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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팬들 서명 운동... "피 묻은 빵 안 먹는다"
"중대재해법 위반 책임 물어야" 목소리 확산
김문수 "중대재해법=악법" 발언 논란도 가열
15일 서울의 한 편의점 안에 프로야구 공식 라이선스 제품인 크보빵(KBO빵)이 진열돼 있다. 뉴스1


“노동자의 피 묻은 빵에 선수들의 얼굴을 끼워 팔지 말라!”


프로야구 인기를 업고 1,000만 개가 팔린 SPC삼립의 ‘크보(KBO)빵’이 야구팬들의 불매 운동에 직면했다. 지난 19일 경기 시흥시 소재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한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업 중 컨베이어벨트에 상반신이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야구팬들이 분노를 표하며 들고 일어선 것이다. 종합식품기업 SPC그룹 계열사들에서 반복되는 인명 사고로 인해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중대재해처벌법은 악법”이라는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최근 발언이 소환되면서 논란은 더 불붙고 있다. 크보빵부터 대선 주자의 ‘입’까지, 다시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른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을 들여다봤다.

“산재 기업, 야구선수 얼굴로 이미지 세탁 반대”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SPC삼립과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의 콜라보 중단을 촉구하는 이미지. 크보빵에 반대하는 크보팬 엑스 계정 챕처


크보빵은 ‘프로야구 1,000만 관객 시대’를 맞아 한국야구위원회(KBO)와 SPC삼립이 협업해 올해 3월 출시한 제품이다. 9개 구단별로 맞춤 제품을 내고, 포장지 안에는 빵과 함께 선수 얼굴이 담긴 띠부실(탈부착 스티커)도 넣어 야구팬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출시 41일 만에 1,000만 개 이상이 판매됐다. 2022년 출시 43일 만에 1,000만 개가 팔린 ‘포켓몬빵’의 아성을 뛰어넘어 SPC삼립의 역대 최고 히트 상품이 됐다.

하지만 이제는 ‘오픈런’도 불사했던 야구팬들의 거센 분노를 사고 있다.
1
9일 노동자 사망 사고의 현장인 시화공장이 크보빵의 주요 생산 공장
이어서다. SPC그룹 계열 제빵 공장에서 인명 사고가 끊이지 않던 상황에서, 크보빵마저 ‘비극의 상징’이 된 셈이다. 20일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의
‘크보빵에 반대하는 크보팬’
계정에선 서명 운동이 시작됐다.
‘우리가 사랑하는 선수들의 얼굴이 산재 기업의 이미지 세탁에 쓰이는 것에 반대한다’
는 내용으로, 캠페인 플랫폼 ‘빠띠’를 통해 야구팬들이 직접 자신의 응원팀을 밝히며 의견을 내는 방식이다.

한화이글스를 응원한다는 한 팬은 “몇 년간 (SPC) 불매를 해 왔지만 잠시나마 저의 만족을 위해 피 묻은 빵을 소비한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이어 “기업의 이익이 사람의 생명보다 우선시돼선 안 된다”고 썼다. 한 SSG랜더스 팬은 “반복되는 사고는 더 이상 사고가 아니다”라고 적었다.

NC다이노스의
이라는 한 누리꾼은
“지난 4월 끔찍한 사고가 야구장에서 일어났다. 빵 공장에서 일어난 사고를 그저 ‘부주의’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
라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3월 29일 NC다이노스 홈구장인 경남 창원NC파크에서 경기 중 구조물 추락 탓에 20대 야구팬이 사망한 사고를 언급하며 날짜를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경남경찰청은
중대재해법상 ‘중대시민재해’의 적용 가능성
을 염두에 두고 이 사건을 수사 중이다.

23일 오후 6시 기준 서명 운동 참여 인원은 2,147명에 달한다. SPC를 규탄하거나, KBO에 ‘콜라보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메시지가 쏟아지는 중이다. 이와 별도로 서울 도곡동 KBO 앞에서 열릴 예정인 트럭 시위를 위한 모금도 진행되고 있다.

“현장 부주의 결과 아니라, 체계적 안전관리 실패”

2022년 10월 20일 서울 양재동 SPC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SPC 계열사 SPL의 평택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 도중 참가자가 회사 측을 규탄하는 문구를 적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시화공장 사고는 2022년 10월 이후 SPC그룹의 세 번째 노동자 사망 사건이다. 부상까지 포함하면 무려 여덟 번째다. 2022년 SPC는 산업 안전 관리 강화를 위해 1,000억 원을 투입한다고 밝혔지만, 사고는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작업장 내 안전 관리가 여전히 미흡한 게 아니냐’라는, ‘1,000억 원 예산이 제대로 쓰이긴 했느냐’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예단할 수는 없지만 시화공장 사고 역시 공장 측의 안전 수칙 미준수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까지의 경찰 수사에 따르면 크림빵 생산 라인에서 일하던 사망자는 기계 밑으로 몸을 집어넣어 윤활유를 직접 뿌리던 중 기계에 상반신이 끼었다. 노후 설비를 멈추지 않은 채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사업주는 동력으로 작동하는 기계를 정비하거나 청소할 때 근로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으면 기계를 멈추고 다른 사람이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등 방호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2023년 8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SPC 샤니 성남공장 노동자 끼임 사망 사고에 대한 법적 검토' 기자간담회 도중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왼쪽 두 번째) 변호사가 사고 발생 장소인 볼(통) 리프트 사진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중대재해전문가단체인 중대재해전문가넷(이하 전문가넷)은 20일 성명서를 내고 “반복되는 산업재해는 구조적 실패의 결과”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①노후 설비의 장기적 방치 ②안전 관리 시스템의 형식화 ③사고 후 기업과 국가의 미흡한 대응을 구조적 문제로 제시했다.

전문가들이 가장 시급하다고 꼽은 대책은 중대재해법의 실효성 제고다. 전문가넷은 “중대재해법에 따라 SPC 본사 및 그룹 경영책임자를 철저히 수사하고 반복된 사망 사고에 대해 실질적 책임을 묻는 형사절차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대재해법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한 집행 강화와 보완 입법에 즉시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허영인 SPC회장, '중대재해법 위반' 수사 받나

2022년 10월 21일 서울 양재동 SPC그룹 본사에서 허영인(왼쪽 단상 가운데) 회장과 계열사 대표들이 엿새 전 평택 SPL 제빵 공장 20대 여성 노동자 사망 사고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뉴시스


SPC그룹은 앞선 두 차례의 계열사 공장 내 사망 사고에선 중대재해법에 따라 대표이사까지만 사법처리 대상이 됐다. 징역형(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거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룹 총수인 허영인 SPC 회장은 'SPL(사고가 난 계열사) 사업을 대표하거나 안전보건 등 업무에 관해 결정권을 행사하는 경영책임자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중대재해법 위반 처벌을 피했다. 이번 시화공장 사고와 관련,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허 회장을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으나 실질적인 수사를 받게 될지는 미지수다. 경찰은 시화공장 센터장(공장장) 등 7명을 형사 입건한 상태다.

SPC 측은 말을 아끼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22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으로선 달리 드릴 말이 없다”고만 말했다. 공식 입장은 사고 당일인 19일, 김범수 대표이사 명의로 발표된 SPC삼립의 사과문이 전부다. SPC삼립은 “공장에서 발생한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분들께 깊은 위로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관계 당국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면서, 정확한 사고 원인 파악과 후속 조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사고 직후부터 공장 가동을 즉각 중단했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 직원들의 심리 안정을 위해서도 노력할 예정”이라고 부연했다. 공장이 멈춰 서면서 크보빵 생산도 중단된 상태다.

김문수, 사고 나흘 전 “이런 악법이...”

김문수(앞줄 가운데)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5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협의회 조찬 강연'에 참석해 김기문(맨 오른쪽) 중소기업중앙회장, 박용주(왼쪽 두 번째) 자랑스러운중소기업인협의회 회장 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박수치고 있다. 뉴시스


SPC삼립 시화공장 사고는 크보빵 불매 운동을 넘어, 대선 쟁점으로까지 부상하는 분위기다. 사고 나흘 전, 윤석열 정부의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가 중대재해법을 ‘악법’으로 지칭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중소기업중앙회 조찬 강연에 참석한 김 후보는 축사를 통해
“제가 결정권자가 될 때는 반드시 이런 악법이 여러분을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도록 고치겠다”
고 밝혔다. “소규모 기업까지 적용하는게 맞느냐”고도 반문했다.

국민의힘은 원래부터 중대재해법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2022년 시행된 이 법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2년간 유예’를 거쳐 지난해부터 적용됐는데, 결과적으로 무산되긴 했지만 당시 국민의힘이 재계를 편들며 유예 기간 연장을 주장했던 건 이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시화공장 사고 이후인 21일에도 김 후보는 “(사업주를) 구속한다고 (공장 사고의) 사망자가 없어지는 게 아닌 걸 우리가 다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대재해법의 효과는 작년 고용부가 발표한 2023년 산업재해현황 통계에서 일부 확인된다. 법 시행 이듬해인 2023년 재해 조사 대상(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전년도 대비 7.1%(2022년 644명→2023년 598명) 줄어들었다. 중대재해법 도입 이전인 2021년 산재 사망자가 683명이었던 점까지 감안하면, 2년 연속 감소세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당시
김 후보가 장관으로 있던 고용부는 “경기가 나빴다”며 중대재해법의 실효성 판단을 보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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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대재해법 효과? 지난해 산재 사망자 첫 500명대로 감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30713380001269)

이재명·권영국은 중대재해법 ‘옹호’

지난해 2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가 열리던 중,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가운데)씨를 비롯한 노동계 인사들과 정의당 관계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유예 반대 피켓팅 시위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동계는 중대재해법 위반 사건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고 본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지난 1월 이 법 시행 3년을 맞아 낸 성명에서
“(관련 사건 판결이) 1억 원 이하 벌금형이 80%에 가깝다”며 “대부분은 집행유예형 아니면 수천만 원 벌금형”
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확정 판결이 통보된 중대재해법 위반 사건 15건 중
경영책임자에게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1건(징역 1년)에 그쳤다.


‘사업주를 구속하는 악법’이라는 김문수 후보 인식과 달리, 다른 대선 후보들은 중대재해법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0일 유세 현장에서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하는 더 본질적 이유는 예방 효과”라고 강조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21일 MBC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서 “전체 (산재) 사건에서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비율이 5%도 되지 않는다
”며 “윤석열 정부가 사실상 중대재해법 집행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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