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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호 논설위원
“금고 열쇠를 넘겨받아 열어 보니 천원짜리 한 장 없고 빚문서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1998년 초 당선인 시절의 김대중(DJ) 대통령이 첫 국민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금고가 텅텅 비었음을 확인한 DJ의 황망함까지는 아니어도 정권 교체기에 나라 곳간의 열쇠를 이어받은 새 정부의 불만은 종종 있는 일이다. 보수 정부끼리 바통을 주고받았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그랬다. 이명박(MB)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교과서적 경제 회복’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한데 위기 극복에 재정을 쏟아부은 탓에 국가채무가 2008~2010년 90조원 급증했다. 균형재정으로의 복귀를 고민해야 했다. MB는 2011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2013년 균형재정을 선언했다. 2012년과 2013년 예산은 긴축 기조로 편성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재정난 심각
KDI도 “정부지출 신중하게” 조언
‘지속 가능’이 왜 중요한지 고민을

2012년 기획재정부를 담당하던 필자는 당시 ‘누룽지는 남겨줘요’라는 칼럼을 썼다. 이월·불용 예산을 최대한 줄이고 기금 여유재원 등을 미리 당겨 쓰는 등 쓸 수 있는 건 알뜰하게 다 찾아 쓰는 모습이 마치 밥솥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대는 것 같다고 비유했다. 누룽지도 남겨두면 내일의 괜찮은 먹거리인데 차기 정부에 전하는 ‘누룽지 인심’이 참 야박하다고 생각했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2013년과 2014년 큰 폭의 세수 결손을 냈다. MB 정부도 일부 책임이 있었다. 82조원 규모의 감세로 세입 기반이 약해졌고, MB 정부가 짠 마지막 2013년 예산에서 세수 전망을 과도하게 잡았다. 균형재정에 신경 쓰다 보니 경기 대응에 부족했던 점도 있었을 것이다. ‘구멍 난 예산’을 들고 출범했던 박근혜 정부는 세수 확대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소득공제를 축소해 ‘거위의 깃털을 살짝 뽑는’ 시도를 하다가 경제수석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전인 2022년 4월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경제는 엉망이고 나라는 빚더미”라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나랏빚이 407조원이나 증가한 대목을 꼬집은 거다. 떠나는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가 발끈했다. “아무리 정부 교체기라지만 평가가 너무 인색하다. 다음 정부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실제 그렇게 됐다. 지금 재정 상황은 더 나쁘다. 지난해 국가채무는 1175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다. 윤 정부 들어 100조원 넘게 늘었다. 지난해 적자(관리재정수지)는 105조원에 달한다.

대선 공약 경쟁이 예상보다 덜하다. 계엄과 윤 정부에 대한 심판 여론이 워낙 강해선지 공약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다. 여유 있게 앞서가는 이재명 후보는 포퓰리즘 비판이 나올 만한 공약에 ‘단계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부자 몸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아동수당 확대와 광역급행철도(GTX) D·E·F 추진이 그런 예다. 추격에 마음이 급한 김문수 후보도 기초연금 인상을 공약으로 내면서 ‘소득 하위 50% 이하 취약계층 대상’이라는 제한을 뒀다. 무리한 공약이 많지만 그나마 각 캠프 전문가들이 키를 쥐고 자제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게 다행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구멍 난 재정’을 안고 시작해야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성장률 전망을 0.8%로 내려 잡으면서도 정부지출 추가 확대에는 신중하게 접근하라고 조언할 정도다. 나랏빚 걱정이 이재명 후보의 표현처럼 ‘무식한 소리’가 될 수는 없다.

요즘엔 건전재정이라는 말보다 지속 가능한 재정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 재정 관련 잡지를 읽다가 지속 가능한 재정에 대한 어느 재정학자의 글에 공감했다. 재정의 목표가 나라 경제의 성장이나 국민의 행복이 아니라 겨우 ‘지속 가능’이라니 참 서글프지 않은가. 삶의 목표가 자아성취나 행복이 아니라 그저 생존이라면 어떤가. 생존을 위한 바이털 사인이 중요한 건 위독한 중환자들이다. 지금 ‘지속 가능함’이 중요해진 것 자체가 재정이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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