 이 새로운 길을 택했다. 손상된 뇌를 훈련해 회복을 유도하는 방식의 디지털 치료법, ‘뇌가 먹는 약’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강동화 서울아산병원 교수가 2017년 창업한 뉴냅스는 뇌졸중 후유증인 시야장애를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 ‘비비드 브레인’을 개발하고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이 치료제는 2019년 국내 최초로 디지털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을 받았고, 2023년 혁신의료기술로 지정됐다. 지난해에는 국산 디지털치료제로는 세 번째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시야장애, 눈 아닌 뇌에서 치료
지난달 18일 서울아산병원 내 뉴냅스 본사에서 만난 강동화 대표는 “뇌졸중 환자의 약 20%는 시야장애를 겪지만, 그동안 마비나 언어장애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다”며 “시야장애는 눈이 아닌 뇌의 문제로, 시각 정보가 후두엽에서 처리되는데 이 경로 중 하나만 손상돼도 일상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시야장애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환자들은 대부분은 자연 회복을 기대하거나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비비드 브레인은 반복적인 시지각 훈련을 통해 시신경 회로를 자극하고 뇌의 ‘가소성’을 유도하는 치료제다. 가소성은 뇌가 손상된 부위를 대신할 새로운 회로를 만들며 회복하는 생물학적 현상이다. 뉴냅스는 이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계했다. 인공지능(AI) 알고리즘으로 환자의 시야 손상 영역을 분석한 뒤, 가상현실(VR) 환경에서 몰입감 있는 맞춤형 훈련을 제공한다. 훈련 결과는 실시간으로 수집, 분석돼 환자에게 바로 피드백된다.
이날 본 비비드 브레인 훈련 중의 하나는 수백 ㎳(밀리초, 1000분의 1초) 단위의 짧은 시간 동안 서로 다른 두 패턴을 띄우고, 환자가 일치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이었다. 정답률이 높아질수록 패턴은 희미해지면서 난이도가 높아진다. 또 다른 과제는 회전하는 줄무늬 패턴의 회전 방향을 변별하는 형태였다. 단순한 게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각 뇌 회로를 자극하도록 정밀하게 설계된 과제다.
강 대표는 “VR 환경에서 시각 과제나 패턴 인식, 방향 구분 등의 과제를 반복 수행하면 뇌에서 무의식적 학습이 일어난다”며 “마치 한석봉의 어머니가 아들의 붓글씨 실력을 키우기 위해 불을 끄고 글을 쓰게 한 것처럼, 반복 훈련을 통해 뇌의 시각 기능 회복을 돕는다”고 비유했다.
독일부터 공략, 일본·중동·동남아도 타진 중
비비드 브레인은 의사의 처방을 통해 사용하는 치료제로, 하루 30분, 주 5회, 12주간 훈련하는 것이 기본이다. 뉴냅스는 지난해 12개 대학병원이 참여한 대규모 확증 임상시험을 통해 치료 효과를 입증했다. 총 104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시험에서 1~2차 유효성 평가 모두 기준을 충족했다. 일부 환자는 뇌 회로가 새롭게 형성되기도 했고, 시야가 회복되며 완치 수준의 호전을 보이기도 했다.
비비드 브레인의 치료 효과는 NNT(Number Needed to Treat, 치료 필요 환자 수) 수치로도 설명된다. 이는 환자 1명에게 원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 치료해야 하는 평균 환자 수를 의미한다. 뇌졸중 재발을 예방하기 위한 아스피린 처방의 NNT가 140인 반면, 비비드 브레인은 4에 불과하다. 강 대표는 “디지털 치료제 중 이 정도 수치를 기록한 건 매우 이례적”이라며 “우리가 만든 기술이 실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의미 있는 지표”라고 말했다.
훈련 방식이 직관적이고 몰입도가 높아 ‘순응도’도 높다. 순응도는 환자가 의사의 처방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나타내는 개념이다. 임상시험 참여자의 평균 순응도는 85.6%였으며, 일부 환자는 200% 이상 참여하기도 했다.
비비드 브레인은 2023년 9월부터 서울아산병원에서 정식 처방되고 있다. 뉴냅스는 디지털 치료제 특성에 맞춘 전용 처방 플랫폼 ‘이음’도 자체 개발해 병원, 의사, 환자가 모두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는 서울아산병원을 중심으로 전국 20여 개 병원이 뉴냅스와 협업 중이며, 향후 지방 뇌졸중 센터로의 확산도 준비 중이다.
지금까지 뉴냅스는 현재까지 219억원의 누적 투자를 유치했고, 84건의 특허 등록이라는 성과를 거두며 기술 기반의 의료 혁신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해외 시장 진출도 속도를 내고 있다. 뉴냅스는 독일의 CE 인증을 신청했고, 이르면 내년부터 유럽 시장에 진입해 수익을 낼 수 있을 전망이다.
강 대표는 “독일은 제도적으로 디지털 치료제가 자리 잡은 국가로, 현지화 장벽도 높지 않고 관련 인프라와 보험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첫 해외 진출 목표로 적합하다”며 “미국 시장은 높은 잠재력을 지닌 만큼 신중하게 접근하면서도 반드시 도전해야 할 시장”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일본, 중동, 동남아시아 시장도 차례로 진출을 타진 중이다.
제도권 정착이 과제…치료 영역 확장도 모색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국내 의료 제도권에서 정착하지 못한 상태다. 병원에서도 누가 이 기술을 담당할지, 어느 부서가 운영할지 명확하게 정하지 못하고 있다. 강 대표는 “디지털 치료제가 의료 현장에 도입되기까지 수많은 장벽이 있다”며 “현장과의 협업, 프로세스 정비 등 하나하나 물꼬를 트는 과정이 디지털 치료제 도입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디지털 치료제 산업의 가능성을 확신했다. 그는 “일부 의사들은 디지털 치료제를 왜 사용해야 하냐고 의문을 갖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도 (디지털 치료제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라 본다”며 “과거에는 신용카드조차 낯설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게 사용하듯, 디지털 기반의 진단, 예방, 관리, 치료 기술 역시 의료계에서 언젠가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흐름”이라고 했다.
최근 뉴냅스는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단의 2025년 10대 과제에 선정되며 임상시험 진행이나 글로벌 시장 진출에 필요한 지원을 받고 있다. 강 대표는 “전문 자문단에게 임상 데이터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시장 확장 전략까지 조언받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해외에 진출하기 위한 사업도 연결해 준다”고 했다.
뉴랩스는 치료 영역 확장도 모색하고 있다. 강 대표는 “뇌졸중, 시야장애, 사시, 황반변성 등 다양한 분야로 파이프라인(신약개발군)을 확장하며, 앞으로 디지털 기술과 의학의 융합 가능성을 넓혀갈 계획”이라며 “이 길이 어렵지만, 바람을 거슬러 날면 더 높이 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뇌졸중 시야장애 치료 위한 ‘비비드 브레인’ 개발
국내 병원 처방 이어 유럽 시장도 진출 모색
강동화 서울아산병원 교수 겸 뉴냅스 대표는 "디지털 치료제를 비롯한 디지털 기반의 진단, 예방, 관리, 치료 기술은 언젠가 받아들여야 할 흐름"이라고 말했다./조선비즈
201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 의료계에서 ‘디지털 치료제’라는 단어는 생소했다. 약도, 수술도 아닌 소프트웨어로 환자를 치료한다는 개념은 생경했고, 의료 현장에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신경계 질환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환자를 만난 신경과 의사가 이 새로운 길을 택했다. 손상된 뇌를 훈련해 회복을 유도하는 방식의 디지털 치료법, ‘뇌가 먹는 약’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강동화 서울아산병원 교수가 2017년 창업한 뉴냅스는 뇌졸중 후유증인 시야장애를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 ‘비비드 브레인’을 개발하고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이 치료제는 2019년 국내 최초로 디지털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을 받았고, 2023년 혁신의료기술로 지정됐다. 지난해에는 국산 디지털치료제로는 세 번째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시야장애, 눈 아닌 뇌에서 치료
지난달 18일 서울아산병원 내 뉴냅스 본사에서 만난 강동화 대표는 “뇌졸중 환자의 약 20%는 시야장애를 겪지만, 그동안 마비나 언어장애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다”며 “시야장애는 눈이 아닌 뇌의 문제로, 시각 정보가 후두엽에서 처리되는데 이 경로 중 하나만 손상돼도 일상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시야장애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환자들은 대부분은 자연 회복을 기대하거나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비비드 브레인은 반복적인 시지각 훈련을 통해 시신경 회로를 자극하고 뇌의 ‘가소성’을 유도하는 치료제다. 가소성은 뇌가 손상된 부위를 대신할 새로운 회로를 만들며 회복하는 생물학적 현상이다. 뉴냅스는 이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계했다. 인공지능(AI) 알고리즘으로 환자의 시야 손상 영역을 분석한 뒤, 가상현실(VR) 환경에서 몰입감 있는 맞춤형 훈련을 제공한다. 훈련 결과는 실시간으로 수집, 분석돼 환자에게 바로 피드백된다.
이날 본 비비드 브레인 훈련 중의 하나는 수백 ㎳(밀리초, 1000분의 1초) 단위의 짧은 시간 동안 서로 다른 두 패턴을 띄우고, 환자가 일치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이었다. 정답률이 높아질수록 패턴은 희미해지면서 난이도가 높아진다. 또 다른 과제는 회전하는 줄무늬 패턴의 회전 방향을 변별하는 형태였다. 단순한 게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각 뇌 회로를 자극하도록 정밀하게 설계된 과제다.
강 대표는 “VR 환경에서 시각 과제나 패턴 인식, 방향 구분 등의 과제를 반복 수행하면 뇌에서 무의식적 학습이 일어난다”며 “마치 한석봉의 어머니가 아들의 붓글씨 실력을 키우기 위해 불을 끄고 글을 쓰게 한 것처럼, 반복 훈련을 통해 뇌의 시각 기능 회복을 돕는다”고 비유했다.
비비드 브레인 훈련 과정을 나타낸 이미지. 가상현실(VR)에서 패턴 인식, 방향 구분 등의 과제를 반복 수행해 시각 기능의 회복을 돕는다./뉴냅스
독일부터 공략, 일본·중동·동남아도 타진 중
비비드 브레인은 의사의 처방을 통해 사용하는 치료제로, 하루 30분, 주 5회, 12주간 훈련하는 것이 기본이다. 뉴냅스는 지난해 12개 대학병원이 참여한 대규모 확증 임상시험을 통해 치료 효과를 입증했다. 총 104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시험에서 1~2차 유효성 평가 모두 기준을 충족했다. 일부 환자는 뇌 회로가 새롭게 형성되기도 했고, 시야가 회복되며 완치 수준의 호전을 보이기도 했다.
비비드 브레인의 치료 효과는 NNT(Number Needed to Treat, 치료 필요 환자 수) 수치로도 설명된다. 이는 환자 1명에게 원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 치료해야 하는 평균 환자 수를 의미한다. 뇌졸중 재발을 예방하기 위한 아스피린 처방의 NNT가 140인 반면, 비비드 브레인은 4에 불과하다. 강 대표는 “디지털 치료제 중 이 정도 수치를 기록한 건 매우 이례적”이라며 “우리가 만든 기술이 실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의미 있는 지표”라고 말했다.
훈련 방식이 직관적이고 몰입도가 높아 ‘순응도’도 높다. 순응도는 환자가 의사의 처방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나타내는 개념이다. 임상시험 참여자의 평균 순응도는 85.6%였으며, 일부 환자는 200% 이상 참여하기도 했다.
비비드 브레인은 2023년 9월부터 서울아산병원에서 정식 처방되고 있다. 뉴냅스는 디지털 치료제 특성에 맞춘 전용 처방 플랫폼 ‘이음’도 자체 개발해 병원, 의사, 환자가 모두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는 서울아산병원을 중심으로 전국 20여 개 병원이 뉴냅스와 협업 중이며, 향후 지방 뇌졸중 센터로의 확산도 준비 중이다.
지금까지 뉴냅스는 현재까지 219억원의 누적 투자를 유치했고, 84건의 특허 등록이라는 성과를 거두며 기술 기반의 의료 혁신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해외 시장 진출도 속도를 내고 있다. 뉴냅스는 독일의 CE 인증을 신청했고, 이르면 내년부터 유럽 시장에 진입해 수익을 낼 수 있을 전망이다.
강 대표는 “독일은 제도적으로 디지털 치료제가 자리 잡은 국가로, 현지화 장벽도 높지 않고 관련 인프라와 보험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첫 해외 진출 목표로 적합하다”며 “미국 시장은 높은 잠재력을 지닌 만큼 신중하게 접근하면서도 반드시 도전해야 할 시장”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일본, 중동, 동남아시아 시장도 차례로 진출을 타진 중이다.
국내 디지털 치료제 전문기업 뉴냅스는 뇌졸중 후유증인 시야장애를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 ‘비비드 브레인’을 개발했다. 사진은 가상현실(VR) 기기를 착용한 뉴냅스 구성원들./조선비즈
제도권 정착이 과제…치료 영역 확장도 모색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국내 의료 제도권에서 정착하지 못한 상태다. 병원에서도 누가 이 기술을 담당할지, 어느 부서가 운영할지 명확하게 정하지 못하고 있다. 강 대표는 “디지털 치료제가 의료 현장에 도입되기까지 수많은 장벽이 있다”며 “현장과의 협업, 프로세스 정비 등 하나하나 물꼬를 트는 과정이 디지털 치료제 도입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디지털 치료제 산업의 가능성을 확신했다. 그는 “일부 의사들은 디지털 치료제를 왜 사용해야 하냐고 의문을 갖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도 (디지털 치료제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라 본다”며 “과거에는 신용카드조차 낯설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게 사용하듯, 디지털 기반의 진단, 예방, 관리, 치료 기술 역시 의료계에서 언젠가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흐름”이라고 했다.
최근 뉴냅스는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단의 2025년 10대 과제에 선정되며 임상시험 진행이나 글로벌 시장 진출에 필요한 지원을 받고 있다. 강 대표는 “전문 자문단에게 임상 데이터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시장 확장 전략까지 조언받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해외에 진출하기 위한 사업도 연결해 준다”고 했다.
뉴랩스는 치료 영역 확장도 모색하고 있다. 강 대표는 “뇌졸중, 시야장애, 사시, 황반변성 등 다양한 분야로 파이프라인(신약개발군)을 확장하며, 앞으로 디지털 기술과 의학의 융합 가능성을 넓혀갈 계획”이라며 “이 길이 어렵지만, 바람을 거슬러 날면 더 높이 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