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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멘터리 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와 로고로만 기억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다움’을 직조해야 비로소 브랜드가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브랜드 하나만 골라도 취향이 드러나고, 그 선택에 개성과 욕망, 가치관이 담기죠. 비크닉은 오늘도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의 한 걸음을 따라가 봅니다.

가나초콜릿 50주년 기념《아뜰리에 가나: since 1975 – 행복은 초콜릿으로부터》전시관 입구. 롯데웰푸드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초콜릿 특유의 깊고 달콤한 향이 코끝을 감쌌습니다. 옛 추억처럼 스며드는 냄새를 따라가니 국내외 5명의 작가가 초콜릿을 재해석한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초콜릿을 나눴던 유년의 기억을 90년대 감성으로 시각화하거나, 초콜릿 질감과 감촉을 회화로 구현하기도 했죠. 또 ‘국민 간식’이 소환한 시대의 키워드를 되짚어볼 수도 있었습니다. 이곳의 정체는 가나 초콜릿이 50주년을 기념해 서울 롯데뮤지엄에서 선보인 ‘아뜰리에 가나: since 1975 – 행복은 초콜릿으로부터’ 전시였어요.

오는 6월 29일까지 열리는 이번 행사는 초콜릿 한 조각으로 ‘행복’을 이야기해온 브랜드의 반세기 여정을 풀어낸 자리입니다. 단순한 간식을 넘어 세대를 잇는 감성의 기억이자, 그 안에 깃든 철학과 기술·감성·지속가능성까지, 브랜드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었죠. 비크닉이 현장을 찾아 50살이 된 가나 초콜릿의 여정을 들여다봤습니다.

가나초콜릿 50주년을 맞아 작가 그라플렉스가 표현한 작품. 작가의 시그니처 캐릭터들을 통해 유쾌한 초콜릿이 탄생하는 순간을 자신만의 언어로 시각화했다. 롯데웰푸드

예술에서 시작된 달콤함, 가나의 시간들
초창기 가나초콜릿 생산 장면. 롯데웰푸드
초콜릿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퍼진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였어요. 미군 보급품을 통해 시중에 초콜릿이 유입되면서였죠.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과업체가 초콜릿을 처음 생산한 때는 1967년. 당시 시장 규모는 18억원으로 껌 다음으로 큰 수준이었다고 해요. 롯데웰푸드(당시 롯데제과)도 이에 주목, 서울 영등포구에 부지를 확정하고 1975년 2월 첫 초콜릿 공장을 완공했어요.

당시 브랜드를 만든 철학은 이번 전시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바로 ‘초콜릿은 예술’이라는 메시지죠.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은 “제품이 아니라 예술품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어요. 그때만 해도 초콜릿은 비싸고 고급스러운 수입 간식이었는데, 그는 “누구나 품질 좋은 초콜릿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품었고, 100년 전통의 스위스 기술진을 초빙했어요. 고가의 수입 설비도 아낌없이 들였고요.

1975 가나초콜릿 출시 당시 신문 광고. 롯데웰푸드
그렇게 탄생한 게 롯데의 첫 초콜릿 ‘가나 마일드쵸코렡’과 ‘가나 밀크쵸코렡’입니다. 밀크 초콜릿의 개념조차 생소한, 코코아맛 사탕 정도가 전부이던 때에 ‘가나(Ghana)’라는 제품명을 붙인 건 마케팅 수사가 아니었어요. 세계적인 카카오 생산국 아프리카 가나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 원료와 품질에 대한 신뢰를 강조한 전략이었죠. 당시 출고 가격은 100원. 디저트라는 게 흔치 않던 시절, 라면은 20원, 아이스께끼(아이스크림)는 10원 하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비싼 편이었죠. 그런데도 고도성장 시기였던 1970년대 당시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수입 간식이 시중에 풀리기 시작하면서 입맛이 빠르게 고급화할 때였으니까요.

시대별로 톱스타를 기용한 가나초콜릿 광고 아카이브. 롯데웰푸드
1980년대부터 롯데는 가나 현지와 협력하며 직접 카카오빈을 수입했고, 마케팅도 공격적으로 펼쳤습니다. 출시 초기 서울에서 열린 ‘가나 초콜릿 탄생 기념 대잔치’엔 5000명이 몰렸고, 시장점유율은 31%에서 이듬해엔 47%까지 올랐어요. 특히 1984년 배우 이미연이 연인의 외투에 얼굴을 묻었다 내밀던 광고는 지금까지도 패러디될 만큼 히트작이 되면서, 브랜드의 감성과 트렌드를 잇는 다리 역할을 했죠.

물론 위기의 순간도 찾아왔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카카오 작황 부진과 가격 급등 같은 이슈는 초콜릿 산업 전체를 흔드니까요. 특히 지난해부터는 국제 코코아 시세가 톤당 1만2000달러를 넘으며 4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어요. 기후변화와 병충해로 인한 서아프리카 지역의 카카오 생산량 감소가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브랜드는 지속가능한 생산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기술이 지켜낸 감성, 정직하게 쌓은 단맛
가나초콜릿 50주년 특별 전시관에 전시된 기술력 관련 신문 광고 아카이브. 김세린 기자
롯데웰푸드에 따르면 1975년 출시 이후 가나 초콜릿의 누적 판매액은 1조4000억원. 수량으로 환산하면 68억갑이에요. 줄 세우면 지구를 25바퀴 돌 수 있고, 약 1만2000km 떨어진 한국과 아프리카 가나를 45번 오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올해 1월부터 이달까지 300억 원어치가 팔렸으니, 단순한 단맛 이상의 전략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얘기겠죠.

‘기술 없는 감성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일까요. 회사의 기술 혁신과 품질 고집은 브랜드 성장의 든든한 기반이었어요. 1984년 도입한 ‘마이크로 그라인딩(초정밀 분쇄)’ 공법은 카카오를 밀가루보다 더 고운 입자로 갈아 부드러운 식감을 구현했고, 1996년엔 유럽식 ‘BTC(Better Taste & Color)’ 공법을 도입해 맛의 완성도를 높였죠.

지금은 카카오 원두 수급부터 로스팅·콘칭·몰딩·완제품 생산까지 전 과정을 직접 관리하는 ‘빈투바(Bean to Bar)’ 시스템 안에서 이 모든 게 이뤄지고 있어요. 국내 대기업 중에선 유일하게 이 시스템을 갖췄다고 해요.

맛의 기억을 재정의하다, 디저트가 된 초콜릿
가나초콜릿 프리미엄 라인업. '가나초콜릿은 디저트'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재정립했다. 롯데웰푸드
킷캣·로아커·페레로로쉐·리터스포트 등 마트 유통 브랜드부터 로이스·기라델리·고디바 등 ‘프리미엄’ 초콜릿까지 국내시장에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가나 초콜릿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진화의 방향은 분명했어요.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시대 흐름과 소비자 취향에 맞추자는 것이었죠.
'가나 디저트 하우스' 현장. 가나초콜릿을 활용한 프리미엄 디저트를 맛보게 했다. 롯데웰푸드
그 결과, 2021년부터 ‘디저트가 되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브랜드를 재정의했어요. 2022년과 2023년 서울 성수동, 부산 전포동에 차례로 문을 연 ‘가나 초콜릿 하우스’는 각각 초콜릿을 디저트로써 즐기는 공간, 프리미엄 라인업을 선보이는 공간으로 활용했어요. 지난해 2월엔 다시 성수에서 규모를 키워 팝업을 열었고, 누적 방문객 3만명을 끌어모았죠. 초콜릿 베이커리까지 확장한 ‘가나 디저트 하우스’ 라인업은 가나산 카카오를 베이스로 만든 케이크·빵·아이스크림 등 신제품을 선보였어요.

올해는 가나 초콜릿 50주년을 맞아 ‘행복은 초콜릿으로부터’ 캠페인을 펼치고 있어요. 안성재 셰프와 함께한 이번 캠페인은 프리미엄 디저트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다졌어요. 더 깊고 진한 카카오 풍미를 구현해 고급 디저트 수요층을 공략하기 위해서였죠.

맛보다 더 진한 진심…‘착한 초콜릿’으로
아프리카 가나 현지 농가에 방문해 카카오 농장을 점검하는 모습. 롯데웰푸드
이제 가나는 ‘달콤함의 윤리’도 묻습니다. ‘착한 카카오 프로젝트’를 통해 지속가능한 원료 조달 방식을 확보하고 있어요. 아프리카 가나 지역의 기후 위기와 병해충 피해를 직접 목도하고, 지난해 10월 한국과 일본 롯데가 함께 현지 농가를 점검하고 묘목을 지원하며 ‘지속가능 초콜릿’을 위한 첫걸음을 뗐습니다.

올해부터는 전체 카카오빈 중 약 30%를 지속가능 방식으로 재배한 ‘서스테이너블 카카오빈’으로 전환했고, 앞으로는 전량 교체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최낙현 가나 마케팅팀 팀장은 “아프리카 가나 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상생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다”며 “초콜릿 산업 전반의 지속가능성을 꾀하는 장기적 ESG 전략”이라고 설명했어요.
가나초콜릿 50주년 특별 전시에 기록된 과거와 미래. 김세린 기자
초콜릿 한 조각에 담긴 지속가능성은 가나가 과거형 브랜드가 아님을 증명해요. 이제 이 브랜드는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어떤 가치를 먹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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